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배우는 한 번 그은 획은 또 그을 수 없다. 계속 그어야겠지만 똑같은 것을 그리면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카드가 없다. 나라는 재료는 하나 아닌가. 평생 아등바등 캐릭터를 만들고 살아야 한다.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안 해본 캐릭터를 만나면 반갑고 해보고 싶다. 목소리, 분장까지 다 고민이지만 말이다”
배우 설경구의 이름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실린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공공의 적’ ‘실미도’ ‘광복절 특사’ ‘해운대’ ‘스파이’ ‘소원’ 등 수 많은 작품을 통해 연기력 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신뢰까지 굳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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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천정환 기자/ 디자인=이주영 |
그런 설경구가 ‘서부전선’을 통해 다시 관객을 찾았다. 차기작 ‘살인자의 기억법’을 위해 체중을 감량한 설경구는 “살을 찌우고 빼는 것 둘 다 쉽지 않은데, 살 찔 때 기분이 좋지 않더라. 스트레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서부전선’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마냥 슬프지 않다. 농사짓다 끌려온 남한구과 탱크는 책으로만 배운 북한군이 운명이 달린 비밀문서를 두고 위험천만한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1953년 휴전 3일 전,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비밀문서를 전달해야 하는 남한군 남복(설경구 분)과 북한군 쫄병 영광(여진구 분)은 서부전선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설경구가 분한 남한군 남복은 정이 많은 캐릭터다. 어수룩하면서 솔직하고, 누구보다 인간냄새가 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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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천정환 기자 |
2009년 처음 ‘서부전선’ 시나리오를 본 설경구는 故이은주의 기일에 다시 ‘서부전선’을 접하게 됐다. 당시 시나리오를 보고 영광 역에 여진구가 생각났지만, 서로 다른 작품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설경구는 작품의 시나리오가 계속 생각났고, 결국 남복이라는 옷을 입게 됐다.
“여진구 추천은 내가 안 했어도 누군가 했을 것이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너무 어렸고 아이 같았는데, 딱 영광이라는 역할을 맞을 나이가 됐더라. 영광 역은 20대가 할 수 있는 역할기도 하지만, 더 어린 나이대가 했으면 했다. 20대는 군대 갈 생각을 하지만 10대에는 군대에 대한 생각을 20대처럼 하지 않지 않나”
극 중 영광이 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로 끌려오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즉 자신에게서 먼일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역할을 여진구가 하면 딱일 것이라는 것이 설경구의 설명이다.
“여진구는 굉장히 예의바르다. 인사고 깍듯이 하고.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격세지감이 없다. 지금까지 잘 커줬고 앞으로도 잘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진구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늘어놓는 데는 후배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다. 설경구는 여배우 뿐 아니라 남자배우들과의 케미를 잘 살리는 배우다. ‘나의 독재자’에서는 박해일과, ‘공공의 적’ ‘강철중: 공공의 적’ ‘실미도’와 ‘해운대’ 등 강렬한 듯 하지만, 상대 배우의 매력을 살려주는 것이 설경구가 가진 힘 중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마음이 좋아서 그런 것이다(웃음). 상대 배우를 다 받아주고 포용하는 것도 재밌다. 사실 둘이 안 맞으면 안 된다. 영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서부전선’은 두 인물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못 봐주는 영화다. 웃기는 것도 지저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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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천정환 기자 |
특히 설경구는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생각도 빼놓지 않았다.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라고 무조건 적으로 칭찬만 늘어놓지도 않았고, 아쉬운 점과 어설픈 지점도 콕 찝어서 설명해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벌에 쏘이는 장면도 그렇고, 과장한 장면이나 설정이 있다. 추격전, 대포 등 모두 작가의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영화니까 가능한 것 이다. 어설픈 것도 있지만 우리 영화로 맞지 않나. 세련되지 못한 맛 말이다. 한국전쟁을 다루면서 웃음 포인트가 마냥 가벼운 것 같지 않다. 이념으로 뭉친 사람이 아닌 민간인과 수류탄도 쏠 줄 모르는 북한군 아닌가.”
때문에 설경구는 ‘서부전선’에 대해 “곱씹으면 안타깝고 슬프다. 극 중 둘은 서로 겨누기는 하지만 막상 총은 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결국에는 비극이다. 둘이 담배 피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처음에는 활짝 웃는데 그냥 좋다가 슬프더라. 지켜보는 사람들도 없고 굳이 죽일 이유도 없는 이들의 모습이. ‘서부전선’은 웃음이나 비극의 수위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장해도 안 되고 완벽한 전쟁 영화도 아니고 억지로 짓누르지도 않고. 혼자 보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면 좋은 작품이다”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