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첫 회부터 호평 받고 있는 KBS1 ‘임진왜란1592’는 사극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는 작품으로 언급되고 있다. 기존 사극과 다르게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대해 한 발짝 다가가 이야기하고 장대한 스케일로 영화 같은 몰입감과 퀄리티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데 단번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임진왜란1592’는 오롯이 한 인물에게만 초점을 두지 않았다.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해상 전투에서 고군분투한 인물에도 초점을 맞춰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다양한 인물 중 이순신 장군 곁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인물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바로 거북선을 설계, 제작한 인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 나대용 장군으로, 이를 연기한 배우 정진이 그 주인공이다.
정진은 당초 나대용 장군으로 캐스팅된 배우가 아니다. 본래는 막둥이 아버지 역할로 캐스팅된 상태였던 것. 그러나 김한솔 PD와 미팅을 한 이후 제작진은 정진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부분을 캐치해 나대용 역할로 최종 캐스팅했다. 그렇게 나대용 장군이라는 인물과 인연을 맺게 된 정진은 완벽하게 실존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나대용 장군을 집중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나대용 장군은 거북선을 제작한 인물이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무과 시험을 본 인물이었다. 무과 시험을 본 인물임에도 거북선 말고도 조선시대 나오는 배들을 거의 다 제작을 한 대단한 분이였던 거다. 바로 조선시대 최고의 조선 업자였다. 무슨 이유로 배를 만들게 돼서 최고의 조선업자가 됐을까를 생각 하다 나왔던 결론은 ‘덕후’였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전쟁터에선 묵직한 분위기를 뽐내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정진이 생각한 나대용 장군은 배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나대용 장군만의 색깔을 파악한 이후 캐릭터만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결론을 내린 건 나대용 장군이 거북선을 완성한 이후 이순신 장군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처음에 배 만드는 장면이 있었다. 나대용 장군이 드디어 거북선을 만들어내서 신나서 달려가서 이순신 장군에게 보고하는 장면이다. 나대용 장군만의 느낌을 이 장면에서 잘 살릴 수 있다고 느꼈다. 굉장히 덕후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쟁에선 무신 느낌을 살려야했지만 이 장면에선 배만 생각하고 사랑하는 느낌을, 약간은 바보스러운 느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진은 그동안 그 누구도 표현하지 않았던 덕후스러운 느낌의 나대용 장군을 보여주기 위해 온몸을 날렸다. 이순신 장군에게 달려가다 계단에서 구르는 슬랩스틱을 선보인 것. 당시 제작진은 허리가 꺾어질 정도로 심하게 넘어진 정진을 보고 모두가 놀라 달려가기도 했다.
“어디서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너무나 배를 사랑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다. 덕후의 느낌을 잘 전달하고 싶던 찰나에 뭔가를 고민하다 완성해서 신나고 들뜬 기분을 계단에서 구르고 엉켜지는 스텝을 이용해 표현했다. 원래 슬랩스틱을 좋아하기도 한다. 매체 연기로 바뀌면서 카메라 앵글 사이즈에 따라서 연기가 조절이 되는데, 그걸로 표현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으로 슬랩스틱이 있다고 생각했다. 허수를 없애는 방법 중 하나가 슬랩스틱이라고 보는 거다. 몸으로 표현해내는 것에서는 그것보다 더한 기쁨도 없고 아픔도 없다. 이걸 미리 얘기하면 인위적인 연출이 될 수 있으니 돌발변수를 만들려고 했다.”
역사 속 인물을 현대 시각에 맞추어 그만의 캐릭터로 빚어내 완벽하게 표현한 정진은 ‘임진왜란1592’을 출연하면서 가장 큰 부담이 있었다. 이는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부담감이 아닌 이순신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꼈고 어떻게 하면 정확하고 재밌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췄다.
“이걸 어떻게 해야 더 정확하게, 재밌게, 감동적으로 전해줄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시각도 담겨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또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갖고 있을 고정관념이 있을 텐데 이건 엄청난 연기력이 아니면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 사람들이 절대 그렇게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을 거다. 변하지 않은 고정의식은 상수로 항상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정의식을 모았고 묶어봤더니 덕후가 나오게 된 거다. 이 덕후에서 약간의 확장을 가지고 나만의 캐릭터로 완성시켰다.”
수많은 연구 끝에 극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던 정진은 ‘임진왜란1592’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같은 부분은 시청자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연기자로서 색다르게 시도한 작품에 참여한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조금 더 시청자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지만 정진은 이번 작품을 통해 크게 얻은 부분으로 ‘사극을 대하는 자세’를 꼽았다.
“사극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 그동안 사극을 하면서 예전에 살던 사람들도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사극톤 보다는 유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걸 느끼게 됐다. 역시 사극도 그 시대가 갖고 있는 디테일이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가 갖고 있는 변하지 않는 디테일, 아픔, 슬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예전엔 그저 내뱉는 배설을 중점으로 연기했다면 ‘임진왜란1592’에선 내면에 아픔을 중점을 두었었다.”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