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훈 기자] 친구들의 장난에도 철없이 웃었고 아버지에게 가족들에게 속상함을 토로 할 때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갈팡질팡 하다가 어느새 남편을 만났다. 혜리는 ‘응팔’과 함께 배우로서 조금씩 성장했다.
혜리는 최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 언니인 보라(류혜영 분)에게 치이고 동생 노을(최성원 분)에게 양보하는 둘째 딸 성덕선 역을 열연했다. 드라마는 큰 성공을 거뒀고 이로 인한 스포트라이트는 주인공인 혜리에게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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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이주영 |
혜리의 ‘응팔’ 출연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작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에 팬들의 이목은 집중됐고 혜리에 대한 캐스팅 기사가 나오자 우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지킬 하이드, 나’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선보였던 다소 부족한 연기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혜리는 이런 걱정들이 모두 기우였다는 것을 입증하며 ‘응팔’의 성공에 순풍과 같은 역할을 했다.
“저는 제가 한 거라기보다는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같이 덕선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임을 더 끌어내주려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죠. 감독님이 성덕선이라는 캐릭터에 저를 참고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이 ‘너 이렇게 하는 거 있잖아’ 하면서 제 모습을 짚어줬는데 저는 모르겠는 거예요.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보고 느끼셨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나왔던 방송을 다시 봤어요. 약간 생각보다 어리바리하고, 눈치도 많이 보고, 약간 멍청하다고 해야하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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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보라의 생일파티에 덕선이가 얹혀서 하는 신이 제일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물건을 먼저 촬영을 했어요. 물건은 없어지고 망가지니까. 그 때부터 눈물을 참았어요. 초를 켜고, 노래를 부르고, 언니는 새 안경을 끼고 있는 상황이 너무 서러운 거예요. 많은 분들이 걱정했던 대사 전달력에 대해 준비를 많이 했었어요. 그 신을 찍고 나서 감독님이 ‘아 됐다’ 말씀해주셨죠. 감독님, 작가님도 제일 많이 좋아해주셨던 거 같아요.”
‘응답하라’ 시리즈는 모두 과거를 배경으로 했다. 전작은 1997년과 1994년을 배경으로 하며 그 시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적제적소에 배치해 재미를 더했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은 1988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때문에 ‘너무 과거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고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배우들의 연기 또한 모두의 걱정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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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혜리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었다. 극중 언니인 성보라와 사소한 일에도 티격태격하고 좋은 것은 동생 성노을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는 성덕선은 집안의 장녀로 살아왔던 혜리와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하며 이런 문제점들을 하나씩 이겨냈다.
“저희 가족이랑 덕선이네 가족이랑 달라서, 오히려 가족 생각하다보면 몰입이 깨지더라고요. 동생이랑 저는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고요. 동생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웃음) 제가 첫째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별로 서러웠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저희는 두 분다 일을 하셨고 지금은 어머니는 안하시지만, 그런 역할 같은 게 달랐어요. 그래서 오히려 ‘성동일, 이일화 선배님이 내 부모님이야’ 하면서 몰입했고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정말 진짜처럼 챙겨줬어요. 노을이도 서른둘인데 동생 같더라고요.”
‘응팔’을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덕선과 정환(류준열 분), 택(박보검 분)의 삼각관계였다. 시청자들은 초반부터 덕선의 남편 찾기에 매진했다.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정환, 귀엽지만 손이 많이 가는 택은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시청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리고 드라마 초반 덕선이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선우(고경표 분)까지 남편 후보로 거론됐다. 세 남자를 마음에 품었던 혜리는 각자를 대하던 덕선의 마음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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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일구 기자 |
하지만 최후의 선택은 정환이가 아닌 택이었다. 시청자들은 중후반까지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정환이가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우려는 덕선을 열연하고 있던 혜리에게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왔다. 혜리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연기 탓으로 돌렸다.
“남편이 누군지는 저도 진짜 마지막까지 몰랐어요. 대본을 보다가 ‘여기서 덕선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왜 이런 행동을 하지?’ 하는 건 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물어봤었죠. 감독님이 ‘니 남편은 누구야’ 말해주신 게 아니었고 ‘그건 얘가 니 남편이라 이렇게 된 거야’였어요. 어쨌든 ‘설득력이 있을까. 내가 설득력 있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가 고민됐어요. 그때 떠오른 게 ‘헷갈리게 하면 잘못된 연기다’였어요. 만약 제가 음료수를 마시고 신 표정을 했을 때 그걸 보는 사람이 ‘쟤 맛없는 걸 먹은 거야? 신걸 먹은 거야?’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죠. 연기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아니니까요.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는데 감독님이 ‘네가 혼란스러운 게 맞아 당연해. 덕선이도 혼란스러울 거야’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응팔’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진 혜리는 앞으로 걸스데이 활동과 연기자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그는 “정 반대인 캐릭터를 하고 싶긴 하지만 아직은 내 성격을 빌려야 할 때인 것 같다”고 연기 욕심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능력은 현실적으로 평가했다. ‘응팔’을 통해 연기자로서 우뚝 선 그는 이제 소녀가 아닌 어엿한 성인 연기자의 면모를 조금씩 다져가고 있다.
유지훈 기자 ji-hoon@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