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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감독의 영화 '해빙'이 스릴러 장르의 쾌감을 선사하고 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물었던 '꽃할배' 신구가 무심결에 뱉은 잠꼬대가 꺼림칙하다. 육회를 먹으니 돼지고기도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얼었던 한강이 녹고 시체가 떠오르자 수면 아래 있었던 비밀과 맞닥뜨린 한 남자를 둘러싼 심리스릴러물 '해빙'의 주인공은 단연 배우 조진웅이지만 신구의 존재감도 강렬하다. 몇 컷 나오지도 않는데 관객을 사로잡는다.
변두리 도시의 월급 의사인 승훈(조진웅)은 내시경 환자를 진료하며 무료하게 살아간다. 서울 강남에 빚을 내 개원했으나 파산한 뒤 아내와 이혼하고 방까지 뺀 신세인 그는 현재 정육점 주인집 윗집에 세 들어 산다. 신구는 이 정육점 주인 성근(김대명)의 아버지로, 관객을 홀리는 데 한몫을 제대로 한다. 거기에 김대명이 또 관객을 속이려 한다. 목 없는 시체가 나온 살인사건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수면내시경을 하다 "팔다리는 한남대교에, 머리는 아직 냉장고 안에"라는 중얼거리는 노인의 말에 초조하고 불안한 승훈. 노인과 그의 아들 내외가 의심스럽다. 아니, 그걸 알게 될 즈음에는 주변 인물 모두가 의심스럽다.
관객은 이제 조진웅도 의심하게 되고, 조진웅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송영창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승훈을 찾아온 전 아내(윤세아)도 사건에 얽힌다. 병원 간호사 미연(이청아)도 순둥순둥한 것만은 아니었다.
관객의 의심은 꿈과 환각으로 뒤엉켜 혼란스럽다. 살인 사건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현실과 환상, 꿈을 한 데 버무린 시도가 흥미롭다. 누군가에는 이렇게 보일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보일 수 있다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남자의 모습을 연기한
한 번 꼬고 두 번 꼬았으나 어려운 느낌이라기보다 오싹한 분위기가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마지막은 요즘 흔히 보던 에필로그와 다르다. 웃음기를 쏙 뺀 무미건조한 영상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겠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