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원인 뒤에는 ‘더 빨리’ ‘더 싸게’ 방송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제작 환경과 방송사-제작사의 불편한 ‘갑을관계’가 있었다.
방송가의 ‘안전불감증’은 하루 이틀 있어왔던 일은 아니다. 나름의 규정과 법규가 존재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각종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 현장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이 이어지지만 이를 예방하거나 후의 보상 문제가 원활하게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올해만 해도 한 종합편성채널의 드라마 ‘하녀들’의 세트장 화재 사고, MBC ‘화정’ 스태프와 PD들의 연이은 사고와 입원, ‘여왕의 꽃’ 영상기사가 작업도중 졸도에 숨지는 사고 등이 연달아 일어났다. 급박한 촬영 현장에서 ‘안전’은 마치 뒷전으로 밀린 인상이 역력한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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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이주영 |
이에 대해 가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오미영 교수는 “우리나라 방송 제작 환경의 열악함은 방송사와 제작사 혹은 노동자들의 ‘갑을관계’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쪽대본’ ‘살인적인 스케줄’이 다반사인 우리나라 방송 촬영 환경은 외국과 달리 안전문제에 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 제작자와 제작에 참여하는 인력의 갑을관계는 상당히 심한 편이다. 노조가 활성화 돼있지 않고, 법적으로 어떤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방송 경쟁은 점점 극에 치닫고 있기 때문에 방송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방송 촬영을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외주제작일 경우에는 더욱 정도가 심하다. 오미영 교수는 “외주제작 방송 프로그램일 경우에는 만약 사고가 났을 때 그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방송사가 이를 책임질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오롯이 외주제작사가 떠안고 가게 된다”며 “외주제작사는 빠듯한 시간과 부족한 예산을 가지고 ‘생존’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촬영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빠른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잔인한 방송가 스케줄이 안전문제의 예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소견이다. 외주제작사의 한 고위 관계자또한 이에 공감했다.
이 관계자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모두 아주 촉박한 스케줄로 진행된다. 사전제작이 아니고서야 ‘쪽대본’을 면치 못하는 게 현실인데, 며칠 동안 밤을 새다시피 지낸 스태프들과 출연진에게 실수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환경에서 벌어진 부주의가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후속조치는 외주제작사의 몫이다. 방송사는 이를 떠넘기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워낙 이런 상황이 관례처럼 내려오니 외주제작사 또한 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스태프들을 위한 각종 보험 가입이 필수로 이뤄지지만 그 ‘보험’ 하나로 모든 사고를 보상할 수는 없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관계자는 “아무리 안전수칙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을 해도 이를 귀담아 듣는 스태프들은 별로 없다. 말보다는 무언가 정확하게 짜인 안전교육이 방송사 소속이든, 외주제작사 소속이든 모든 스태프들에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방송 노동자’들에게 안전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지금 당장의 촬영을 위해 자칫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는 상황도 감내해야 하는 게 지금 방송가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에 대한 법적인 보호와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