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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예진에게도 액션 본능이 살아 있었다. 총을 겨누는 폼은 멋지고, 정확한 발차기까지 날린다. '걸크러쉬' 손예진의 발견이다. 홍수아는 '홍드로'의 모습은 오간 데 없다. 말 잘 듣고 순종적인 인물로 보이다가 이상 증세를 보이기 일쑤다. 1인 2역 같은 느낌을 전할 정도로 존재감이 엄청나다.
제주도 여행을 하던 중국 친구들이 미스터리한 여인 지연(손예진)을 만나며 벌어지는 코믹 액션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와 자신의 것을 외면한 채 친구의 가정, 남편, 아이까지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던 여자 가인(홍수아)의 끔찍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멜리스'를 통해서다.
두 배우는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흥미를 끌 만한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나쁜놈은 죽는다'나 '멜리스'는 손예진과 홍수아의 새로운 모습에만 만족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나쁜 놈은 죽는다'는 남자주인공 진백림부터 초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한국에 온 중국어 교사라고는 하나 이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거액을 둘러싸고 납치된 지연의 조카 구하기 미션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긴장감 넘친다거나 쫀쫀한 구성을 기대할 순 없는 수준이다. 궁금했던 것들이 밝혀질 때쯤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야 하는 게 필요한 장르인데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액션과 미스터리, 코믹 등 장르가 한 데 뭉쳐 있는 게 허탈한 웃음만 전한다. 한국과 중국 관객을 모두 잡으려고 한 패착으로 보인다. 물론 B급 영화라는 시선으로 본다면 만족도가 높을 수 있다. 진백림을 비롯한 중국 배우들의 코믹연기가 소소한 웃음을 준다.
'멜리스'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리플리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를 주인공으로 섬뜩한 모습을 담아냈다. 2004년 일명 '거여동 여고 동창 살인사건'으로 대한민국을 경악하게 만든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기에 더 소름이 돋는다.
홍수아가 이중적 인물로 소름 돋게 하고, 우연히 만난 고교 동창에게 모든 걸 빼앗기는 은정을 연기한 임성언의 자연스러운 연기력도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야기 얼개가 치밀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은정의 내연남이라고 할 수 있는 김사장(조한선)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초반 등장하는 수상한 남자와 은정의 돌보미 이모의 쓰임을 유추할 수밖에 없는 전개다. 관객이 집중할수록 이야기는 어긋나 보인다.
물론 우리 주변에 누구에게 생길 수 있는 리플리증후군의 무서움에 대해 알리는 건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잔인하게 한 가족의 일상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당시 범인은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나쁜놈은 죽는다'는 지난해 개최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초청된 작품이다. 중국의 펑샤오강 감독과 한국의 강제규 감독이 공동제작했다. 중국의 순호 감독이 연출했다. 104분. 15세 이상관람
'멜리스'는 강제 징용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진달래지다'를 제작, 2014년 런던 크리스탈 팰리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김용운 감독의 데뷔작이다. 제목은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그들이 고통받는 걸 보고자 하는 욕망이나 의도를 뜻한다. 95분. 15세 이상 관람가. 11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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