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배우 권율은 더 이상 ‘밀키남’이 아니었다. 그 누가 알았을까. 마냥 착해보였던 권율의 눈빛 속에 섬뜩함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드러운 남자이자 자상한 키다리 아저씨이며 순정남의 대명사로 불렸던 권율이 이번에는 무섭게 변했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에서 권율이 맡은 역할은 악귀에게 빙의된 후 낮에는 젊고 자상한 대학교수, 뒤에서는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을 거침없이 죽이는 잔혹한 살인마라는 두 얼굴을 가진 주혜성이었다.
“‘싸우자 귀신아’는 선택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어요. 장르적으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많다보니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것인가 싶기도 했었고, 사람인지 아닌 존재를 연기하다보니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죠. 주혜성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싸우자 귀신아’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박준화 감독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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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보이는 대학생 봉팔(옥택연 분)과 여고생 귀신 현지(김소현 분)가 만든 달달한 로맨스를 만드는 주인공이었다면, ‘싸우자 귀신아’를 로맨틱 코미디에서 호러로 만든 주인공은 바로 주혜성이었다. 주혜성을 연기한 권율은 눈빛만으로도 극의 긴장감을 높였고, 그가 봉팔에게 당할 때까지 시청자들은 단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연기 톤을 잡아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연출자의 기술적인 작업에 많이 의지했고, 연기적으로면 눈을 뜨는 크기라든지 속도, 방향,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 등 각각의 소스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압도적인 컷을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해 나갔죠.”
임인스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싸우자 귀신아’는 귀신이 보이는 능력을 없앨 돈을 벌기 위해 귀신을 때려잡는 퇴마사 봉팔과 여고생 ‘오지랖 귀신’ 현지가 동고동락하며 함께 귀신을 쫓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원작은 누적 조회수만 7억 뷰를 자랑하며, 수많은 마나아를 보유한 인기 웹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원작 웹툰을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권율은 “조금은 봤지만 완벽하게 다 보지는 않았다. 원작이 있는 경우 읽고 상상할 수 있는 도와주는 작품은 읽지만 시각적인 잔상이 남는 작품은 못 읽겠더라”고 답했다.
“러브라인이 없는 것과 주주혜성이 악귀에 씐 인물이라는 것만 알고 것만 알고 촬영에 들어갔어요. 아무리 원작 웹툰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에 맞게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다보니, 큰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어요. 제가 알고 있었던 부분은 봉팔의 몸에서 나온 악귀가 주혜성의 몸으로 들어왔고, 그 악귀는 봉팔을 그리워하며 그의 주위를 맴돈다는 정도였죠”
극 초반 연기를 잡아가는데 있어 애를 먹은 권율은 뒤로 갈수록 체력과의 싸움을 벌였다. 몸을 써야 하는 힘든 촬영도 많았을 뿐 아니라 CG합성이 들어가는 만큼 기술적인 촬영에 대해 시간도 많이 걸렸던 것이다. 이미지를 잡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tvN에서 방송됐던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이하 ‘오나귀’) 속 자상한 얼굴 뒤 악귀에 빙의된 이후 살인을 저지른 최성재(임주환 분)과 캐릭터 설정을 비롯해 많은 부분이 비슷했던 만큼 자칫 잘못하면 어디서 본 듯한 연기가 돼 버리는 위험요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저는 사실 ‘오나귀’ 속 임주환 씨의 연기를 본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연기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고, 저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집중해 나갔죠. 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감사했던 것은, 한번쯤 해보고 싶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권율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이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도 이번 ‘싸우자 귀신아’를 통해 얻은 것 중 하나였어요.”
권율이 연기한 주혜성은 ‘싸우자 귀신아’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이자 또 가장 불쌍한 인물이기도 했다. 극중 주혜성이 악귀에 씐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어린 시절 부모로 붙어 받은 가정학대로였던 것이다. 주혜성이 가정학대로 괴로워하는 틈으로 악귀가 들어왔고, 자신을 때린 아버지를 죽이면서 악행이 시작된 것이다.
“저는 주혜성을 단순하게 극에 긴장감만 주는 기능적인 역할로 그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무섭지만 아픈 주혜성을 통해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싶었고, 더 나아가서 어린 시절 학대를 받고 소외를 당하고, 어떻게 보면 행복하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그 상처로 인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주혜성과 같은 불쌍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조금 더 둘러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그래서 극의 메시지가 조금이라도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안타깝고 불쌍한 주혜성이지만 그럼에도 구원은 있었다. 악귀가 소멸된 이후 인간으로 돌아온 주혜성의 손을 잡아주는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악귀로 인한 것이었다고 해도 주혜성이 저지른 죄는 쉽게 용서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마지막회에서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싸우자 귀신아’ 속 주혜성의 결말에 대해 권율은 “무척이나 만족한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아무리 악귀에 씌어서 한 악행이라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살인을 벌인 것이잖아요. 마지막에 인간 주혜성으로 돌아와 뉘우친다고 한들 사람들이 공감을 해 주실 수 있을까 생각거든요. 그리고 악귀에게 당한 피해자가 아닌 인간 주혜성으로서도 죄를 뉘우치고 인간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짧은 시간이라도 주혜성의 성장을 그리기 위해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권율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일까. 그와 함께 연기했던 김소현은 촬영에 대한 일화로 “현지를 죽이려는 주혜성을 연기하는 권율 오빠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정말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를 전하니 권율은 “제가 정말 잘해줬는데…”라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악귀를 연기를 함에 있어서 신 안에서의 분위기의 정서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극중에서 현지라는 캐릭터를 압박을 해야 했고, 뒤로 물러나게끔 하는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집중을 하려고 애를 썼죠. 처음에는 저를 부드럽게 봤기에 변했던 그 임팩트가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소현은 정말 영리한 배우에요. 상대방의 연기를 받아줄 줄 알고 또 언채 잘 하기에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죠.”
권율이 ‘싸우자 귀신아’에서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은 부드럽고 반듯한 이미지 뿐 아니라, 그의 정반대선상에 있는 서늘한 악인의 탈을 쓸 수 있는 배우라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함께 연기했던 배우마저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권율의 연기 몰입은 철저한 연구와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었다. 제작발표회에서 혹시 시킬지도 안 시킬지도 모를 애교의 톤과 손의 각도까지 공부하고 올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권율, 티 하나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그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청소’라고 답이 돌아온다. 범인으로서 취미가 청소라는 그의 말이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지만, 권율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연기를 생각해보니 어쩐지 잘 어울리는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를 말하면 몇몇 분들이 ‘네?’라고 하시는데, 진짜 취미가 청소에요. 촬영장이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난 뒤 휴식을 취하는 곳이 바로 집이거든요. 혼자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보니 늘 깨끗하게 해두고 있어요. 그리고 어지러움을 용납 못하다 보니, 청소를 하면서 복잡한 것들을 씻어 내려가는 느낌도 있어요.”
‘싸우자 귀신아’가 끝난 후 권율은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또 다시 달리기 위한 잠깐의 쉼표인 것이다. 악역에 대한 갈증을 푼
“뭔가 버겁게 할 수 있는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해보지 않았던 장르, 그리고 스스로 고통 받을 수 있는 작업, 느와르 같은 거 액션을 하고 싶어요. 쉬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끔 열심히 운동을 할 예정입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