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의 ‘강동원 활용법’은 영리하고 기특했다. 강동원의 신비한 비주얼은 낯설게 느껴졌던 ‘어른 아이’ 성민에 몰입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됐다. 멜로 판타지라는 생소했던 장르는 감독의 섬세한 손 안에서 완벽하게 형상화됐다.
지난 1일 강동원의 판타지 도전이자 엄태화 감독의 첫 상업 영화인 ‘가려진 시간’이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어린 아이들의 시선에서 시작된 영화는 화노도로 이사를 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소녀 수린과 그런 수린을 처음 본 순간부터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는 성민의 이야기다.
129분의 러닝타임. 잔잔한 감성 멜로물 치곤 꽤나 긴 시간이지만 감독은 ‘멈춰진 시간’을 전후로 완전히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담아내 자칫 지루함으로 흐를 수 요소들도 몰입으로 뒤바꾼다.
13살 소년에서 어른이 된 강동원이 등장하기 전까지, 40여분간 극을 이끌고 가는 건 온전히 아역들이다. 수린과 성민은 풋풋하면서도 아련한 우정, 그리고 사랑을 키워나간다. 이 과정은 여느 성인 배우들 못지않게 설렘 가득하게 그려진다. 중간에 삽입된 또 다른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는 이 작품에서 가장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대목.
영화는 두 소년 소녀의 특별한 교감, ‘가려진 시간’을 함께 보내는 소년과 소년의 우정, 이들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과 어른들의 다양한 시선 등을 지루할 틈 없이 조화롭게 펼쳐낸다.
강동원은 ‘꽃거지’부터 의문의 ‘어른 아이’, 아동 유괴범으로 몰리는 갖가지 상황들을 밀도 있게 표현해낸다. 타고난 마스크와 연기 내공이 제대로 시너지를 낸다.
이같은 강동원의 든든한 리드 아래, 신예 신은수는 예측 불허의 매력으로 농익은 열연으로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강동원 아역으로 분한 이효제 역시 강동원에 전혀 밀리지 않는 압도적 존재감으로 화면을 장악한다.
여기엔 시간이 멈춘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한 장면들로 가득 찬 미장센, 환상 같은 영상미가 크게 눈을 호강시킨다. 훌쩍 자라버린 석민
비주얼도 스토리도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가려진 시간’은 배우 강동원만의 매력과 색깔이 완벽하게 농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오는 11월 16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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