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윤아 기자] 사전제작 드라마, 마냥 좋기만 할까. 출연진과 제작진의 각기 다른 의견을 들어봤다.
사전제작 시스템은 방송가가 주목하는 제작시스템이나, 그간 ‘비천무’ ‘로드 넘버원’ 등 사전 제작드라마가 흥행에서 만큼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런데 이번 100% 사전제작 ‘태양의 후예’는 이례적으로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보통의 드라마는 쪽대본에 생방송 촬영이라는 오명 하에 완성도면에서 아쉬움을 보여야 했다. 배우 이순재는 SBS 주말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제작발표회 당시 “쪽대본으로 연기를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열악한 제작 환경개선과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드라마 탄생을 위해 사전제작 드라마는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사전제작을 할 수 없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보통 시청률에 따라서 드라마의 흐름을 수정하거나, 여론에 힘입어 방송을 연장할 수도 또는 조기 종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 사전 제작이었던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의 이성경은 백인하역으로 ‘발연기 논란’을 일으켰다. 방송 초반부터 그의 과장된 말투와 행동이 지적의 대상이 됐지만, 그때는 이미 절반 정도의 촬영이 마무리된 후였다. 배우가 촬영분을 보며 캐릭터를 잡아가던 때와는 달리, 사전제작 드라마는 대중과의 소통 없이 촬영을 강행했다가 손 쓸 새도 없이 혹평을 맞기도 하는 것이다.
앞선 ‘태양의 후예’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과 출연진도 입을 모아 사전 제작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은숙 작가는 “사전 제작을 하다 보니 장단점이 분명하다. 대본이 다 있어서 배우들이 처음부터 본인의 캐릭터를 잘 인지하고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런데 본방송을 못 보니 텍스트로 감정을 짚어내는 게 어려웠다. ‘드라마가 잘 가고 있나’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며 “결과가 예측이 안됐다. 그런데 역시 해놓고 보니 완성도 측면에서 잘 마무리 지었다”고 일장일단을 설명했다.
송혜교는 “육체적으로, 사전 제작이 생방으로 하는 드라마보다 편지만 감정 연기 면에서는 더 힘들 때가 있더라”며 “사전제작 드라마는 1부를 찍다가 8부를 찍기도 한다. 생방송으로 촬영을 하면, 순차적으로 촬영을 하기에 나도 모르게 감정에 빠져든다. 그런데 100% 사전 제작은 오히려 감정연기 부분은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꼭 사전제작을 고집하진 않는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 사진제공=NEW |
송중기는 “사전제작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 스스로 ‘더 잘했어야 했다’라는 욕심이 있었다”며 “그동안은 바빠서 대사를 잘 못 외웠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사전제작드라마만큼은 핑계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외에도 출연진의 입장에서는 사전제작 기간이 길어지면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 올 수 있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사전제작 기간이 6개월 정도 된다. 그 기간 동안에는 다른 방송을 출연하기 어렵다. 겹치기 방송 출연을 할 수 없다보니, 촬영 종료 이후에도 방송 기간 내에 일절 타 드라마에 출연하기 어렵다”며 “여배우의 경우 1년 가까이 방송 출연을 자제해야하는 것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편성에 대한 불안감 역시 사전 제작을 꺼리게 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황정민의 ‘한반도’는 당시 거액의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며, 제작 일정이 다소 늦춰지며 편성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유이의 ‘버디버디’ 역시 편성 확정 이전에 사전제작에 돌입했고, 촬영이 끝난 한참 후에 편성을 확정지었다. 이런 경우 제작진은 현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안함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라는 특수하고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사전제작시스템’이 자의반 타의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출연진과 제작진의 처우 개선과, 웰메이드 드라마 제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중국 자본 때문이라는 의견에 더 큰 힘이 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에서 드라마가 방영되기 위해서는 6개월 전에 프로그램 방영 계획을 보고하고 3개월 전 완성된 드라마를 가지고 심의를 받아야 한다. 결국 한국에서 먼저 방영한 뒤 6개월 뒤 중국에서 방영될 경우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를 비롯해 스트리밍 사이트의 활성화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에 K드라마에서 사전 제작 시스템은 점차적으로 필수 불가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자본이 무서운 속도로 K드라마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국내 드라마 제작사는 드라마를 수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투자를 받고 함께 드라마 제작에 나서고 있다. 이번 ‘태양의 후예’의 경우 제작사 뉴(NEW)는 지난해 화처미디어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화처미디어는 중국 드라마 제작 1위 기업으로, 2014년 뉴에 535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 ‘태양의 후예’ 인기로 화처미디어와 뉴의 주가는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총제작비 130억원을 기준으로 전체 매출 190억원과 총투자이익 30억원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것.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중국이 바꾼 현 상황에서 앞으로 중국 정서에 맞는 드라마를 제작하다보면 K드라마의 특색이 퇴색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을 주인으로 둔 한국 제작사의 창작권이 독점적으로 보호될 수 없다는 것도 제기되는 문제다.
이처럼 사전 제작 시스템은 아직까지 과도기를 걷고 있다. ‘태양의 후예’ 성공만을 두고 ‘사전 제작 드라마가 좋다’고 일반화 시키긴 어렵다. 배우 이영애의 복귀작 SBS ‘사임당’과 ‘보보경심:려’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100% 사전제작으로, 상반기 방송을 앞두고 있다. 당분간 이 드라마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김윤아 기자 younahkim@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