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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마흔이 됐을 때, 초라한 배우가 되지 말자'고. 늘 해왔던 연기,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만 하다 보면 연기 폭이나 스펙트럼이 넓지 않아 초라해보인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악역도 하고, 멜로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다양한 장르를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아직 거기까지 오진 않았지만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지태는 바쁘다.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약하다 보니 평소에도 시나리오 집필과 연출 공부로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정에 소홀하진 않는다. 실사판 '사랑꾼'인 그는 아내(배우 김효진)와는 "친구 같은" 부부로 지내고, 아빠로서의 시간도 반드시 확보한다.
"최근 '굿와이프' 촬영으로 힘들었지만 보통 아빠들처럼 토, 일요일에 있는 힘껏 놀아준다"고 한다는 유지태는, 그래서 더 "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의 배우관(觀)은 "연극처럼 배우 역시 매일매일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이에 근거해 식단 조절와 운동은 기본, 데뷔 19년차인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씩 꾸준히 발성 연습을 하고 있다.
덕분에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굿와이프' 속 유지태는 죄수복을 입고 있어도 설렜고, '쓰랑꾼'이라는 아이러니한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눈빛과 음성으로 시청자를 묘하게 설득했다. 유지태이기에 가능했던 '굿와이프' 속 이태준은 그의 오랜 노력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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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만큼은 언제나 선한 얼굴이지만 때로는 뻔뻔하게 상대를 위압하는 캐릭터를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을 법 하지만 유지태는 "애초에 인물 자체가 그렇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놀기가 쉽다"고 운을 뗐다.
"악역을 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선택한 이상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어필할까를 고민했다"는 그는 "이미 나쁜 사건들이 드러난 상태에서 진실되게 사랑을 표현한다면 더 입체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쓰레기 같은 행각에도 아내 혜경(전도연 분)에게만큼은 세상 둘도 없는 사랑꾼의 모습을 보인 변화무쌍함에 대해서는 "감독님이 뉘앙스의 변화를 잘 저지해주셨다. 너무 사랑꾼으로 가게 되면 쓰레기처럼 만들어주시는 등 섬세하게 비율을 맞추려 노력하셨다"며 씩 웃었다.
혜경 앞에선 '이태준답지 않게' 찌질한 모습을 보인 태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이는 유지태 스스로도 오묘한 줄타기를 한 부분이었다.
"진실일까, 거짓일까. 이용하는 걸까, 사랑일까. 줄타기를 계속 했어요. 뉘앙스의 차이인 거니까. 대사의 양보다는 어떤 말을 어떻게 연기하느냐가 중요했죠. 뉘앙스에 따라 표현이 완전 달라졌거든요. 가령 서중원에게 '당신이 돈을 준 판사 이름을 말하라'는 씬에서도 두 가지 뉘앙스로 표현해봤어요. '네가 내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으니 널 망가뜨리겠다'는 뉘앙스 그리고 '너는 내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지만 나는 널 이용해서 내 야망을 이룰거야'라는 뉘앙스로 해봤는데 둘의 느낌이 완전 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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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대중 앞에 선 '배우' 유지태의 지난 시간은, 데뷔 초 꿈꾼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위해 묵묵히 다져온 길이었다.
한때 '공인 멜로남'이었던 그는 영화 '올드보이'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에서 강렬한 악역으로 사랑받았다. 여전히 "복합적인 내면을 지닌 악역이라면 OK"지만 악역 이미지가 고착되는 건 '노 땡큐'다.
"솔직히 배우로서 일상 삶을 사는 데는 불편하지만(웃음) 악역을 했을 때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나쁜 역할을 계속 맡다 보면 고착되는 게 있거든요. 과거엔 멜로남 이미지를 탈피하고 마음이 있었는데
개봉을 앞둔 영화 '스플릿'에서는 코믹한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전에 없이 완전 망가진다"고 차기작 캐릭터 변신을 예고한 그는 "기존 봐왔던 내 모습과 다를 것"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psyon@mk.co.kr/사진 나무엑터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