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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남길은 영화 '어느날'의 시나리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윤기 감독에게 한 첫 말이 "이거 정말 감독님이 하시려고요?"라는 반문이었다. 이 감독의 전작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에 반신반의했으나 결론적으로 "무겁고 진지할 수 있는 이야기가 수위 조절이 잘 됐다"고 즐거워했다. 또 "이윤기 감독님이 추구하는 본질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영화는 아내가 죽고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던 강수(김남길)가 뜻밖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시각장애인 미소(천우희)의 영혼을 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4살 때 엄마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아내를 잃고 남겨진 사람의 삶과 죽음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슬프면서도 미소 짓게 하며, 감동하게 하는 부분이 꽤 있다.
수위 조절을 위해 감독의 고민이 가장 컸겠지만 김남길도 동참했다. 일단 멜로나 로맨스처럼 보이지 않으려 했다. 배우 천우희와 둘이 함께하는 장면들이 꽤 많은데, 혹시나 멜로로 보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김남길은 "천우희씨와 시장을 가거나 어디를 갈 때 데이트하는 모습처럼 보일 때는 '다시 찍자', '무덤덤하게 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멜로나 로맨스물을 찍을 때는 서로에 대해 더 알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어떤 경계를 두고 연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내부적으로 두 사람의 멜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 하다 애정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이프를 잃은 아픔에 대한 치유가 꼭 연인으로 발전해야 할 필요는 없었기에 로맨스 감정은 배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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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의 고민은 또 있었다. 천우희가 영혼으로 나오는 신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미소는 나에게만 보이는 존재이니 억지스럽지 않게 보이길 원했어요. 나에게는 보이고 윤제문 형님에게는 안 보여야 하니 '내 시선 처리가 맞나?'라는 고민부터 정말 다양했죠. 윤제문 형님과 같이하는 신은 소소한 재미가 있었으면 했는데 과하지 않게 보여준 것 같아 좋아요.(웃음)"
김남길의 고민은 계속됐다. 미소가 영혼이라는 존재를 깨닫고 혼비백산 도망치는 장면에서 깔창이 튀어나오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는 "'아내가 죽었는데 구두에 깔창을 끼우고 다니는 남편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지점이더라"며 "아픔은 있지만 남겨진 사람이 먹고살아야 하는 건 또 다른 지점이지 않은가. 삶 자체는 그 상실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만큼 김남길이 설정 하나하나 세세하게 고민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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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관련해 어느 누가 봐도 '배우가 진짜 힘들었겠다', '엄청난 몰입감으로 연기했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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