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개그맨 이홍렬, 그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였다.
최근 SBS ‘런닝맨’에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바로 개그맨 이홍렬. ‘늘 뛰어야 사는’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에서 보기에는 언뜻 매칭이 힘든데, 이홍렬은 “이렇게 가슴 뛸 수가 없다”며 설레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참 어린 지석진에 “선배님”이라고 인사하고 자신의 개그 장면들이 담긴 방 안에 들어섰을 때에는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1979년 데뷔한 이홍렬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개그맨 중 한 명이다. 개그, 연극, 시트콤 등 다양한 방면에서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이홍렬의 열정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안 해본 일을 하는 게 좋다”는 이홍렬의 ‘도전 인생’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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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MBN |
◇ 이홍렬, 참 힘들게 방송국 문턱을 넘어 ‘대세’가 되다
이홍렬은 1979년 TBC 라디오 프로그램인 ‘임성훈 최미나의 가요대행진’의 MC로 방송에 데뷔했다. 그는 ‘연예인’을 꿈꿨으나 현실에선 ‘꿈만 높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1973년 서울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집안을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연예인이란 꿈과 계속 멀어지는 것 같아 그는 취업과 오디션, 다시 사표제출을 반복해야 했다.
다양한 직업을 거치다 연예인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음악실 DJ’로 취직해 당시 무대에 서던 서수남, 윤향기 등을 보며 연예계를 향한 꿈을 키웠다. 가까울 듯 멀어지는 데뷔에 초조해하던 이홍렬의 은인은 다름 아닌 ‘최고의 MC’ 허참. 우연한 기회에 서로를 알게 된 후 허참은 다시 재회한 이홍렬을 데리고 다니며 여러 사람들에 소개시켰다.
허참을 통해 이홍렬은 라디오 ‘허참과 이 밤을’을 거쳐 ‘임성훈 최미나의 가요대행진’에 출연하게 되며 데뷔의 영광을 누렸다. 그 이후 이홍렬은 ‘노래하는 곳에’ ‘푸른 광장’ 등 라디오에 패널로 출연하며 확실한 영역을 구축했다. 특히 ‘청춘만만세’ ‘노래하며 얘기하며’ ‘일요일 밤의 대행진’ 등의 MC로 나서며 방송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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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곡산장’과 ‘이홍렬쇼’, ‘웬그막’...그의 전성기
지금까지도 많은 시청자가 기억하고 있는 이홍렬의 모습은 ‘귀곡산장’ 속 할머니 분장과 ‘큰집사람들’의 자그마한 인형 속 분주히 오가는 장면이다. 이홍렬은 1993년 ‘오늘은 좋은 날’에서 ‘귀곡산장’과 ‘큰집사람들’ 코너를 진행했다. ‘귀곡산장’에서는 임하룡과 콤비를 이뤄 많은 이들에 웃음을 줬고, ‘큰집사람들’에서는 이제 막 데뷔한 이휘재와 부자호흡을 맞추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91년 한창 잘나가던 방송 일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2년간 유학을 다녀온 이홍렬은 귀국 직후 ‘귀곡산장’을 만났다. “뭐 필요한거 없수? 없음 말고” 등의 유행어와 당대 톱스타들이 게스트로 출연해 펼치는 콩트 연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이끈 이유였다. 이후 2014년 MBC ‘코미디의 길’에서 ‘귀곡산장’은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이홍렬 하면 생각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이홍렬쇼’. 1996년 2월 7일부터 1998년 3월 4일(1차), 1999년 10월 18일부터 2001년 4월 25일(2차)까지 SBS에서 방송되었던 토크쇼다. 이홍렬의 단독 진행으로 강타나 핑클 같은 아이돌부터 한석규같은 톱배우까지 출연하는 대담쇼였다.
특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참참참’이란 게임이 여기서 탄생했다. 요리를 하며 토크를 이어가는 프로그램에 이홍렬은 “‘이홍렬쇼’가 쿡방의 원조”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이홍렬은 KBS2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가장 까다로웠던 게스트로 한석규를 꼽으며 “처음엔 거의 모든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를 해나가니 스스로 말을 다 하더라”고 회상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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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시트콤에서 이홍렬은 ‘노홍렬’로 출연해 아직까지도 많은 ‘레전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앞집 배종옥을 사랑하지만 늘 실수투성이인 노홍렬의 모습은 때로는 얄미운 삼촌으로, 때로는 수줍음 많은 남자로 분하기도 했다. 아직도 귤이 가득 담긴 유아용 소변기를 안고 굴욕적으로 배종옥 집의 문을 두드리는 이홍렬의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다.
이런 활약 덕에 이홍렬은 다양한 수상 경력을 지닐 수 있게 됐다. 1982년 MBC 방송연기상 신인상, 1986년 MBC 방송연기상 우수상, 1993년 MBC 방송연기상 최우수상, 1994년 올해의 스타상 우수상 코미디언 (T.V저널사) 등을 거쳤고, 이후에도 1995년 제7회 방송 프로듀서상 특별상 코미디언 부문, 1997년 제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방송진행상, 2010년 SBS 연예대상 예능 10대 스타상 등을 수상했다.
◇ “좋은 MC는 잘 들어주는 사람”
이홍렬은 큰 코를 빗댄 ‘빵코’라는 별명으로 시청자들에 푸근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무대를 준비하는 이홍렬은 함께 일하는 PD조차 독설을 할 정도로 ‘지나친 완벽주의’를 표방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이홍렬은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괴롭히듯 일했지만 완벽한 개그, 완벽한 토크를 위해 채찍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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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후배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호랑이’ 선배로 유명했던 이홍렬은 “개그맨들은 무대 위에서 가벼운 행동을 하니 실생활에서는 더욱 바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후배들에 서러움을 받는 역할 등(‘코미디의 길’) ‘탈권위적’ 캐릭터를 했으나 무대 뒤에서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엄격한 대선배’였다.
유머는 변하지 않되, 생활에서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가치가 올라간다고 말한 이홍렬은 늘 배움에 목말라했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미국 등으로 유학을 다녀오면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의 배움을 몇 권의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그런 이홍렬은 “좋은 MC는 잘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며 오래도록 MC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밝히기도 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늘 잘 듣는 ‘개그맨’으로 다른 이들을 돋보이게 만들었던 이홍렬. 그는 이후에도 연극 무대, 라디오,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진정성과 웃음은 비례한다고 강조한 이홍렬의 가치관은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기 충분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