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차가운 인상 탓에 ‘악녀’나 ‘차도녀’로 깊은 인상을 심었던 배우 유인영이 간만에 ‘착한’ 역할로 찾아왔다. 바로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통해서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라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 유인영의 모습이 극중 초반, 주인공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던 윤마리와 어딘지 비슷해 보였다.
유인영은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서 차지원(이진욱 분)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갑자기 행방불명된 그 대신 민선재(김강우 분)와 결혼을 하는 비련의 여인 윤마리 역을 맡았다. 그는 “극 내내 위험한 액션신이 있었는데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끝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종영 소감을 말했다. 마지막 순간 자신을 속이고 악행을 저지른 민선재를 기다리기로 한 결말에 대해서도 “전 마음에 들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 사진제공=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
“저는 윤마리가 나쁘게 그려지는 게 싫었다. 열린 결말이 되거나 민선재, 윤마리가 각자의 삶을 산다면 윤마리가 못돼 보일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리라는 캐릭터가 저 때문에 손해보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마리는 결코 나쁜 애가 아닌데, 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괜히 누군가를 배신하고 그런 것 같이 느껴지나보다.(웃음) 그런 상황에서 엔딩까지 각자의 삶을 선택한다면, 저 때문에 마리가 너무 피해보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전 다행이라고, 잘 됐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윤마리가 “손해를 봤다”고 말하는 유인영의 말이 의외였다. 그러고 보니 제작발표회에서 “남주인공들에 사랑받는 역할을 맡아 영광”이라고 기뻐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인영은 이를 듣고는 “그 행복이 너무 짧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유인영은 “제가 한창 발랄한 연기를 한 모습을 많이 못 보신 것 같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꺼번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체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처음엔 발랄하고 사랑받는 윤마리를 제가 맡았다는 것에 ‘캐스팅 미스 아닐까’하는 시선이 있었다면, 지금은 ‘유인영이 저런 캐릭터를 했는데 나쁘지 않았어’라는 말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얻은 수확이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어느 정도 제 이미지와 캐릭터의 ‘갭’을 줄인 것이기도 하고.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그런 점에서 제게 도움을 참 많이 줬다.”
↑ 사진제공=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
이번 작품에서 유인영은 초반엔 마냥 사랑만 받다가 끝으로 갈수록 남편의 배신, 죽은 줄 알았던 정인(情人)과의 재회 등 믿기 힘든 상황에 놓인 여자 윤마리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감정신이 워낙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질문에 “안 그래도 작가님께서 처음에 저와 김강우(민선재 역)오빠한테 ‘감정 소모가 가장 클 것’이라고 겁을 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마리를 연기하면서 ‘쉬운 건 없다’라는 걸 느꼈다. ‘악녀’ 연기를 하면서는 이유 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제가 제일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밝은 모습을 연기할 때에도, 배신당하는 연기를 해도 나름의 힘든 것들이 있더라. 무엇보다 저는 민선재와 차지원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게 힘들었다. 두 사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유인영은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그 적정선이 어디인지 감 잡기 힘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힘들 만도 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고, 그의 친구와 결혼했는데, 그 사람이 살아 돌아 왔으니 말이다. 유인영은 “윤마리가 민선재와 결혼하는 것은 여성분들이 공감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보다 공감도가 떨어져서 난감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 사진제공=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 와중에 믿음직한 친구가 저를 향한 마음을 계속 표현하니 당연히 마리의 마음이 선재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차지원이 보낸 편지를 숨기는 부분이 어렵게 표현돼 윤마리가 차지원의 생존을 아는데도 결혼했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엔 왜 윤마리에 공감하지 못하시는지 알쏭달쏭했다. 그래도 나중엔 윤마리에 안쓰럽다고 해주시는 걸 보며 위안을 받았다.”
그는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통해 단기간에 폭넓은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 연기를 해냈고, 그만큼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유인영의 ‘소화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반에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기세 때문에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유인영은 “오히려 주변에서는 ‘어떻게 해’ 이랬는데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태양의 후예’가)워낙 잘 된 드라마이기도 했고, 거긴 정점을 찍고 치고 나갈 때였다. 어느 정도 비슷해야 라이벌 의식도 느끼고 하지.(웃음) 그래도 시청층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 드라마가 끝나고 우리 드라마가 시청률이 한꺼번에 훅 올랐을 때에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유지를 꾸준히 하고, 한 회에 1%씩 꾸준히 올렸다는 점에서 다들 뿌듯해하고 기뻐했다.”
그래도 종영할 때에는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달성했고, 조 1위로 퇴장을 했다. 게다가 유인영 스스로에게는 평소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를 시청자에 선보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유인영은 “전 예능도 많이 안 나가고 SNS도 안 한다”며 “때론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게 제 무기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보여줄 게 아직도 산더미 같은 배우 유인영.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