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훈 기자] 1999년 ‘블레어 윗치’라는 영화가 공포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크게 잔인한 장면은 없었다. 블레어라 불리는 깊은 숲속 지역, 발생된 어린이 대량학살의 원인으로 불리는 초자연적 유령에 대한 전설을 다큐멘터리로 꾸며낸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공포영화의 매우 진부한 서사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은 것은 이 영화가 진짜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빙자한, 페이크다큐멘터리였다는 것이다. 사실과 진짜를 넘나드는 영화의 구성은 큰 화제를 모았다.
진짜일까. 아닐까. 둘 다라면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페이크다큐멘터리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서 모큐멘터리(‘흉내내다, 놀리다’는 의미의 모크(mock)와 다큐멘터리(documentary)를 합성한 단어)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예능프로그램으로서 대중들에게 조금씩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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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이주영 |
◇’독고영재의 스캔들’
‘케이블방송의 시청률이 1%넘으면 성공’이라고 일컬어지던 2007년, tvN에서는 3%가 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독고영재의 스캔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불륜 현장을 덮치는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치터스’를 모방했다.
몰래카메라 형태로 제작됐으며 불륜 현장을 훔쳐보는, 다소 자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당시 페이크다큐에 대해 이해도가 부족했던 몇몇 사람들은 진짜 다큐멘터리라고 믿을 정도. 연출된 내용임에도 자칫 현실로 오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낚시방송’이라는 시청자의 빈축과 함께 종영됐다.
비슷한 프로그램으로는 ‘리얼스토리 묘’가 있었으며 이 역시 수많은 논란과 함께 종영했다. 이 두 프로그램 모두 모큐멘터리 예능이 아닌 페이큐다큐지만 앞으로 소개될 프로그램의 초석을 다졌다는 의미가 있다.
◇‘코미디쇼 희희낙락-유세윤의 인간극장’
2009년 방송된 KBS2 ‘코미디쇼 희희낙락’은 공개 코미디가 유행하던 시절 틈새시장을 공략한 비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녹화가 이뤄졌으며 정통 코미디의 부활을 표방했다.
‘정통 코미디의 부활’을 표방하긴 했으나 가장 인기 있던 코너는 페이크 다큐인 ‘유세윤의 인간극장’이었다. 프로그램 정식 소개는 ‘개그맨들의 삶 속의 고민과 애환을 담은 코미디 리얼 다큐’라고 적혀있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유세윤의 아내라고 설정된 여성은 오토바이헬멧을 쓰고 출연해 옥상에서 춤을 췄다. 그의 어머니는 기괴한 분장을 하고 나와 아들과 함께 개그 코너를 짰다. 유상무는 시종일관 여자를 쫓아다니는 등 진짜를 표방하지만 누가 봐도 진짜가 아닌 모큐멘터리였다. 이 코너는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인지도를 얻는 듯 했으나 다소 생소한 소재였기에 가을 개편과 함께 끝을 맺었다.
◇‘UV 신드롬’
Mnet은 가장 많은 모큐멘터리 예능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2010년 방송된 ‘UV 신드롬’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개그맨과 가수를 합쳐 ‘개가수’라고 불렸던, 개그맨 유세윤과 뮤지가 뭉친 그룹 UV를 중심으로 꾸며졌다.
‘UV 신드롬’은 UV가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라는 설정과 함께 시작된다. 그들은 빅뱅을 거리낌 없이 꾸짖고, “진짜 영혼을 울리는 노래를 하겠다”며 흉가를 찾아가는 등 황당한 사건들을 펼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황복순 할머니가 코디네이터로 등장해 사람들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하는,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재미요소로 중무장했다. 홈쇼핑에서 자신들의 새 앨범 ‘집행유예’을 홍보했고 이는 실제 CJ홈쇼핑 채널에서 방송돼 화제가 된 바 있다.
◇‘UV 신드롬 비긴즈’
‘UV 신드롬’이 인기리에 종영했고 2011년에는 ‘UV 신드롬’의 후속작인 ‘UV 신드롬 비긴즈’가 편성됐다. 이 프로그램은 이전 방송에서 한층 더 진화, UV가 신적인 존재라는 설정으로 전파를 탔다.
여기서 UV는 마릴린 먼로, 마이클잭슨 등 세계적인 스타에게 인정받은 존재처럼 그려졌다. “UV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초였다”는 황당한 주장은 물론, 박진영을 향해서는 춤으로 꾸지람을 서슴없이 일삼았다.
‘UV 신드롬 비긴즈’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바로 배우 박혁권이다. SBS ‘펀치’ ‘육룡이 나르샤’ 등에서 완벽한 연기력을 선보인 그는 과거 이 프로그램에서는 UV의 정체를 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문화인류학 박사 기소보르망에 분했다.
그는 “UV가 수세기에 걸쳐 인류 문명사 곳곳에 등장해 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코믹한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냈다.
◇‘음악의 신’
‘UV 신드롬’ 시리즈를 만들었던 박준수 PD는 가수 이상민으로 주인공을 바꿔 ‘음악의 신’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상민은 과거 룰라를 비롯한 화려했던 이력을 시작으로 여러 좋지 못한 사건에 연류 된 것을 언급, 프로그램의 웃음 요소로 녹여냈다.
‘UV 신드롬’에 비해 진화된 것은 주변 인물들의 활약이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매니저 백영광과 비서 김가은, 고문 이수민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백영광은 면허증을 따지 않은 채 걸 그룹과 친해지기 위해 LSM엔터테인먼트에 취업했다.
이수민은 LSM엔터테인먼트 최대 스폰서 회사 이사의 압력으로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이어 압력을 더해 고문자리를 꿰차며 이상민을 곤란에 빠트렸다. 김가은은 귀여운 외모에 이상민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유세윤의 아트비디오’
2012년, ‘음악의 신’과 함께 또 다른 페이크 다큐가 Mnet에 편성됐다. 바로 ‘유세윤의 아트비디오’였다. 개그맨 생활에 실증을 느낀 유세윤은 조연출 유병재를 데리고 다니며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유세윤과 유병재는 매회 스타들을 초빙해 영상을 만들었다. 윤종신, 포미닛, 에프엑스, 제국의 아이들, 자우림 등 잘 알려진 뮤지션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웃음을 선사했다.
록스타를 꿈꾸는 윤종신에게는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를 시키고, 리듬파워의 ‘사나이’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변강쇠를 주인공으로 넣는 등 황당한 도전과제로 폭소를 자아냈다. 또한 방송기간이 겹쳤던 ‘음악의 신’에 깜짝 등장하며 ‘모큐멘터리 프로그램간의 협업’이라는 색다른 측면도 눈길을 끌었다.
◇‘방송의 적’
‘방송의 적’은 2013년 방송된, 가수 이적을 중심으로 하는 모큐멘터리였다. 이적이 ‘이적 쇼’라는 신개념 음악토크쇼를 론칭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적은 책을 쌓아놓고 교양 있는 척하며 허세를 부렸지만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인간적으로 변하는 캐릭터를 열연했다.
주인공은 이적이었지만 최대 수혜자는 존박이었다. 그는 이적의 음악 제자로 등장해 ‘빙구’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감성변태’ 유희열에게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 억지로 채찍질을 당하고 냉면만 보면 이성을 잃었다.
‘슈퍼스타K’에서 엄친아 이미지 때문에 다소 멀게 느껴졌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엔터테이너스’
잘나가던 Mnet 모큐멘터리의 발목을 잡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엔터테이너스’다. 이 프로그램은 가요계의 권모술수와 이면들을 실재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허구로 풍자하는 리얼리티와 드라마를 혼합했다.
윤종신, 뮤지, 조정치와 같은 유명한 뮤지션이 대거 등장했지만 반응은 냉랭했고 12회 예정에서 6부작으로 종영하는 굴욕을 맛봤다. 당시 김구라는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윤종신을 향해 “‘엔터테이너스’는 Mnet 최대의 실패작”이라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음악의 신2’
‘엔터테이너스’로 주춤했던 Mnet의 모큐멘터리 예능은 2년 만에 ‘음악의 신2’로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모바일 웹 전용 콘텐츠로 선 공개된 ‘음악의 신2’는 도박으로 한 차례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탁재훈의 지독한 셀프 디스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김영광, 김비서 등 시즌1에서 등장했던 반가운 얼굴들과 더불어 뮤지, 나인뮤지스 경리 등이 출연한다. LSM엔터테인먼트는 탁재훈의 합류로 LTE엔터테인먼트로 상호를 변경, 색다른 재미요소를 선보일 것을 예고했다.
유지훈 기자 ji-hoon@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