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도망치다가 맨홀 뚜껑을 밟고 미끄러졌다가 일어나 달리는 NG 컷은 긴박감이 그대로 묻어났기에 그대로 사용됐다. 영화 '추격자'에서 '4885' 하정우의 실감 나는 연기 덕이다.
그뿐 아니라 소름 끼치는 눈빛 연기를 선보인 하정우는 '추격자'에서 악역으로 제대로 주목받았다. 그 눈빛은 이제 사랑을 갈구하는 찌질남의 간절함('러브픽션')으로, 민의를 대변했던 민머리의 무식함('군도')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음유시인 하와이 피스톨의 분노(암살)로, 아비의 자식을 향한 미움과 사랑('허삼관')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 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황해'에서도 그는 악역은 아니었다. 삶을 향한 간절한 눈빛이 일품이었다. 하정우의 '김먹방'이 떠돌아다니는 아쉬움까지 남겼지만, 정작 본인은 "한 번도 먹방을 의식하지 않았다"며 개의치 않아 한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도 조직폭력배인데 이상하게 친근했다. '중국 음식 먹방' 탓이다.
하정우는 '추격자'에 버금가는 나쁜 놈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를 통해서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그 재산을 노리는 백작, 백작이 고용한 아가씨의 하녀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아가씨(김민희)의 상대역인 백작 역을 맡았다.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고 꼼수를 부리는 이 남자는 야비한 인물이다. 아무래도 동의를 구하기는 어려운 캐릭터다. 다른 이를 교사해 자신의 목적을 채우려 한다. 그간 쌓은 이미지가 한방에 훅 갈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모험이자 도전작이다. 영화를 보면 하정우를 때려주고 싶은 관객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아가씨'에서 만날 하정우를 향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정사신을 벌인 김민희와 신예 김태리 못지않게 존재감을 각인할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와 '황해'에 이어 또 한 번 칸에 입성하는 결과까지 얻었으니 기대치는 더 높다. 더욱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니 더 그렇다.
앞서 영화
관객을 소름 돋게 했던 '4885'의 눈빛과 비슷하면서 또 다른 눈빛이 기대된다. 6월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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