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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다. 화려하고도 놀랍다. “눈을 뗄 수 없다”는 말 이외엔 설명할 길이 없는,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할리우드식 호화 찬란함과는 또 다른 신선함이다. 치명적인 마력 액션의 탄생이다. 헌데 알맹이가 빠져버렸다. 끝내 오락물의 범주를 벗어나진 못했다.
지난 3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어쌔신 크리드’는 원작 게임의 세계관을 그대로 공유한 일종의 스핀오프 영화다. 유전자 속 기억을 찾아주는 최첨단 기술을 통해 15세기 ‘암살단’의 일원이자 조상인 ‘아귈라’를 체험한 주인공(칼럼 린치)이 세상을 통제하려는 ‘템플 기사단’과 대립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암흑의 삶을 살던 사형수 ‘칼럼 린치’는 형이 집행되던 날, 의문의 조직인 앱스테르고의 과학자 ‘소피아’에 의해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의식을 되찾는다. 그리곤 자신의 유전자에 과거의 비밀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피아는 그의 유전자를 이용해 위대한 조상의 유물을 찾아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이자 이 비밀 조직의 CEO인 ‘앨런 라이킨’은 딸의 과학적 능력과 칼럼 린치의 본능적 힘을 이용해 자신의 암묵적인 목적만을 이루려고 한다.
감독은 과거와 미래, 리얼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설정으로 또 하나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이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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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스페인의 좁은 골목과 건물들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넘는 파쿠르 액션이나, 광할한 평원을 가로지르며 템플 기사단과 암살단의 쫓고 쫓기는 폭발적인 마차 액션 등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 속 세계와 게임 캐릭터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을 기울인 듯하다.
특히 적에게 쫓기다 아찔한 높이의 건물 끝에서 고공 낙하하는 ‘신뢰의 도약’은 게임 속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기에 많은 게임 팬들을 열광시킬 장면으로 예상된다. 암살단의 여성 일원인 ‘마리아’가 보여주는 리얼리티 걸크러쉬 액션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 관전 포인트.
이처럼 영화는 15세기와 21세기의 완벽한 시공간을 완성해 보여주며 게임 속 판타지를 스크린으로 완벽하게 옮겨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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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게임 플레이어가 암살단의 멤버인 어쌔신으로 게임을 진행하기에 자연스럽게 템플 기사단을 적대하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좀 더 심오한 세계관을 담아낸다. 템플 기사단의 논리 역시 무조건적인, 완전한 악이 아니며 이념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암살하기도 하는 암살단 또한 완전한 선이 아니라는 것.
결국 이 두 집단의 갈등은 선과 악의 갈등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보다 복잡한 도덕적 논쟁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같은 세계관을 확장시키기는커녕 오롯이 담아내는 것조차 실패했다. 원작 게임에는 없는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또 다른 갈등 구조를 형성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극히 단순화된 인물 간 갈등과 처단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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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원작 게임 팬들은 앞서 말한 장점만으로도 열광할 만하다. 게임을 전혀 모르는 관객이라도 관람 내내 눈은 온전히 즐거울 듯하다. 다만 많은 잠재 가능성에도 불구, 기대와는 달리 오락 영화 그 이상이 되긴 어려워 보인다.
오는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