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막장드라마라는 말이 하나의 장르로 정의 내려진 것 같습니다. 불륜, 치정, 살인 등 도의적이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과 앞뒤 고려하지 않는 자극적인 전개 등이 항상 막장드라마라는 범주 안에 싸잡아 묶이는데요.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런 소재들이 대외적으로 욕을 먹을지언정 시청률 싸움에서는 결코 1위 자리를 뺏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주말극 왕좌를 지킨 KBS2 드라마를 살펴볼까요. 막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왕가네 식구들’(2013)은 47.3%로 근래에는 보기 힘든 수치를 달성했습니다. 반면 막장요소를 과감히 제하겠다고 선언했던 ‘부탁해요 엄마’는 20%대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으며 전작이었던 ‘파랑새의 집’(2014)도 고작 27.5%에 머물렀습니다. 주말극 왕좌 타이틀에는 다소 아쉬운 성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청률 수치뿐만 아니라 화제성 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MBC ‘사랑했나봐’(2012) 속 박동빈의 주스신이나, ‘모두 다 김치’(2014) 속 원기준의 김치 싸대기 신은 조롱을 받으면서도 오랜 시간 화제를 모았고, 드라마를 주목시키는 계기가 됐었죠. ‘오로라공주’(2013) 속 등장인물의 연이은 죽음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될 만큼 상당한 화제성을 몰고 왔고요.
드라마의 화제성과 완성도 등 모든 것이 결국 시청률로 평가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확보하는 것은 곧 경쟁력입니다. 더욱 자극적인 것으로 시청자들을 회유시키는 현재의 시청률 구조를 탓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죠. 또한 주말, 아침, 일일드라마 등에서 절대적인 리모컨 파워를 보이는 것이 중장년층, 특히 4~50대 주부인 만큼 그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드라마라는 이유가 절대적인 면피책이 될 수 없고 드라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허용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범람하는 논란의 막장드라마’와 ‘욕하면서도 보는 막장 드라마’ 사이 제작진의 딜레마를 무시한 채 무조건 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막장드라마가 왜 점점 입지를 다져나가고, 또 사라지지 않는지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막장드라마의 MSG에 빠져계신가요? TV만 틀면 쏟아져 나오는 출생의 비밀, 음모, 납치, 살인, 악녀, 삼각관계 등 불량식품 같은 소재들에 입맛 버리지 않았나요? 몸에 해로운 걸 알면서도 방송사는 왜 자꾸 막장드라마를 생산해내는 걸까요.
혹자는 막장드라마가 이젠 하나의 장르라는 말도 하더라고요. 이 얼마나 자기합리적인 말인가요? 극의 개연성 상관없이 자극적 요소를 마구 넣어야만 흥행할 수 있다는 제작자들의 욕심을 합리화시킨 거잖아요. 정말 작품성과 완성도를 생각한 제작진이라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제발 막장드라마 홍수 속에서 정서적으로 피폐해지는 시청자도 생각해주세요. 일례로 임성한 작가가 등장인물을 저승사자처럼 잡아간 MBC ‘오로라공주’는 ‘국민 암유발 드라마’라는 오명을 쓴 채 드라마 폐지 운동까지 벌어졌잖아요. 벌어먹고 살기에도 정신없을 시청자들이 왜 굳이 그런 행동까지 나섰을까요. 스트레스 풀려고 튼 TV가 오히려 화만 돋우니 아예 퇴출해버리자는 것 아니었을까요.
흥행작도 ‘막장’이란 비난으로 명예에 오점을 남기곤 합니다. 최근 20% 시청률을 넘기며 올 상반기 최고 히트작으로 기록된 SBS ‘용팔이’도 중반으로 갈수록 개연성 없는 전개와 무지막지한 PPL 노출로 팬들의 원성을 샀죠.
작년 최대 흥행작 MBC ‘왔다 장보리’도 시청률 신기록을 새로 썼지만 그 누구도 ‘잘 만든 드라마’라는 소린 안 합니다. 비현실적인 악녀, 출생의 비밀, 재벌가의 음모와 배신 등 이미 여러 작품에서 식상하도록 봐온 설정이니까요. 광고도 완판되고 출연진 인기도 치솟았다지만, 명작으로 남을 정도의 작품은 아니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죠.
막장드라마 간 대놓고 표절하는 문제는 또 어떻고요? 배우만 바뀌었지, 내용은 공장처럼 찍어놓은 ‘강남미인’ 형 드라마들이 판을 치고 있어요. 솔직히 아침드라마 중에 ‘이브의 사랑’ ‘청담동 스캔들’ ‘내 손을 잡아’ ‘사랑했나봐’ 등 내용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있나요? 그럼에도 무슨 내용인지 한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여주인공이 악녀의 시기와 질투에 남자를 빼앗기고 좌절하다가, 새로운 재벌2세 남자를 만나 성공하는 이야기’로 줄일 수 있죠. 늘 비슷한 포맷의 아침드라마가 방송돼 일종의 ‘학습 효과’라고나 할까요?
막장드라마의 문제, 어제오늘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바로 고쳐진다거나, 깨끗이 정화되진 않겠죠. 그럼에도 심각성 정도는 자각하고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막장도 장르다’란 말이 더 이상 힘을 얻지 않도록 앞으로도 주시해야겠습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박주연 기자 blindz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