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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영화 얘기가 나왔다. 스물을 갓 넘은 한 친구가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다. 일본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이었다. 매체에서 하도 떠들어대니 그러는 거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하더라”라는 대답도 들었으니 그러려니 넘겼다.
# 2. 3일 오후 지하철 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여고생(중학생일 수도 있다)들이 “주말에 엄마와 ‘귀향’ 보러 간다”고 했다. ‘귀향’의 예상 밖 흥행으로 관심이 쏠려서인지 이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귀가 기울여졌다.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극장으로 향했다.
사실 ‘귀향’을 무시했다. 다른 일정과 겹쳐 언론시사회를 놓쳤고, 작은 영화이고 굳이 불편한 이야기를 챙겨봐야 하느냐는 의문도 들어 넘겼다. 부끄럽지만, 영화 담당을 하면 볼 영화들이 넘쳐난다는 논리도 작용했다. 하지만 관객은 이 이야기에 먼저, 그것도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유명 배우 하나 없어 관심도가 떨어질 만하고, 대작 블록버스터가 판을 치는 영화계에 이 ‘작은’ 영화는 한쪽 귀퉁이로 밀릴 운명이었다. 개봉 전 21개라는 스크린 수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개봉 즈음 SNS 등을 통한 관객의 관심도가 높아졌고, 열광적인 반응에 극장은 문을 열어줬다. 4일 오전 현재 739개 상영관(누적관객 192만여명)에서 상영 중이다. 대기업 수직계열화 배급 극장 시스템의 한국영화계에서 이런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갓 오브 이집트’ 등 신작 공세에도 ‘귀향’을 향한 관심이 높다.
‘귀향’은 그리 대단한 영화라고 칭찬할 정도는 아니다. 예상 가능한 정도다. 씻김굿을 더해 안타깝게 생을 다한, 또 과거 기억을 떠안고 힘겹게 살아온 할머니들의 넋을 달래주는 설정이 독특할 뿐이다.
재미로 다가오는 부분도 없다. 기분 전환용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기분 나쁘고 불편한 장면들도 가득하다.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짓밟히는 장면에서 과도한 행위 묘사가 없음에도 불쾌하다. 손찌검당한 얼굴과 몸, 마음 가득 박혀있는 상흔들이 연속적으로 나열된다. 과거의 아픔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영원히 기억해야 할 사건들을 환기한다. 과거를 잊은 이들이 미래로 향할 순 없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씻김굿을 통한 치유가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유명 배우 하나 없는 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배우들의 모나지 않은 연기 또한 몰입감을 높인다.
각본과 연출, 제작을 맡은 조정래 감독이 지난 2002년 ‘나눔의 집’(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
다른 지인에게 물었다. “무슨 영화를 보고 싶으냐?”고 하니 “귀향”이란다. 굳이 추천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알아서 보고 흥행을 만들고 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