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헬조선’의 과거 방송은 현실에 얼마나 친절했을까.
1961년 KBS(중앙방송)가 TV 방송국을 처음 개국하면서 시작된 텔레비전 시대는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국내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50여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현실을 반영하거나 사회 부조리를 촌철살인한 시기는 오래되지 않는다.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은 새로운 방송법을 공포했다. 모든 프로그램을 사전 심의했고, 외래어조차도 쓸 수 없게 굳게 문을 잠궜다.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은 물론 꿈도 꾸지 못했다. 오히려 성난 민중을 잠재우고 권력의 기틀을 잡기 좋은 방법이 바로 ‘바보 상자’로 불리는 TV였다.
![]() |
↑ 디자인=이주영 |
당시 드라마 경쟁 구도를 이뤘던 MBC와 TBC는 과열된 신경전으로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드라마들을 생산해냈다. 임희섭 고려대 교수는 ‘한국 TV 10년의 평가(1979)’란 논문에서 “두 방송은 지나치게 시청률을 의식해 대중의 감각적 도는 감정적 흥미를 유발하는 위주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평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선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MBC가 추진하던 ‘국제가요제’가 1980년 5월24일 예정된 상황에서 5.18 민주화항쟁이 일어났다. 시국이 불안했지만, MBC는 결국 가요제를 강행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물론 수익금을 광주시민돕기 성금으로 기부했지만, TV가 현실을 외면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시기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사반장’ ‘형사25시’ 같은 수사물이 유행했지만 사회 부조리를 직접 언급하진 못했고, ‘전원일기’처럼 향수 짙고 가족애만 강조하는 드라마가 성행했다.
TV 속 성차별이나 지역차별도 심했다. 남자는 늘 생계활동에 나섰고, 여자들은 집에서 부엌데기를 자처했다. 드라마나 예능 속 도둑, 건달 등은 대다수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했고, 경상도 남자들은 호인으로 비쳤다. 현실반영은커녕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마저 안고 있었다.
90년대는 변화로 조금씩 꿈틀거리던 시기였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선 주병진,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 등을 모아놓고 사회 문제를 웃음으로 진단한는 시사 코미디 코너 ‘일요진단’이 신설됐다. 시사 코미디의 대표격인 KBS2 ‘유머일번지-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외압설에 시달리다 폐지됐다가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재편성돼 1990년대를 수놓았다. 이밖에도 SBS ‘코미디 전망대-코미디 모의국회특위’, KBS2 ‘개그콘서트-봉숭아학당’ 등은 웃음 속에서 현실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드라마는 점차 성차별, 지역차별이 해소됐고, 소재 역시 다양해졌다. 여주인공들은 청순가련형 캔디에서 주장 강한 대찬 여성으로 변모했고(SBS ‘토마토’ ‘미스터큐’), 출신 상관없이 여러 종류의 사투리가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다.
2000년대 초까진 이런 분위기가 지속됐지만, 중반 이후 TV가 현실을 반영하는 추세가 점점 줄어들었다. 참여정부가 끝난 뒤 정치권을 풍자했던 KBS2 ‘폭소클럽2-뉴스야 놀자’와 ‘응급시사’가 폐지됐고, OBS ‘시사코미디포커스’의 ‘명반장과 어르신들’도 방송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또한 tvN ‘SNL 코리아’의 대표 풍자 코너였던 ‘여의도 텔레토비’는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의 이미지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새누리당 지적으로 국정감사 심의대상에 올랐고, 결국 폐지됐다.
‘송곳’ ‘미생’ 등 비정한 현실을 풍자한 드라마가 각광받기도 했지만, 선남선녀의 로맨스 코미디물이나 가족드라마가 상대적으로 많이 제작됐다. 또한 재벌2세에 의한 위기 극복, 신분 상승 등이 주류를 이뤘다. 현실과 동떨어진 TV 속 세상이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