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서민교 기자]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남자가 쫄쫄이 패션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너끈히 소화한다. 그래도 평소 깔끔하고 완벽했던 성격은 그대로다. 이제 초보 티를 벗은 3년차 예능인인데 큰 실수나 방송사고 한 번 없다. 단지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깔끔하겠다는 이유로 매니저도 여자다. 분명 까다로운 남자인데 반전 속에 참 솔직해서 매력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등장한 ‘예능공룡’ 서장훈(41)은 누가 뭐래도 거부할 수 없는 ‘공인’ 연예인이 돼버렸다. 한국 농구계에 전설로 남아 있는 ‘국보센터’ 서장훈의 이미지는 잠시 치우고 도대체 알 수 없는 이 남자의 속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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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훈에게 농구는 운명 같은 전쟁터였고, 예능은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이다. 사진=정일구 기자 |
일주일 남짓 지난 2016년 예능 샛별(?) 서장훈을 다시 만났다. “신인상 축하한다”는 첫 인사에 “이게 축하할 일이냐”며 여전히 민망해 고개를 돌리며 대뜸 소리부터 내질렀다.
“사실 거기(연예대상) 가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했다. 우리 프로그램에서 누가 가야 하는데 내가 안 가기도 그렇고 난감했다. 오래하신 방송인들이 많고 그런 분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인데 내가 굳이 상까지 받을 처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재밌자고 준 거 같다.”
서장훈이 은퇴 직후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 나눴던 이야기의 기억이 또렷하다. “1~2개만 하고 그만 해야지”라며 계속된 방송국 작가들의 러브콜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땐 그도 이런 인생을 살 줄 전혀 몰랐다. 어쩌다(?) 이렇게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전혀 생각했던 인생이 아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하게 된 이유를 대자면 복합적이긴 하다. 현재 고정적으로 하는 일도 없고, 은퇴 후 6개월을 놀았는데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것도 삶이 아주 피곤하더라.”
그를 움직인 것은 대중이 바꿔놓은 마음이었다. 농구선수와 다른 ‘연예인 서장훈’에 대한 시선이 낯설었지만, 그 뒤에는 감동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운동선수 중에 나 같은 캐릭터가 몇 명되지 않는다. 그래도 종목을 대표하는 유명한 선수가 오랜 기간 비호감으로 사랑을 못 받는 선수가 많지 않다. 내 기억에 농구선수 서장훈에게 열광했던 것은 연세대 1, 2학년 때만 그랬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방송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다. 대중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졌다. 이건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 아닌가. 그런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할까. 인간 서장훈에 대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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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지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서장훈. 사진=정일구 기자 |
“농구는 내 인생이고 운명이다. 서장훈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농구다. 은퇴를 했고 하고 싶어도 못한다. 농구는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이었기 때문에 욕심도 많았다. 그 욕심을 인정한다. 하지만 예능은 내 마음가짐이 다르다. 전쟁처럼 하겠다는 마음이 없다. 누구처럼 되겠다거나 프로그램을 많이 해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도 목표도 없다. 아마 내 분량을 위해 욕심을 냈으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것이다. 예능은 누구를 꺾고 싸우는 곳이 아니다. 열심히는 하지만 누구를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솔직한 나를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했기 때문에 대중의 반응이 있었던 것 같다.”
서장훈은 연예계 생활에 녹아들면서 깨닫는 것도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처음 게스트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이게 뭐 어렵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매주 같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70~80명 이상 되는 스텝이었다. 대부분이 프리랜서. 프로그램 존폐와 시청률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분들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절박했고, 난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내가 여장을 하고 쫄쫄이를 입은 이유다. 농구와 예능이 겉으론 엄청 다른 시스템이지만, 결국 삶은 다 비슷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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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연예계 입문 3년차인 서장훈의 표정에는 이제 편안한 여유가 넘친다. 사진=이현지 기자 |
“난 농구에 대한 자존심이 크고 자부심이 있다. 연예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여기서도 내가 최고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또 그럴 수도 없다. 사실 난 농구를 제외하고 다른 일에 크게 욕심을 내본 적이 없다. 농구 말고는 내가 1등을 하겠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거의 양보를 하는 편이다. 내가 혼자 떠들고 가는 것보다 누군가 절실한 게스트 한 명이 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낫다. 내가 택한 것은 그저 어울림이다.”
그는 그렇게 ‘사람 냄새가 나는 서장훈’으로 연예계에 녹아들었다. 그 사이 가장 놀라운 변화는 악플의 소멸이었다. 그는 “농구할 때와 비교하면 악플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예능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공감하는 것 같다. 늘 봐왔던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이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서장훈이 예능에 통하는 이유였다.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연예계를 노크했고 대부분이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떠났다. 우린 언제까지 예능인 서장훈을 볼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얘긴데…”라면서 그가 가장 고민을 하며 어렵게 던진 대답에는 결국 물음표가 붙었다.
“대중의 반응은 나도 모르겠다. 맨 처음 나왔을 때도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계속 그렇게 되더라. 하지만 대중은 냉정하니까…. 나중에 내가 별로고 내가 얘기하는 게 질린다 싶으면 그땐 냉정한 반응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방향과 전혀 다르게 가더라. 사람이 내 인생을 모른다. 내가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나? 계속 여기에 있을 수도 있고, 농구 코트에서 지도자를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이다. 가식 없이 솔직하고 바른 사람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다음 인생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서민교 기자 11coolguy@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