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가 또 한 번의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매 회마다 60분간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드라마와 메시지, 로맨스에 낭만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
‘컨트롤타워’ 한석규가, 동료와 환자들을 위해 의사로서의 사명을 위해 위험을 자처한 서현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을 때 시청자들은 감동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을 테다. 각종 드라마의 향연 속에서 진정한 웰메이드 작품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김사부’다.
최근 TV와 스크린은 무능한 정부와 무책임한 관료들, 현 시국을 만든 각종 뼈아픈 요인들을 반영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특히 스크린에선 올해 최대 문제작으로 불리고 있는 ‘판도라’가, TV에선 ‘낭만닥터 김사부’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 마디로 ‘낭만닥터 김사부’의 압승이다. 최악의 현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불편한 이면들과 원인에만 주로 집중한 ‘판도라’에 비해 ‘김사부’는 최악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최선책에 집중한다.
절망 속 현실을 묘사하고,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에 치중하느라 그 외 많은 부분에는 소홀한 ‘판도라’완 달리 ‘김사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압축시키는 대신 많은 것들을 챙긴다. 예를 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계 사람들의 역할,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대한 시원한 사이다 대사, 인간애, 직업의식, 드라마적 재미 등등이다.
이미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를 등장시키며 현실감을 높였고, 우리가 실제 목격했던 정부의 무능함, 비현실적인 메뉴얼, 무책임한 관계 부처들의 실상을 담아냈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함축적으로 표현됐다.
대신 환자, 의사, 보호자, 관리자 등 이 사태와 관련된 사람들 각각의 입장과 그들이 겪은 고뇌, 실수, 성장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해결의 여지를 남겨뒀고,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미 개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너무나 방대한 조직의 근원적 문제에만 치우지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고, 개인 하나 하나가 보여줘야 할 모습들에 대해 다각도로 메시지를 던졌다. 이 과정에서 ‘사랑’ ‘휴머니즘’ ‘희망’ 등의 원제들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그저 원전의 위험성과 현실 비판으로 우직하게 끌어간다. 따져보면 여타의 재난 영화보다 새로운 건 ‘원전 재난’이라는 소재 뿐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컨트롤타워, 각계 계층의 이기적인 책임자들, 이 안에서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소시민 영웅들, 가족애와 인간애를 다룬 메시지 등은 모두 익숙한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 영화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유는 곳곳의 인물과 상황들이 현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타이밍 때문이다. 유례없는 ‘지진’으로 안전의 위협을 받은 데 이어,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탄핵 절차를 밟고 있는 이 시점에 무능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라니, 그 어떤 영화적 장치보다 드라마틱하게 다가올 수밖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대통령과 그를 꼭두각시로 여기며 사고 은폐에만 열을 올리는 실세 국무총리, 시민들의 안전과 목숨엔 아무 관심없는 책임자들과 TV를 보며 "개소리 하고 있네!"라며 분노하는 시민들. 영화는 분통터지는 현실, 처절한 상황을 그려나가는데 치우쳐 결국 허무맹랑한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전체를 감싸는 건 '적날한 리얼리티'지만 그 결말과 해결책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진부한 것. 결국 가족애, 인간애 등의 보편적 가치를 희망의 메시지로 담고 있지만 그 교훈에 완전히 젖어버리기도 전에 관객들은 피로감에 지쳐버릴 수도 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비극들의 수많은 장면들을 떠올리며 136분 내내 울고 분
두 작품 모두 아픈 현실과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각종 장치의 활용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결국 60분의 잘 만들어진 '김사부'의 한 회가 146분의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를 압도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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