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콩트는 국내 방송사에 있어서 깊은 뿌리를 지닌다. 짧은 시간에 기상천외한 발상을 바탕으로 유머, 풍자 등을 담은 이 장르는 1970년대 이후 본격적인 TV 시대가 도래하면서 희극인들이 안방극장에 진출하기 좋은 가교 구실을 했다.
1969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를 시작으로 콩트를 기반으로 하는 코미디쇼가 주류를 이뤘다. 그 중 배삼룡은 TV 콩트가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어리숙하면서도 뻔뻔한 이미지로 좌중을 웃기며 브라운관을 누볐다.
비슷한 시기 라디오에서도 콩트의 시대가 도래했다. 1963년 동아방송의 ‘앵무새’는 시사문제와 정치적, 사회적 부조리를 다룬 5분 분량의 콩트였다. 또한 MBC 라디오국에서도 ‘오발탄’이란 라디오 시사콩트가 전파를 탔다.
![]() |
그러나 한국 코미디사와 뿌리를 함께한 국내 TV 콩트는 한번의 변환점을 맞는다. 유신 정권의 규제가 높아진 70년대 후반 방송통폐합으로 프로그램 개수가 현격히 줄어들었고, 1세대 개그맨들이 대거 물갈이됐다. 이후 KBS와 MBC 양대 방송국에선 공채 개그맨 선발 시스템을 선발했고, 방송사 지원 아래 수많은 코미디쇼가 생겨나 TV 콩트는 부흥기를 맞이했다. KBS ‘유머극장’ ‘유머일번지’ MBC ‘청춘만세’ ‘폭소대작전’ ‘일요일밤의 대행진’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김미화-김한국 콤비가 신세대 부부 일상을 콩트로 엮은 ‘쓰리랑 부부’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바보 연기의 대가 심형래도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또한 이봉원-장두석의 ‘시커먼스’는 리드미컬한 진행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인종 차별 논란을 빚어 폐지되고 말았다.
콩트는 1990년대 접어들어 코미디쇼와 작별하고 버라이어티쇼 혹은 드라마 장르와 손을 잡았다. 김국진은 MBC ‘테마게임’에서 콩트 연기를 펼쳤고, 이휘재 역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속 ‘인생극장’이란 코너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신동엽과 이영자는 1991년 개국한 SBS에서 ‘안녕하시렵니까’ ‘안 계시면 오라이~’ 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신성으로 떠올랐다. KBS2 ‘슈퍼선데이-금촌댁네 사람들’에서는 임창정, 홍진경 등 신세대 스타들이 얼굴을 알렸다. 버라이어티쇼 안의 콩트 코너는 필수 요소인 셈이었다.
콩트는 90년대 후반부터 MBC ‘남자셋 여자셋’ ‘세친구’ SBS ‘오박사네 사람들’ ‘순풍산부인과’ 등 시트콤에 흡수되는가 했지만, 2000년대 초반 리얼버라이어티 쇼의 득세로 그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케이블방송국들도 많이 개국했지만 ‘잊혀진 장르’ 콩트를 수용하는 방송국은 거의 없었다. 지상파 채널에선 찾아보기 어려워진지 오래였고, 그나마 2009년 tvN ‘롤러코스터’가 반짝 인기를 얻으며 몇 편 후속으로 더 생겼지만 그뿐이었다. 2015년엔 개그프로그램 외엔 tvN ‘콩트 앤더 시티’ ‘SNL 코리아’ MBC ‘스토리쇼 화수분’(폐지)이 전부였다.
콩트가 TV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건 장르적 특성에 이유가 컸다. 계획되지 않은 ‘날 것’ 같은 상황과 스타들의 즉각적 반응이 주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재미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웃음을 주는 콩트보다 자극적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장르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트렌드만 좇는 제작진의 안일한 마인드도 브라운관 속 콩트의 쇠퇴를 부추겼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