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뻔한 전개인데도 보는 내내 지루함이 없다. 조정석·도경수라는 예상 못한 조합 말고는 대단히 끌릴만한 새로움이 없는데도, 가히 ‘신의 한 수’라고 칭할만큼 강력한 브로맨스다. 관객들의 웃음과 눈물을 완전히 컨트롤 하는, 스토리의 진부함마저 뛰어 넘은 마성의 형제다.
조정석과 도경수. 두 대세남의 만남만으로 하반기 기대작으로 떠오른 영화 ‘형’이 15일 왕십리CGV에서 열린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유도 국가대표 유망주에서 하루아침에 시각 장애인이 된 동생, 이 같은 동생의 불행에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자신의 가석방에 이용하는 뻔뻔한 형,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15년 만에 ‘컴백 홈’한 형인데 얄짤없이 “꺼져!”로 첫인사를 건네는, 그야말로 막장 형제의 짠내나는 이야기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었지만 유도 국가대표 선수로 열심히 살고 있는 동생 고두영(도경수). 그는 경기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사기전과 10범의 형 고두식(조정석)은 눈물의 가석방 사기극을 펼친다. 하루 아침에 앞이 깜깜해진 동생을 핑계로 1년간 보호자 자격으로 가석방 된 그는 보호자 노릇은커녕 두영의 삶을 더 엉망으로 만들며 ‘밉상’의 끝을 보여준다.
‘납득이’(건축학개론)를 거쳐 ‘이화신’(질투의 화신)으로 이어지는 조정석표 코믹쇼는 관객의 높아진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기발하고 맛깔스럽다. 대사의 대부분이 욕이지만, 불편하기보단 따뜻하고 구수하게 느껴진다. 조정석만의 묘한 귀여움과 독보적인 유쾌함, 인간적인 매력이 그대로 살아있다.
다만 24회에 걸쳐 완성된 ‘이화신’의 다채로움을 뛰어넘진 못한다. ‘납득이’에서 보여준 미워할 수 없는 악동과 ‘완성형의 이화신’ 사이의 어딘가 쯤에 머문 듯하다. 이는 진부한 스토리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연이어 소비된 조정석표 연기에 대한 익숙함 때문이다.
특히 스토리 면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가족이라는 가장 소중한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지만, 이 과정에는 어떤 신선한 요소도 없다. 두 형제와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지극히 평면적이며 두 형제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 역시 뻔하다. 이 드라마의 최대 반전 역시 너무나 예상 가능한 선에서 그려진다.
그는 설정 자체가 비극인지라 묵직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곳곳에서 의외성을 십분 발휘한다. 조정석의 코미디에 전혀 밀리지 않는 강력한 펀치도 간간히 있다. 덕분에 영화는 유쾌하지만 익숙한 조정석의 원맨쇼가 아닌 신선한 ‘브로맨스’로 완성된다.
홍일점인 박신혜의 경우는 사실 좀 아쉽다. 모나게 튀는 부분은 없지만 전형적인 캐릭터의 틀을 깨진 못한다.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형제의 관계 변화에 주요한 역할을 하지만 쟁쟁한 두 남자 사이에서 존재감이 묻혀버린다. 오히려 감초로 등장하는 김강현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화 ‘형’은
무엇보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씁쓸한 이 시국에 소소한 웃음과 절망 끝에 선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될 영화다. 오는 24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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