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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까르망(carmin). 프랑스어로 양홍빛을 뜻한다. 가수 장재인(26)은 히트작곡가 박근태(45)와 작업한 노래에 이 이름을 붙였다. 자주 사용하는 향수의 라벨에서 따왔다. 의도한 제목은 아니었으나 '까르망'은 장재인의 신곡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빨간색과 비슷하지만 이보다 채도가 약한 양홍색처럼 가사에는 이별이 두렵지만 다시 찾아온 사랑을 나타냈다. 사랑 혹은 이별로 또렷이 구분할 수 없는 삶의 잔향이 깃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작업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고, 영화도 많이 봤죠." 1년 8개월 만에 신보 '까르망'을 발표하고 공연 준비에 한창이던 장재인과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오빠(박근태)는 저와 정반대 음악을 하는 분이에요. 작곡가님이 대중적인 노래를 쓴다면, 저는 마니악한 취향이죠. 두 사람이 합쳐져서 '까르망'이 독특한 곡이 된 듯해요."
'까르망'은 재즈와 포크를 접목한 장르로 박근태 옥정용이 작곡하고, 장재인이 작사했다. 장재인 박근태는 서로 얘기부터 나눴다. 무작정 작곡하고 가사를 붙이지 않았다. "오빠가 제 음역을 파악하셨고, 저는 작업 중간에 곡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했죠. 그러다가 가사를 쓰라는 미션을 받아서 '알았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들은 무엇보다도 리듬 타는 방법이 달랐다.
"리듬이나 스타일이 정말 차이가 났죠. 작곡가님은 리얼드럼을 쓰고, 곡 요소들도 많이 넣으시더라고요." 독특한 보컬을 가진 장재인과 유연하게 변주하는 박근태의 작곡은 '까르망'을 통해 한 선으로 모였다. 완벽을 추구한 이들의 결과물은 흡족할 만했다. "오빠는 예쁘고 섬세한 곡을 쓰죠. 오히려 제 스타일이 더 남성적이에요. 오빠의 리듬과 제 보컬이 묻어나 묘한 뉘앙스가 생긴 거죠." 장재인은 기타 연주로 초반 작업이 이뤄진 '까르망'의 연음이 어려웠다면서도 박근태가 가수의 특징을 잘 짚어낸다고 했다.
장재인은 감명 깊게 본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서 영감을 얻어 가사를 적었다. '우린 하나는 아니었어, 늘 둘이었지. 결국 중요한 건 상대방의 사랑이 아니라 삶 전체의 사랑이야…우린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거니까.'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사는 가슴을 울렸다. 심상을 통해 탄생한 단어들은 노래를 더 수려하게 했다. "자연스러운 이별과 사랑을 하면서 회의감도 들었죠. 그런데도 설렘은 다시 찾아오더라고요. 삶에 대해 고민하다가 모든 것은 순간도 소중하지만, 삶 전체의 사랑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가사를 쓰는 데도 말투가 확고해졌다. 객관적으로 평가해 작사 실력이 늘었다. 노래 속에서 장재인만의 언어가 생겼다. "가사나 곡 작업을 할 때 콘셉트도 함께 구상한다"고 한 장재인은 '까르망' 콘셉트 회의에 참여해 밑바탕을 그렸다. "음악과 보이는 모든 게 전부 연결됐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무드의 여인이 떠올랐죠. 헤어 화장 등에 아이디어를 냈어요."
뮤직비디오도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했다. 장재인은 고풍스러운 집들과 현대 건축물이 어우러진 도시의 일부가 됐다. '무드 있는 여인'은 그대로 화면 속에서 구현됐다. "모든 거리가 예뻐서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 됐죠. 추웠는데도 야경이 좋아서 괜찮았어요. 전혀 힘들지 않았죠." 앞서 한국에서 100년만의 한파를 맞았을 때 민소매 핫팬츠를 입고 촬영한 경험이 있어 파리의 추위에 끄떡없었다. 낯선 도시에 취한 탓이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젊은 예술가들이 모인 분위기도 좋았죠.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새로운 문화나 무드를 배우려고 해요. 느끼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죠. 있는 척하거나 얌체 같은 거와 비슷한 데 느끼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네요.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은 주변 공기가 달라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장재인은 겉치장보다는 중심을 잡아가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데뷔 때부터 자신의 음악을 빗어온 비결이자 다른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받아도 '장재인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힘이었다. 장재인은 대화 중간에 앞에 놓인 에그타르트를 예로 들었다. "정량된 원재료로 에그타르트를 만드는 법을 배워도 그대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20g을 써야 한다고 해도, 괜히 21g으로 하고 싶어지죠.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는 듯해요(웃음)."
앳된 얼굴로 처음 무대에 올랐던 장재인은 20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 "유엔보고서를 보니까 앞으로 인간 수명은 150~200년이 된다더라"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한 장재인은 지치지 않고 음악을 하길 바랐다. "앞으로 더 기대해주세요. 더 성장할 거예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죠. 인터뷰가 끝나면 곧장 연습실로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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