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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청년은 살을 에는 혹한 속에서 이를 악 물었다. “배우로서 1%의 재능도 없다”는 혹평에 낙담하며 3시간이 넘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포기할까” “정말 끼가 없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이 청년을 잠식했다. 누군들 꿈과 현실 사이에 갈등 한 번 해보지 않았겠나. 배우 진혁(30)도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있는 청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추위 속에서 그의 생각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말에 흔들려, 정신 차려!” 마음 한 켠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다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진혁은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연기와 학업은 물론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며 하루 24시간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코피를 쏟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악착같이 배우라는 꿈을 위해 내달렸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약간의 ‘운빨’도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피와 땀으로 이뤄진 그의 노력 앞에 ‘운’은 그저 양념이었을 뿐.
웹드라마 ‘뷰티학개론’에서 탁월한 감초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후 MBC ‘운빨로맨스’ 출연까지 쉴 틈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진혁. 훤칠한 키에 훈훈한 외모 그리고 매력적인 사투리까지. ‘허당’스러우면서도 ‘당찬’ 4년차 중고 신인 진혁의 매력을 낱낱이 파헤쳐보자. 본격, 신인 적극 권장 ‘사심’ 인터뷰 시작!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정영 기자]
이기자 : ‘뷰티학개론’ 자타공인 퀵마스우스로 신스틸러 자리를 당당히 꿰찬 진혁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키가 정말 크시네요!
진혁 : 반갑습니다! 사실 저도 의문이랍니다. 키가 아직도 자라고 있는 것 같거든요.
이기자 : 네? 이거 해외 토픽감 아닌가요?(하하하) 아니, 그런데 지금 밖에 온도가 30도가 육박하는데 루이보스 티를 드시네요?
진혁 : 제 나이 앞자리가 이제 ‘2’가 아닌 ‘3’이다보니 몸을 챙길 때가 됐음을 느낍니다. 10년 전부터 먹은 인스턴트들이 쌓여서 작년에 반응을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뷰티학개론’ 때 오죽하면 별명이 아홉시였다니까요.
이기자 : 아홉시요?
진혁 : 네, 저녁 아홉시가 되면 한계가 오더라고요. 고개가 점점 떨궈진다고 해야 하나. 어린 친구들이 그걸 보고 많이 놀렸어요.(하하하) 요즘 건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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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 ‘뷰티학개론’ 얘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어떻게 출연하시게 된 건가요?
진혁 : 감독님이 미팅을 제안했어요. 당연히 미팅에서 표준어로 연기했는데, 감독님이 오히려 사투리를 권하더라고요.(하하하) 사이다 광고를 한 번 찍었는데요. 거기서 사투리 쓰는 모습을 보고 연락준거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미팅 이후 피 말리는 나날이 이어졌죠.
이기자 : 왜요?
진혁 : 보통 미팅하고 2,3일 후에 연락이 오거든요? 근데 일주일이 넘어도 연락이 없는 거예요. 망연자실했죠. 그 전에 공백기가 좀 길어서 정말 간절했거든요. 알고 보니 고난이라는 캐릭터 성격을 완전 바꾸고 저를 캐스팅 해준 거예요. 너무 감사했죠. 뒤풀이 때도 감독님께 뽑아줘서 고맙다고 자주 얘기했어요. 이 작품이 저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으니까요.
이기자 : 뭔가 깨달음을 얻었나 봐요.
진혁 : 큰 깨달음이라기보다 ‘내가 연기를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 이런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어요.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인데, 이번 작품을 통해 촬영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러모로 좀 더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됐죠. 지금 찍고 있는 ‘운빨로맨스’에서도 제 의견을 많이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기자 : 그러고 보니 ‘운빨로맨스’에도 출연 중이죠! 류준열 씨가 운영하는 제제 팩토리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어떤 역인지 소개 좀 부탁드려요~
진혁 : 드라마를 잘 보면 오타쿠들이 총집합해 있어요. 제가 그나마 정상일걸요?(하하하) 저는 IT 기기 오타쿠 류지훈이라는 인물로 등장해요. 게임 회사인 제제 팩토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나요? 에너지 드링크 중독, 셀카 중독, 음식 중독 등등 재밌는 캐릭터가 많아요.
이기자 : 정말 신선한데요. 촬영장 분위기도 좋을 것 같아요.
진혁 : 너무 재밌어요. 하나의 팀으로 나오기 때문에 촬영도 함께 하고 대기실도 같이 써요. 남자 중에서는 제가 제일 막내인데, 괴롭힘 아닌 괴롭힘을 많이 당하죠.(하하하) 매일이 소풍가는 느낌처럼 분위기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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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 그럼 언제부터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진혁 :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가 좀 맞는 것 같거든요!
이기자 : 새옹지마요?
진혁 : 시작은 재수였어요. 재수를 해서 본의 아니게 군대를 1년 늦게 들어가게 됐어요. 또 악기를 다룰 수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군악대로 전출가게 됐고요. 재수를 한 것도 전출을 간 것도 다 원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정말 싫었죠. 하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이 귀인을 만나게 해준 계기가 됐어요.
이기자 : 귀인이라면?
진혁 : 군악대에서 만난 배우 박효준 형이 제 선임이었는데 정말 잘 챙겨줬거든요. 그 분 덕분에 제가 연기를 하게 됐죠. 연기에 대해 관심은 항상 있었지만, 끼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형이 자신감을 많이 줬어요. 시나리오 연습도 같이 하고, 제대하고 소속사 관계자 분도 소개시켜줬어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이기자 : 마치 ‘운빨 브로맨스’ 같네요?
진혁 :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사실이 그런 것 같아요. 하루만 타이밍이 달려졌어도 그 형을 만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이후에도 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많이 알려줬어요. 밥 먹으면서 뜬금없이 ‘고마워!’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
이기자 : 그래서 데뷔가 좀 늦었군요.
진혁 : 아마 다른 친구들 보다는 늦은 감이 없지 않죠. 26살에 데뷔했어요. 당시 촬영할 때는 모니터하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제가 연기하는 그 순간이 TV에 나오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 신기했죠. 이후에는 연기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점점 연기의 매력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독한 구석도 생겼고요.
이기자 : 독한 구석이요? 뭔가 고생했던 일이 있었나요?
진혁 : 연기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진심으로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1%의 재능도 안 보인다고요. 그 소리 듣고 신사동 학원에서 회기역에 있는 집까지 걸어왔어요. 생각 정리를 하려고요. 그 당시에 한 겨울이었는데, 엄청 슬펐는데 춥기도 춥더라고요.(하하하) 하지만 걸을 때마다 반성했어요.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말에 흔들리나’ ‘두 번 다시 이런 취급은 받지 않겠어!’ 다짐하면서 독기를 품었던 것 같아요.
이기자 : 그 먼 곳을 걷다니! 정말 충격이었나 봐요.
진혁 : 충격이었죠. 쉬운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배움에 대한 욕심도 있어서 전공 공부하면서 연기를 병행했을 때였어요. 그 때는 젊은 마음에 ‘두 마리 토끼를 왜 못 잡아’ 이랬던 것 같아요. 이수는 다 못했지만, 금융학과 법학을 복수 전공하고 이후의 시간에는 연기에 전념했어요. 코피도 여러 번 쏟았는데 정말 후회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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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 전공에 연기까지 숨 쉴 틈 없이 달려오셨네요. 근데 여기서 궁금증 하나! 혹시 진혁이 본명이신가요?
진혁 : 네 맞습니다. 다들 SBS 진혁 PD님과 이름이 같아서 오해하는 해프닝이 벌어질 때도 있어요. 감독님과 꼭 한 번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이기자 : 하하하, 파이팅 넘치는 모습 좋습니다! 이건 [뜰 거야] 시리즈의 공식 질문인데요! 본인의 매력 포인트 3가지를 꼽자면?
진혁 : 눈,코,입? 죄송합니다. 친근감과 허술함 같아요. 첫 이미지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저 그렇게 어려운 사람 아닙니다. 허당기 많다는 말 많이 들어요.
이기자 : 아, 센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역할은?
진혁 : 무슨 역할이라도 좋으니까 일단 다 해보고 싶어요. 아, 말 많이 안하는 살인범 역할도 잘 해낼 것 같아요.
이기자 : 살인범이면 살인범이지 말 많이 안하는 건 뭐예요?
진혁 : ‘뷰티학개론’에서 말을 굉장히 많이 했잖아요. 까불거리는 모습은 보여드렸으니까, 좀 다른 느낌을 살려보고 싶다는 거죠.(하하하)
이기자 : 그렇다면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진혁 : ‘믿보혁’이요! 제가 출연하는 작품들은 믿고 본다 이런 거죠. 또 연예인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싫어요. 최대한 팬 분들과 소통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최민식 선배님이 롤모델인 것도 그 이유에요. 그 연배와 경력에도 순수하고 맑은 느낌이 드시거든요. 그 나이가 됐을 때도 저라는 사람 역시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기자 : 그렇군요. 꼭 그렇게 되길 바랄게요. 올해의 목표는 뭘까요?
진혁 : 멋있게 재밌게 살기! 누가 봐도 ‘고급진’ 연기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성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아! ‘뷰티학개론’ 보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음주를 하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K-뷰티스쿨은 대학교랍니다! 미국의 몇몇 특수목적대학교에서 교복 입는 것을 콘셉트로 잡아서 저희도 그랬던 거예요. 오해마시길~![ⓒ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