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김순옥 작가는 이미 방송가에서 흥행파워를 알아주는 스타작가로 통한다. 작품 개수는 몇 편 안되지만 흥행과 중박 이상의 성적을 연속적으로 거두며 당당히 스타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재밌게도 그의 작품엔 주인공을 중심으로 선악 대결 구조가 명확해야 뜬다는 법칙이 존재한다.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아내의 유혹’부터 현재 방영되는 ‘내딸 금사월’까지, 김순옥 작가의 특징을 곳곳에서 파헤쳐보자.
↑ 디자인=이주영 |
◇ ‘아내의 유혹’ - 민소희(구은재) vs 신예리
2008년 전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을 선풍적인 신드롬에 몰아넣은 SBS ‘아내의 유혹’은 김순옥 작가의 출세작이다. 2000년 MBC ‘베스트극장’으로 등단해 ‘눈으로 말해요’ ‘빙점’ ‘그래도 좋아’ 등 MBC에서 작품활동을 쭉 이어왔지만,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SBS로 옮긴 직후였다.
‘아내의 유혹’은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구은재(장서희 분)가 남편 정교빈(변우민)과 내연녀 신예리(김서형 분)의 음모에 철저하게 무너진 후, ‘민소희’라는 새로운 인물로 변신해 기가 막히게 응징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내의 유혹’은 김순옥 작가 특유의 ‘잘 먹히는’ 콘셉트인 ‘성녀 vs 악녀’ 구도를 처음 확립한 작품이다. 시댁 식구에게 무시당해도 착한 마음 하나로 참고 버티는 구은재와 뼛속까지 ‘후안무치’인 신예리를 대비시키며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한 축을 만들었다.
물론 한번의 변주는 있었다. 구은재가 복수를 다짐하며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민소희라는 ‘악바리’로 변신한 것. 구은재보다 센 캐릭터였지만, 그럼에도 민소희 역시 ‘불의’를 처단하는 ‘심판자’로서 또 다른 선한 인물을 담당해 선악 구조를 확실하게 하는 김순옥 작가의 특성을 보여줬다.
‘아내의 유혹’은 엄청난 인기에도 작가 특유의 ‘권선징악’형 결말로 ‘용두사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 엔딩에서 세상을 떠난 정교빈과 신예리가 구은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활짝 웃는 장면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여러번 패러디될 정도로 비웃음을 샀다.
◇ ‘천사의 유혹’ - 안재성(신현우) vs 남주승
‘아내의 유혹’ 남자 버전이 이듬해 바로 등장했다. 역시 김순옥 작가의 펜 끝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랑했던 여인 주아란(이소연 분)의 배신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신현우(한상진 분)가 수술 끝에 안재성(배수빈 분)이란 새로운 인물로 부활해 적극 응징한다는 게 기본 줄거리다.
얼굴이 바뀌고 복수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전작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성별만 바뀐 ‘천사의 유혹’은 남자의 복수극이란 점을 비장의 카드로 내세웠지만 시청자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물론 막장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최고 시청률 22.6%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화제성이나 판매 수익에선 전작을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아내의 유혹’ 아류라는 비난만 산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 ‘웃어요 엄마’ - 선 vs 악 대결구도 無
‘유혹’ 시리즈의 약발이 떨어지자 김 작가는 색다른 가족극을 구상했다. 엄마의 욕심으로 빚어지는 갈등과 음모, 화해 등을 그린 SBS ‘웃어요 엄마’다. 이미숙, 강민경, 윤정희 등 출연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지만 안타깝게도 작가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망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김 작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선악 대결에서 탈피해 색다른 드라마를 만들고자 했다. 이미숙이 연기한 조복희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매몰차게 자식들을 단련시키는 엄마로 나와 안방극장을 사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김 작가는 역시 선악 대결, 복수극 등에서 강한 것일까. 신달래 역으로 나온 강민경의 이른바 ‘익룡 연기’만 두고두고 회자됐을 뿐 12%대 낮은 시청률로 종영됐다. 물론 황보미(고은미 분)라는 천하의 몹쓸 불륜녀가 나와 악랄한 짓을 펼쳤지만 이전에 등장한 신예리, 주아란 등에 비하면 정도가 약해 큰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다.
◇ '다섯 손가락' - 유지호 vs 유인하
SBS ‘다섯 손가락’에서는 다시 선악 구도 대결을 집어넣었다. 주인공이 탁월한 실력에도 악의 세력 때문에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가 기사회생한다는 줄거리도 전작들과 똑 닮아있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피아니스트’라는 소재로 고급스럽게 포장했다는 점이다. 권력욕이 높은 채영랑(채시라 분)이 자신의 친아들 유인하(지창욱 분)를 악기 거대그룹 오너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의붓아들 유지호(주지훈 분)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죄값을 치르며 마무리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섯손가락’은 강한 자극성과 물의를 빚은 주지훈의 복귀작이란 점에서 크게 화제가 됐지만 같은 시간대 경쟁작 MBC ‘메이퀸’에 밀려 쓸쓸하게 종영을 맞았다. ‘막장’의 행보를 막장이 막은 셈이었다.
◇ '왔다 장보리' - 장보리 vs 연민정
2014년 절치부심한 김 작가는 역대급 막장 악녀 연민정(이유리 분)을 앞세운 MBC ‘왔다 장보리’로 시청률 사냥에 나섰다. 출생의 비밀, 권력욕에 의한 악행, 권선징악 등 전형적인 통속극의 모든 걸 갖췄다.
이 작품은 어릴 적 엄마의 실수로 미아가 된 한복대가의 후계자 장보리(오연서 분)와 그의 자릴 노리는 악녀 연민정의 오랜 갈등과 엇갈린 운명을 그리고 있다. 특히 연민정은 권력을 움켜쥘 수만 있다면 딸 비단(김지영 분)도 버릴 정도로 뻔뻔한 인물로 그려져 ‘암 유발 캐릭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아내의 유혹’ 이후 주춤했던 스타 작가로서 행보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최고시청률 37.3%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작년 통틀어 최고 흥행작으로 인정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연민정 역을 맡은 이유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수십편의 광고에 출연하고, 같은해 MBC ‘연기대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 MC를 맡으면서 연기 외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아내의 유혹’ 이후 몸값을 더욱 높인 장서희와 비견할만한 예였다.
◇ '내딸 금사월' - 금사월 vs 오혜상
운명이 바뀐 두 여인의 얘기에 흠뻑 취한 김 작가는 ‘왔다 장보리’ 자매품을 내놓았다. MBC 주말드라마 ‘내딸 금사월’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릴 적 한 보육원에서 신분이 뒤바뀐 금사월(백진희 분)과 오혜상(박세영 분)의 파란만장한 삶과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전작과 매우 비슷한 분위기로 초반 시선몰이에 성공했다.
운명의 장난 속에서도 꿋꿋하고 밝게 큰 한 여자와 그의 선천적 재능을 시기하는 악녀, 이들을 둘러싼 재벌가 가족의 암투 등 캐릭터와 구성이 빼다박았다. 주인공의 주종목이 한복짓기에서 건축 설계로 바뀐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자기복제’란 비난이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김순옥 작가의 흥행 파워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내딸 금사월’이 시청률 27.3%라는 자체최고 성적을 거두며 3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욕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는 중독성이 김 작가 펜대의 강점임을 또 한 번 보여준 순간이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