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최윤나 기자] 김지운 감독은 이미 한국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영화계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그가 영화 ‘밀정’을 통해서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그 아픈 시대를 배경으로, 밀정(스파이)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김지운 감독이 ‘밀정’을 연출할 당시, ‘콜드 느와르’라는 장르로 시작했다가 ‘뜨거운 영화’로 끝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들어보았다.
“스파이의 냉혹한 세계를 다루자고 해서 블랙, 블루 등 차가운 계열을 많이 사용했어요. 색 보정도 그렇게 했고요. 당시 시대적 배경 때문에 목재를 써야했지만 그것도 최대한 빼냈죠. 근데 그러다가 의열단 이야기를 하면서 뜨거워져서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결국 차갑게 시작해서 뜨겁게 끝난 영화가 됐죠. 사실 영화에서 인물들이 자신의 심경을 막 상세히 이야기를 안 하는데, 저는 이런 표현 방식이 시네마라고 하고 싶었어요.”
사실 최근에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많은 감독들의 영화들이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등이 그 예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김지운 감독도 ‘밀정’으로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를 가지고 또 다른 그만의 색깔을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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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사실 다른 영화들을 작업하다가, ‘밀정’ 시나리오를 봤어요. 시나리오는 정말 묵직하고 진중하더라고요. 시나리오는 좋은데 상업적인 그런 의미가 부족하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처음과 끝에 두 신 정도를 더 집어넣고, 시나리오를 완성시켰어요. 원작의 진중함과 묵직함, 그리고 기차 신으로 보여줄 수 있는 스파이영화의 서스펜스나 긴장감으로 상업적인 부분을 넣으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암살’이 촬영 진행 중이었고, 허진호 감독도 비슷한 시기였죠. 그래서 저는 또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지만 이야기를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하게 됐어요. 같은 이야기가 각기 다른 해석, 이런 것들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고요.”
김지운 감독만의 해석은 ‘밀정’에서 나타는 분위기로 느낄 수 있다. 일제강점기 그 시대의 환경에서 항일 혹은 친일을 행했던 ‘그럴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김지운 감독 특유의 감성이 가득 담긴 영화 속의 분위기가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까지 밸런스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계속 뭔가 저에게 안 보이는 그런 가이드선이 있었어요. 너무 높거나 낮고 또는 삐딱하면, 결과는 모르지만 맞다 생각하는 걸 만들어 가는 거죠. 너무 스펙터클 해보이면 왜 이 시대의 이야기를 이렇게 유쾌하게 하냐 할 수 있고, 또 주제만 드러나면 영화가 뭐 하러 필요하냐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또 소리, 색감 그런 것들로 조율을 한 거예요. 연주자가 너무 팽팽하면 조금씩 풀어주는 것처럼요. 매일 연주를 하면서도 매일 튜닝을 하듯, 그런 과정을 첫날부터 끝날 때까지 하는 거예요. 오감을 팽팽하게 열고, 감성 하나 놓치지 않는 방법은 그것뿐이죠.”
김지운 감독의 섬세한 연출뿐만 아니라, ‘밀정’에 등장하는 다양한 배우들의 변주들도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한 몫을 톡톡히 했다. 표정 하나만으로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배우 송강호가 그랬고, 그런 송강호와 맞서서 자신의 연기를 펼치는 공유, 또 이번 영화를 통해서 남다른 존재감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 엄태구의 재발견이 돋보였다.
“송강호의 상대역은, 어떤 강렬한 로망이면서도 엄청난 압박이었을 거예요. 저도 사석에서 송강호와 둘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후배 배우는 얼마나 압박을 받겠어요. 특히나 공유와 엄태구가 너무나 잘해줬어요. 공유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엄태구는 텐션의 방식으로 송강호와 호흡했죠. 송강호의 연기가 좋았다면 그건 공유가 잘 싸움(상대가)이 됐기 때문이죠. 그런 부분에서 공유가 배우랑 싸움할 절 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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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엄태구가 맡은 하시모토 역할은 오디션을 통해서 뽑았어요. ‘잉투기’를 보면서 깨달았는데 엄태구가 ‘악마를 보았다’에 단역으로도 나왔었지만, ‘저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놀랐죠. ‘베테랑’ ‘소수의견’ ‘차이나타운’까지 너무 좋았었고, 그래서 엄태구 오디션을 봤죠. 그 하시모토 역을 탐낸 배우들이 많았어요.”
‘밀정’은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시대, 또 몇몇은 실제 인물을 토대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콜드 느와르’를 원했던 김지운 감독의 방향이 ‘뜨거운 영화’로 끝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표면 위에 올라와있는 것 중에서는 7대3 정도는 위장친일파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나머지 두, 세 개 정도는 (위장친일파가) 확실치 않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근데 그것보다는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었던, 또 선조들이 그런 경계선에 놓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었을까를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게 친일파든 위장친일파는 중요하지 않았죠.”
“형무소 근처에서 촬영을 할 때였는데, 그날이 가장 추운 날이었어요. 근데 형무소 특유의 냉기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이 교도소에 수많은 원한이 있구나 싶었어요.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땅의 기운을 바꾸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교도소 안도 끔찍할 정도로 추웠어요. 심상찮은 기운이 있었죠.”
김지운 감독의 스펙트럼은 넓다. 그게 매번 그의 작품이 어떤 분위기를 느끼게 만들지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 이후 그의 계획에 대한 생각, 그리고 ‘밀정’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물었다.
“장르가 바뀌어도 영화적인 취향, 방식은 같으니까요. 아마 형태는 달라도 관통하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영화를 20년 가까이 했지만, 완성화 되는 단계죠. 대중예술가든, 순수예술가든 머물러있으면 안되고 계속 흘러가야 하는
최윤나 기자 refuge_cosmo@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