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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영(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만큼 답답하다는 이야기다. '했다'는 추측은 많은데 한 사람이 없다. 심증뿐이라도 이쯤 되면 '음원 사재기' 논란의 실체는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양현석·박진영·이승환 이상의 '용자(勇者)'가 필요하다.
특정 가수의 음원을 한꺼번에 대량 사들여 차트에서 순위를 올리는 이른바 '사재기' 중개업자에 관한 소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시쳇말로 공공연한 비밀이다.
JTBC '뉴스룸' 관련 보도 자료화면에 그룹 '아이콘'이 모자이크 처리돼 쓰여 당혹스러울 법했던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는 오히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화법으로 자신들의 떳떳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승환은 "측근을 통해 음원 사재기 브로커에게 연락이 온 적이 있는데 수 억 원을 내면 차트 순위를 올려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익명 보도를 전제로 한 인터뷰가 아닌, 얼굴을 내어놓고 본인들 입으로 직접 소신 발언한 점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결국 다 '카더라' 식 주장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물론 '음원 사재기'를 뿌리뽑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부와 검찰의 의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음원 사재기를 집중 관리·감독하는 위원회 설립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매출 구조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유통사의 도움 없이 실효성은 의문이다.
가요 관계자들에게 지인을 고발하는, '배신'을 강요하거나 그렇지 않는다고 비난 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내부고발자'는 필요하다.
2년 전 SM·YG·JYP·스타제국엔터테인먼트가 음원 차트 조작 대행업체를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고발했으나 유야무야된 바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조작 대행업체 특성상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
현재까지 공개적으로 드러난 유일한 단서는 박진영이 갖고 있다.
박진영은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제 주변 한 분은 그냥 사실 자기도 했다는 얘기까지 저한테 하실 정도"라고 말했다.
박진영이 지목한 '사실 자기도 했다'는 그 사람부터 검찰은 추적·수사해야 한다. 그나마 음원 사재기에 실제 가담했던 당사자로 고발된 이를 역추적해 하나씩 수사한다 해도 긍정적인 결과를 장담할 순 없다.
가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음원 사재기' 거래는 철저히 '무자료'로 진행 된다. 속된 표현으로 '현금 박치기'다. 은행계좌를 통해 입금한다하더라도 다수 업체를 통해 몇번 '세탁'을 거친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해커는 현직에 종사하는 가요 매니저들을 브로커(중개업자)로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몸통은 한 두 곳이다. 브로커가 다수다.
한 관계자는 "휴대폰 수 천대를 운용하면서 음악 스트리밍·다운로드하는데 드는 비용이 한 달에 6~7억원으로 추정 된다.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한달에 5~6곳 고객을 확보해야 수지타산이 맞기에 매니저에게 일정 금액 수수료를 떼어주는 형태로 그들을 활용, 무차별 영업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와중에는 사기꾼도 있다. 음원 순위를 올려주겠다며 접근해 돈만 챙겨 달아나는 것이다. 사기를 당했음에도 신고도, 어디 하소연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기획사의 속사정을 노린 수법이다.
음원 사재기가 얼마나 횡행하고 있는지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두렵다. 제대로 파고 들면 썩지 않은 곳이 거의 없는, 가요계 전체가 발칵 뒤집힐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암 세포를 그냥 둘 수는 없다. 뿌리를 발본색원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안 그래도 허약한 국내 대중음악시장의 건강과 신뢰는 점점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K팝이 문화산업 동력 한 축이 된 오늘날,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언젠가 사망 선고를 각오해야 한다.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이 있다. 독일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작품 '잔치는 끝났다'의 한 구절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나마 날개가 있었기에 추락하는 일도 있는 셈이다.
가요계는 K팝 한류 붐을 타고 한 때 잘 날았다. 하지만 '음원 사재기'는 꿈도 못꿀 자본력 약한 중소·신생 기획사들에게, 하늘을 나는 건 여전히 꿈이다. '부익부 빈익빈' 악순환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은 시장은 생명력이 약하다.
혹자는 말했다. '아무리 땅을 박차고 뛰어봐도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할 때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것이다. 적어도 떨어지는 동안만큼은 허공을 날 수 있다.
비록 끝내 날개를 펴지 못하고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비극이라 할지라도 '용자'가 있을 때 가요계는 환골탈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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