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잘 다려 입은 정장과 넥타이가 잘 어울리던 배우 이형철이 한껏 가벼워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찌질해졌다’ 혹은 ‘궁상맞다졌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연기를 시작한지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2015년 MBC 드라마 ‘여왕의 꽃’으로 구제불능의 중년남성 서인철을 연기하며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이형철은 그로부터 1년 후 SBS 드라마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에서 철이 덜 들 갱년기 남성 박천수를 연기하면서 그 안에 있는 유쾌함을 대놓고 발산했다.
미워할 수 없는 지질함을 연기하는 이형철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과거 진중하고 묵직한 실장님 역할을 도맡아 했던 배우인가 헷갈릴 정도이다. 이쯤 되니 이형철의 이미지가 주책없는 중년남성으로 굳혀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이 같은 캐릭터를 대한 걱정은 없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정작 돌아오는 목소리는 조심스러움이 무색할 정도로 밝다. 모두 이형철이 의도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강한 캐릭터나 악역을 많이 연기하다보니 제 이미지가 너무 그런 쪽으로 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풀고 싶었는데, 결국 방법은 캐릭터, 연기더라고요. 재미있는 것이 예전에 아침드라마를 찍었을 때 함께 작업했던 카메라 감독님이 계셨는데 제 연기를 보고 계속 웃으시는 거예요. 전에는 실장님이라고 폼 잡고 멋있는 척하고 그랬는데, 망가지는 제 모습이 재미있으셨나 봐요. 그런데 연속으로 철없는 캐릭터를 한 것 같아서 다음번에는 한번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어떤 역이냐고요? 그냥 악역이에요. 완전 제대로 된 악역. 욕 많이 먹을 것 같아요. 하하.”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이형철에게 있어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비록 시청률 적으로는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촬영현장의 분위기가 유쾌하고 즐거웠던 덕분이었다.
“전체적인 촬영 분위기가 좋았어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도 좋았고 감독님 모두 좋은 분이셨죠. 지진희씨가 참 유쾌한 분이시더라고요. 농담도 잘 하시고 덕분에 많이들 웃었어요. 특히 가족팀 같은 경우 항상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많은데, 조리 팀에서 음식을 잘 해서 잘 먹으면서 촬영을 했다. 가끔은 밥을 안 먹고 간 적도 있었다니까요. 지진희씨도 잘 먹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은 없는데 분위기가 좋으니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즐거웠던 촬영 분위기 뿐 아니라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은 이형철에게 있어 기분 좋은 공감을 부른 작품이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갔느냐 물어보았더니 이형철은 극중 강민주(김희애 분) 대사 중 하나였던 ‘스스로 뭘 하기에는 나이가 먹었고, 이 나이가 되면 무엇인가 기적이 일어나기 바란다’와 같은 대사를 꼽았다. 그 역시 강민주와 같이 40대에 싱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나도 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라고 왜 결혼을 하고 싶지 않겠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바람은 항상 있죠. 이상형이요? 이 나이 되니 딱히 이상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냥 느낌이 좋은 사람이 좋아요. 여기서 ‘느낌이 좋다’는 건 단순하게 예쁜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 사람, 자신의 것이 확실히 있는 사람을 뜻해요. 제 눈에 안경이라잖아요. 외모보다는 이제는 대화가 잘 통하는 여자, 사고나 생각이 비슷한 선상에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전 사람과 만나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처음에는 ‘별로인데’ 했다가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을 알아가고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간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해’는 아니지면 좋은 인연을 기다린다”고 말한 이형철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혼자남’이기도 했다. 가족과 떨어져 자취를 시작한지 어느덧 28년, 혼자가 익숙해진 만큼 여기서 오는 외로움도 적지 않은 것이다..
“가족들이라도 근처에 있으면 찾아 가던가 할 텐데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더 많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미국 집에 있을 때는 외로움을 몰라요.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카들과 놀고,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도 내가 좋아서 연기를 하는 거니까. 만약 외로움을 느낄 때는 운동을 해요. 덕분에 ‘운동 중독’이 된 것처럼 운동을 많이 하죠. 안하면 찌뿌둥하기도 하고 남는 시간이 많아요.(웃음) 제가 술을 못 마시거든요. 덕분에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하하.”
이형철은 ‘끝에서 두 번째 사랑’을 하기에 앞서 ‘불타는 청춘’에 청춘으로 출연한 바 있다. 한 번 더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형철은 “기회가 있다면, 그리고 스케줄만 맞는다면 언제든지”라고 답했다. ‘불타는 청춘’ 촬영이 이형철에게 있어 좋은 추억으로 남은 덕분이었다.
‘불타는 청춘’이 선물해 준 좋은 기억 중 하나는 바로 청춘들이 이형철을 위해 준비한 ‘깜짝 생일파티’였다. 당시 ‘불타는 청춘’ 멤버들은 새로운 청춘으로 여행에 합류한 이형철을 위해 생일파티를 해 주었고, 그에 감동을 받은 이형철은 눈물을 글썽 거리기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린 이형철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위한 생일파티에 세계적인 성악가(김동규)가 나를 위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데, 정말 큰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불타는 청춘’에 계속 출연하고 싶었지만 바로 영화 촬영에 ‘끝에서 두 번째 사랑’ 촬영에 매진해야 했어요. 스케줄이 애매해서 꾸준히 출연할 수가 없었죠. 감사하게도 ‘불타는 청춘’ 사람들이 끝나고 한 번 놀러오라고 해서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출연하고 싶어요. 사람들도 좋았고, 웃기거나 잘 보이기 위해 꾸밀 필요도 없다보니 배우 이형철이 아닌 인간 이형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거든요.”
미국에서 생활하던 평범한 이십대 청년 이형철은 ‘연기를 하고 싶다’ 열망에 휩싸이면서 한국으로 건너왔고, 1995년 KBS ‘슈퍼탤런트’에 지원하게 됐다. ‘슈퍼탤런트’에서 동상을 수상하면서 시작된 연기는 어느덧 이형철에게 있어 직업이자 인생으로 자리잡게 됐다.
“저는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잘 했던 것도 아닌데 계속 불러주셨고, 연기라는 것이 자꾸 하다 보니 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사실 동기 중에 잘 된 친구도 있지만, 조용히 사라진 이들도 있어요. 이렇게 계속 연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한 번은 내가 왜 연기를 하고 싶은가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좋으니까, 그거 말고 따른 이유가 더 필요할까요.”
‘연기가 좋다’고 말한 이형철은 보여준 것보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 이형철이기에 그에게 있어 현재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지는 것이었다.
“제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은 어떤 드라마나 캐릭터에 의해 제가 하나의 프레임에 굳혀지지 거예요. 겁이나요. 배우라면 다양한 연기를 소화하며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적당한 선에서 잊혀지지 않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칠까 봐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로 남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현재 이형철에게 있어 가장 하고 도전하고 싶은 것은 영화였다. 드라마가 아닌 영화라는 장르에서
“정말 영화를 하고 싶어요. 영화 안에서 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면 작은 배역이라도 괜찮아요. 이형철이라는 배우가 TV에서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저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데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