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우리 같은 장르물은 시청률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없는 장르잖아요. 이야기도 무겁고, 호불호도 나뉘고요.”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의 제작발표회 날, 배우 조진웅이 마이크를 잡고 한 말이다. 그는 ‘시그널’의 전작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장르물’이라는 한계에 시청률 욕심은 내지 않을 거란 뜻이었다.
‘시그널’ 제작진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김원석 PD는 “‘미생’의 재현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김혜수와 이제훈 또한 “시청률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그널’은 지난 5일 방송분에서 11%(전국 기준, 닐슨코리아 제공)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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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범죄수사물, 느와르 등의 ‘장르물’은 전부터 시청률의 한계가 분명한 장르로 인식됐다. 어두운 분위기와 다소 잔인한 사건들이 등장해야 하는 특성상 전 시청자들을 아우를 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본격적인 느와르를 표방했던 ‘나쁜 녀석들’이나 ‘무정도시’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과 달리 시청률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했다.
최근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시그널’은 회당 시청률을 날마다 경신했다. tvN에서도 10%대 시청률을 넘어선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데, ‘시그널’은 다른 드라마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김원석 PD는 ‘시그널’ 제작발표회에서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휴머니즘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있는 분들이 ‘응팔’을 좋아해주셨고, 그런 분들이 금토드라마의 메인 시청 타깃”이라며 “그런 분들이 ‘시그널’을 보시기에도 괴리감 없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수사물이 될 것 같다”고 자신했다.
그 이유는 ‘휴머니즘’과 ‘수사물’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시킨 덕분이어다. 김 PD는 “접근 방법은 좀 다르지만 도달하는 지점은 ‘응팔’과 비슷한, 따뜻한 감성 그 어딘가 쯤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시그널’ 속 박해영(이제훈 분), 차수현(김혜수 분), 이재한(조진웅 분)이 해결하는 사건과 운명적으로 얽히는 과정의 근본은 ‘휴머니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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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의 ‘미덕’은 벌어진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 속 ‘긴장감’이다. 그래서 많은 장르물은 주인공이 사건의 단서를 찾고, 반전이 나오고, 범인 혹은 상대방을 물리치는 단순한 ‘과정’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시그널’은 여기서 한 발짝 나왔다. 사건 해결 과정뿐 아니라 피해자, 가해자, 경찰 등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하면서 풍성한 감정선을 만들어냈다. 긴장감, 속도감으로 귀결됐던 장르물에 변화를 이끈 셈이다.
최근 ‘시그널’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물에서 이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tvN ‘피리부는 사나이’는 ‘협상’이라는 전혀 색다른 주제로 진행된다. 몸싸움 대신 ‘말’이 무기가 되는 독특한 드라마다. 장르물의 특성에 예상치 못한 요인을 얹었다는 게 ‘시그널’과 비슷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피리부는 사나이’도 첫 회 만에 3%를 돌파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최근의 장르물들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OCN ‘동네의 영웅’은 장르물에 ‘생활밀착형’이란 특성을 녹여냈고, SBS ‘미세스캅2’는 수사물이란 장르에 여자 상사와 부하직원들이 티격태격하는 코믹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이런 변화들은 시청자들에 ‘장르물은 마냥 어둡고 날카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인식케 하고 있다. 결국 전보다 더 폭넓은 시청자들을 공략할 수 있게 된 것. 이제 더 이상 장르물은 ‘시청률 포기장르’가 아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소재와 분위기의 장르물이 탄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