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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진이 데뷔 11년 만에 tvN ‘혼술남녀’를 통해 배우 인생 제2막을 열었다. ‘혼술남녀’에서 ‘고쓰(고퀄리티 쓰레기)’ 진정석으로 열연한 그는 기존 수편의 드라마를 통해 보여줬던 성실, 진중하고 지고지순한 이미지를 넘어서는 180도 변신, 대중에 한층 친근한 배우로 다가섰다.
2030 세대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성공적으로 드라마를 마쳤음에도 하석진은 크게 도취돼 보이진 않았다. 의연 담담했고, 일희일비하지도 않았다. 골을 집어넣고 기분 좋게 포효할 법도 한데, 오히려 주먹 한 번 꽉 쥐고 함께 뛰는 동료들과 의를 다지는 스포츠맨 같은 느낌이랄까.
서울 한남동 모처에서 진행된 한시간 남짓의 인터뷰에선 지난 10여년의 연기 생활에 대해 “내 안의 작은 똘기를 키워가는 느낌”이란 뜻밖의 발언으로 취재진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배우에 대해 대중이 판단하는 완성체의 전형과 직업 배우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완성형으로 가는 길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하석진. 반가운 건, 예상보다 더 내면이 단단한, 그래서 다음 스텝이 더 기대되는 배우의 발견이다.
-‘혼술남녀’가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예전과 다른 반응 체감하나?
▲아무래도 젊은 층 대상 드라마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이슈가 많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재미있다는 이야기, 캐릭터가 돋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 팬층이 어려진 느낌도 들고, 좋다.
-초반 진정석이 보여준 모습은 ‘명존쎄’(명치를 매우 세게 때리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캐릭터가 강했는데 스스로 ‘명존쎄’ 하고 싶던 순간이 있다면?
▲소가 핥은 머리 하고 등장할 때 좀 그랬다. 엘리베이터에서 ‘민진웅씨’ 하며 이마 밀고 할 때.
-코믹연기 처음이었나?
▲예전 시트콤(‘스탠바이’) 때도 해봐서 처음은 아닌데, 많이 이슈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본인이 봐도 재미있었던 설정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애드리브도 시도했었는데, 혼자 차려입고 거울 보며 ‘이건 미션이다’ 할 때는 내가 봐도 웃기더라. 클러치 들고 결혼식장에 진지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어머니께서 ‘네가 TV 나온 것 중 제일 웃겼다’ 하시더라.
-본인에게 왜 ‘뇌섹남’ 이미지가 강한 것 같은가?
▲내가 그런 역할만 했나? 모르겠다. ‘혼술남녀’의 경우 시놉시스 처음 읽었을 때 자신 있었다. 나중에 뭔가 풀릴 사연이 있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재수 없는 캐릭터는 왠지 잘 이해해서 연기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이미지 캐스팅이란 게 있으니까, 가상의 캐스팅으로 언급이 됐었기 때문에 된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다른 이미지도 도전해봐야지 싶다.
-뇌섹남 이미지 부담 없나?
▲없다. 오히려 고마운 타이틀이다. 굳이 안좋은 점을 찾자면, ‘하석진은 너무 똑똑한 이미지’라는 고정관념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대중이 소비할 상품으로서는 고마운 타이틀 아닌가 싶다.
-극중 캐릭터와 비슷한 점은?
▲친구들도 욕한다. 특히 9, 10부에선 ‘아무리 연기지만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고 협박 문자가 오더라. (웃음) 실제 나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연예인 친구가 없고, 대부분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니까. 내가 TV에 나오는 것을 비교적 날 선 시선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친구들에게 학교 다닐때처럼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그런데 제 잘난 맛에 사는 건 좀 비슷한 것 같다. 원인불명의 자신감 같은 게 좀 있고.(웃음)
-부연하자면?
▲친구들 만날 때도 ‘TV에 나오는 애가 우리 모임에 왔다’는 정도로 있으려 하지 않고 편한 친구들 사이에 부르는 호칭을 서로 주고받으며 편하게 한다. 비단 연예인이 아니라도 직업상 지위에 따라 친한 사이에도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려 하지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선 철 들지 않으려 한다. ‘야 너 잘나가더라’ 하면 ‘어 나 잘 나가. 그런데 언제 없어질 지 몰라’ 이런 식으로 후후.
-원인불명의 자신감이란?
▲그냥 마냥, 잘 되겠지. 이런 게 있었다. 낙천적인 면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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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웃음), 친구들은 나를 고퀄리티라고 생각 안 하기 때문에. 내가 뭔가 멋있는 걸 하면 놀랄 뿐이지, 가까운 지인들은 굳이 나를 잘난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올해 작품 활동 열심히 하고 했는데 대중은 뭐랄까... 톱스타가 되기만을 원하는 것 같다. 항상 ‘왜 안 뜨냐’고 하는데 ‘왜 꼭 떠야만 되느냐’ 반문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 나는 이뤄야 할 게 아직 많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떠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
▲나는 그냥 열심히 살고, 행복하게 해가고 있는데, 왜 완성된 연예인은 꼭 떠야만 있는건가 싶기도 하다. 꼭 그것만이 완성된 직업인인건 아닌데, 드라마든 영화든 광고든 계속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일인데 꼭 누구처럼 한류스타가 되고 그래야만 완성된 것으로 보는 시각들은 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시각에서 봤을 땐 ‘나는 멀었지’ 하는 생각은 든다. 연기적으로만 생각하면 엄청난 선배들이 선보이시는 연기를 과연 나는 언제쯤 혹은 과연 할 수는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스스로 행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데뷔 후 5년은 직업의식도 뭣도 없이 회사에서 일을 가져다주니까 했는데, 최근 5년간은 조금씩 한계단씩 오르고 있는 것 같고, 내적인 부분도 성숙해가는 것 같다. 아직도 아이같은 부분도 있지만, 5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훨씬 더 많이 생각했고, 이 경사대로 계속 오르막을 올라가야 될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한다.
-배우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데뷔 후 꾸준하게 연기하고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일단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온 길이 있고, 오면서 조금씩이라도. 곁다리로 배워진 것들이 있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연기자를 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시켜서가 됐건 학교에서 맞기 싫어서가 됐건 비교적 열심히 살아온 20대 초반이었는데, 연기자 되고 근 5년을 그렇게 별 배움 없이, 공부할 때보다 대충 살고 있는데도 돈이 생기네, 시간이 생기네. 그런 걸 반성하면서. 내가 그래도 30 인생에 23년 24년 정도는 열심히 살았던 사람인데 왜 그 뒤로 더 열심히 못 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뒤로는 진지하게 연기자로서 직업의식을 갖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계기라기보다는...어느 순간 나이가 드니까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보면, 내 또래 사람들은 뭔가 직업을 찾고 안정된 걸 찾아가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우리 직업은 안정이란 건 없는 거고, 과연 내가 불러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생각이 들더라. 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가다 보면 망하겠다는 위기의식이 갑자기 들었다. 서른 즈음이었다. 이후 연기자 선배들 찾아가서 조언 얻고, 감독님 찾아가서 이런 생각들에 대해 고민 토로하고 그랬다.
-그 시점이 어느 작품 쯤이었나?
▲‘생초리’ 끝나고, 주말드라마 ‘내일이 오면’ 할 때 쯤이었다. ‘생초리’로 처음으로 주인공 하고 나서 유럽 여행 한 달간 다녀왔을 때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내가 제대로 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뭘 했나.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직업인이 아닌데. 자기반성을 했다.
-이후 달라진 점은?
▲그때부터는 작품 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고마운 기회고, 언제 다시 올 지 모른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 전에는 현장에서 NG 안 내고 OK 나면 퇴근이었는데, 이후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키는 인물로 만들어야 될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처음 연기를 친구 제안으로 시작했는데 후회는 없었나?
▲때때로, 후회라기보다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지금 시점에서는 죽을 때 그냥 평범한 대학 졸업해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좀 더 다이나믹하게 살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런 후회는 없고, 어쨌거나 내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는 다이나믹하게 재미있게 살고 있구나 싶다.
-최근 들어 배우 느낌에 스타성이 얹어지고 보다 대중 친화적으로 가는 것 같은데?
▲그런 얘기는...좀 어렵다. 어쨌든 경험이 쌓여 일을 계속 하고 있긴 하지만. 이 직업은 사실 예술가라 생각하는데, 기능직에서 예술가로 넘어가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고 타고나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난 막막하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를 만나면 스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과연 위대한 선배 배우들 급으로 연기를 할 순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해지는 거다. 물론 ‘나혼자산다’나 ‘문제적남자’ 등 예능도 하다 보니 대중성이 생기긴 했는데, 그냥 한 명의 보통 인간으로서 인터넷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지켜보면 악플이건 선플이건 재미있긴 하다. 고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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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코미디를 좀 하고 싶었다. 그랬는데 마침 하게 됐고. 이번 혼술남녀 대본이 너무 재미있게 잘 쓰여 있었기 때문에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거의 대본대로 했고 애드립이 많진 않았는데, 현장에서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들도 호흡이 너무 좋았고. 분위기가 스탭들이 키득거리는 느낌 드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코미디 왜 하고 싶었나?
▲즐거웠으면 했다. 내가 코미디 안 하더라도 장르가 코미디물이라,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또 내가 맡은 롤들이, 나는 까불고 싶은데 너는 안 돼 너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해 그런 게 있었었다. 실제 나와 캐릭터의 나를 구분지어야 하니까. 나는 상대 배우와 농담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슛 들어갈 때는 그러면 안 된다 했었는데, 이번에 맡은 진정석 같은 경우는 그래도 되는 씬이 많았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코미디 연기, 어렵진 않았나?
▲대본 자체가 철저하게 웃길 수 있는 콘텐츠였기 때문에 나는 그걸 살리기만 하면 됐다. 코미디는 어렵지만 대본이 다 했고, 나는 몸으로만 보여주면 됐다.
-말투나 표정. 반영이 많이 된 건가?
▲나는 별로 말도 잘 안 했다. ‘퀄리티 퀄리티’ 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최대한 찰지게 쳐보자 하고 길게 쳐봤는데, 16부에 민교수가 진정석 코스프레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를 따라하는 민교수 대본에 ‘쿼얼리티’라고 써있길래, 내가 그렇게 했었구나 싶다.(웃음)
-실제 퀄리티 따지는 게 있나?
▲밥 먹을 때. 고급을 따지는 게 아니라, 식사를 때우는 느낌을 싫어한다. 웬만하면 맛있는 음식을 하는, 입소문이 난 식당에서 밥을 먹자는 주의다. 그리고 전자제품은 그 장르에서 제일 좋은 걸 선호한다.
-예능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령 순발력 부분이라던가.
▲물론 순발력도 빨라졌고. 내가 낯을 좀 가리고 소극적인 편이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잘 못하는 편인데 게스트 맞이하고 하면서 그런 걸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진짜 하석진이라는 사람을 보여줌으로 인해 본업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하석진이 저런 역할만 해서 몰랐는데 이런 면도 있네? 하고, 선택해주는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준 창구가 되지 않았나 싶다. 멤버들끼리 친분이 쌓여 녹화장 가는 것도 즐겁고.
-배우로서 목표나 지향점이 있나?
▲없다. 성인 남성으로선 계속 직업을 갖고, 물의 안 일으키고 하는 게 목표고. 최고의 지향점이라는 게, 도달하면 좋겠지만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니까. 이 직업이란 게, 화가가 아무리 그림을 사랑해도 피카소 같은 그림 못 그리고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지금은 뇌섹남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데,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하석진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대중은 내가 나온 게 재미있거나 퀄리티가 있어야만 보지 않나. 그래도 팬들은 과거부터 내 모습을 쭉 지켜보시니까, 팬들이 보기엔 계속 성장해 가고 있고, 예전에 아쉬웠던 점이 고쳐지고 보완해가고, 이런 것도 해내네? 이런 식으로 성장해가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배우 하석진의 퀄리티는 어느 정도인 것 같은지?
▲내가 가진 퀄리티가 너무 없어서, 끊임없이 보완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보다는 30대 중반 한 남자로서는 퀄리티가 그래도 낫다는 생각 드는데, 배우로서는 타고나는 애들보다도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 그 노력이란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는 부족한 점은 뭔가?
▲더 풀어질 필요도 있고, 카메라 앞에서 더 자유로워져야 하기도 하고 더 진
-30대 중반 남성으로서는?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배우로서보다는 남자로서 그보단 좀 더 쳐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30대 남자로.
psyon@mk.co.kr/사진 마루기획[ⓒ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