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 대부업체 맹실장 役
"기존 이미지 바뀌어도 항상 도전하고 싶어요"
"연기 욕심 더 부려야죠"
배우 권율(34)의 젠틀한 이미지는 철저히 무너져 내린다. 팬들이 실망할 수도 있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슈트 차림은 이번에도 잘 어울리는데, 그 옷맵시만큼 멋진 역할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연히 발견된 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오르지 말아야 할 산에 오른 동근(조진웅) 등 엽사들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사냥꾼 기성(안성기)의 목숨을 건 16시간의 추격을 다룬 영화 '사냥'(감독 이우철, 29일 개봉)에서 그는 악한 엽사 무리 중 한 명인 맹실장 역할을 맡았다.
극 중 황금에 욕심을 낸 대부업체 맹실장은 그 무리에서조차 환영받는 인물은 아닌 듯 그려진다. 다른 엽사 무리를 무시하며 건방 떨고 깐족대는 스타일이 미덥지 않다. 하지만 권율은 맹실장을 맡아 행복하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이미지를 억지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저는 하고 싶은 역할, 할 수 있는 역할을 두려움 없이 다가가는 것 같아요. 기존 이미지가 바뀔지언정 어떤 역할이든 두려움 없이 도전하자는 생각이 크거든요."
맹실장은 다른 엽사 무리와 달리 감정 변화의 폭이 크다. 죽은 동료의 발에 자신의 구두 치수가 맞나 대보고 신발을 벗겨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보일 때 특히 돋보인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하는 이유다. 기성과 대결하는 또 하나의 사냥꾼으로 완벽히 탈바꿈된다.
권율을 돋보이게 하는 이 지점은 사실 조진웅의 도움이 컸다. 권율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던 신이었는데 현장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짚었다.
"(조)진웅 선배와 출연진이 회의할 때 나온 아이디어였죠. 제가 슈트에 구두를 신고 다니니깐 발이 접질리고, 아프더라고요. 그걸 본 진웅 형님이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더 뛰어다녀야 하고, 더 추워질 텐데 다른 사람의 옷을 입든지, 신발을 신든지 하는 게 어떻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아이디어를 감독님이 받아들이셨죠. 그 장면이 없었다면 맹실장이 그리 임팩트 없지 않았을까 할 정도예요. 이 정도면 우연이면서도 필연적인 신이 아니었을까요?(웃음)"
"편집된 건 없어요. 전 형님들이 뛰어다닐 때 위에서 '화이팅! 형~ 조금 더 빨리 뛰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해 욕을 들었을 뿐이죠(웃음). 구두 신으니 발이 아팠고 정장을 입어 춥긴 했지만, 다른 분들이 더 힘드셨죠. 특히 안성기 선배님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건강하셔서 제가 조금이라도 예민할 순간이 없었어요. 형들이 내가 너무 편한 것 같아서 몰래카메라도 시도했는데 그냥 모르는 척 속아줬어요. 성질 돋우면 안 되잖아요. 헤헤. 물론 형님들이 저를 귀엽게 봐줘서 즐겁게 모든 촬영을 한 것이겠지만요."
권율은 영화 '명량'에서 만난 김한민 감독과의 인연으로 '사냥'에 출연하게 됐다. 제작사 대표이기도 한 김 감독이 '사냥'을 기획했고, 안성기를 주인공으로 내정해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율아, 네가 맹실장을 맡으면 재미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는 김한민 감독의 말도 기분 좋고 고마웠지만, 대선배 안성기와의 호흡도 끌리는 지점이었다.
"'명량'의 최민식 선배나 '사냥'의 안성기 선배들을 보면 내가 감히 어떻게 평가를 하긴 죄송하지만 후배들이 존경하는 이유가 당연히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포용력, 친화력, 작품을 향한 집중력 등등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요. 오래했다고, 스타가 됐다고 그들에게서 느끼는 존경심과는 다른 것이죠. 후배라면 누구나 작업하고픈 선배들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선배들이 꽤 많으셔서 좋아요."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서현진이 '또 오해영'으로 사랑받았는데 그 시간대를 잇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권율은 "부담이라기보다 고정 시청자층을 모아준 게 고마운 상황"이라며 "어느 작품이나 마찬가지로 부담은 있다. 다만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 또 내 연기가 작품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큰 부
연기하면 할수록 더 욕심을 부려 연기하고 싶다는 권율. 그는 "누군가를 해하거나 상처 주고 아프게 하려는 욕심이 아니다"라며 "스스로에 대해 어떤 한계를 두지 말자는 욕심이 더 생겼다. 내가 배고프고 갈증을 느꼈던 마음이 초심이기에 계속 그 욕심을 잃고 싶진 않다"고 했다.
jeigu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