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최윤나 기자] 국내 5개 영화제(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DMZ 국제다큐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겠다는 뜻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영화제와 영화문화-BIFF 사태를 말한다’라는 주제로 좌담회가 개최됐다. 이날 다섯 개 영화제의 관계자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사진=MBN스타 DB |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국제영화제 공동 성명
부산국제영화제를 함께 지키겠습니다.
2016년 1월 23일
우리는 기억합니다. 20년 전,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탄생하던 순간의 설렘과 흥분,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을 디딤돌 삼아 다양한 국제영화제가 전국 각지에서 싹을 틔웠습니다.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 대중의 지지, 영화제간 상호자극과 협력으로 한국의 국제영화제는 성장해왔습니다. 한국 영화인의 자긍심과 한국영화 관객의 자부심이 함께 커가는 20년이었습니다.
현재의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탄압은 이러한 자부심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빌미로 부산시가 보여준 행태, 작품 선정 과정에 대한 외압과 검열,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력과 검찰 고발에 이르는일련의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부산시는 수많은 영화인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얻어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습니다. 부산시는 영화제의자율성을 위협하였습니다. 부산시는 국제영화제라는 공공재의 가치를 훼손하였습니다. 한국 영화인의 자긍심과 한국 영화 관객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이제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직면한 현재의 위기가 결코 부산국제영화제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국제영화제들이 과거에 경험했거나 미래에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영화제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이 자리에 모인 한국의 국제영화제는 뜻을 모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어떤 형태의 외압에도 단호히 반대합니다. 영화제는 저마다의 성격과 지향, 미학적 가치에 부합하는 다양한 작품을 상영하고 영화와 문화에 대한 자유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장입니다. 영화제 작품선정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의 고유권한입니다. 선정작에 대한 평가는 관객에게만 허락된 권리입니다.
저마다의 주견을 가지고 선정한 작품에 대한 외압은 자율성에 기초해 운영되어야 할 영화제의 존립기반을 위협하는 반(反) 문화적 행위입니다. 겉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부르짖으며 특정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품 선정과 상영을 문제 삼는 것은 다양성을 수용하겠다는 태도가 아닙니다. 외압은 안 됩니다. 검열은 더더욱 안 됩니다. 창작자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영화제는 작품 선정의 자유를 마땅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가 겪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압력이 모든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침탈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침탈행위에 반대하며 부산국제영화제와 연대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검찰 고발은 즉각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의 고발 조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탄압의 정점입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창립 멤버로 지난 20년 간 영화제의 성장과 발전에 막대한 역할을 한 영화인입니다. 국내외 영화계의 신망이 두터울 뿐 아니라 영화인들과의 관계망도 넓고 깊습니다. 이용관 위원장에 대한 검찰 고발은 이러한 부산국제영화제의 핵심 인물에 타격을 가해 영화제의 동력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무엇보다 숙련된 영화제 전문가입니다. 문화를 창조하는 일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공들여 가꾼 토양과 미리 뿌린 씨앗이 쉼 없이 땀 흘린 노동에 힘입어 비로소 결실을 맺는 것처럼, 오랜 기간 차곡차곡 쌓인‘경험’과 차근차근 키운 ‘능력’이 공들여 구축한 ‘네트워크’에 힘입어 비로소 꽃피는 게 문화입니다. 영화제가 바로 그렇게 피어난 꽃입니다. 영화제는 멋대로 부품을 갈아 끼워도 돌아가는 기계가 아닙니다. 숙련된 전문가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생물에 가깝습니다. 지난 20년간 크고 작은 내홍을 겪은 이 땅의 국제영화제들이 이미 입증한 사실입니다. 무너뜨리는 것은 일순간이지만 한 번 훼손된 영화제를 복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지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부산시의 고발 조치는 즉각 철회할 것을 요청합니다.
국제영화제는 공공재입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그러해야 합니다.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은 영화진흥위원회와 지자체를 통해 공공의 자금을 지원받습니다. 그것은 영화제가 공공재임을,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자산임을 의미합니다.
현재 부산시는 공공재인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더 이상 부산국제영화제를 흔들지 말아야 합니다. 시민의 긍지를, 지자체의 상징을, 그리고 20년에 걸쳐 가꿔온 한국의 소중한 문화적자산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훼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부산시민들과, 한국영화계와 관객들, 전세계 영화인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간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은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공공의 이익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 상호협력하며 공존해 왔습니다. 우리는 한정된 자원과 시장을 두고 다투는 적대적인 경쟁자들이 아닙니다. 서로의 ‘차이’로 인해 더욱 긴밀한 ‘사이’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입니다.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고 한 시대를 채색하는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전세계 영화인들의 지지와 연대의 의지를 모아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이 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부당한 외압에 맞서 부산국제영화제를 함께 지켜가겠습니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14년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이후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퇴 압박,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전·현직 사무국장 등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 3명이 부산시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부산영화제 측은 “부산시의 고발은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보복이다”라고 주장했다.
최윤나 기자 refuge_cosmo@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