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이준익, 류승완, 봉준호, 변영주 등 한국 영화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한국영화감독 표준연출계약서’ 운용 계획과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위한 여러 문제점을 도마 위에 올리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DGK)은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 멀티펑션룸에서 ‘한국영화감독 표준연출계약서’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DGK는 이번 공청회를 시작으로 ‘한국영화감독 표준연출계약서’의 실질적 운용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공청회는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도움을 받아 감독조합이 약 3년 여 만에 이뤄낸 결실에 관해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고하고자 마련됐다. DGK는 ‘한국영화감독 표준연출계약서’가 영화감독만이 아니라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위한 건강성 확보에도 도움이 됨을 알리고자 한다며 공청회를 연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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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K 대표를 맡고 있는 이준익 감독은 “연출계약서가 나오기까지 3년이 걸린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는 사업 중에 영화생산자 계약 표준 사업에 첫 번째 시나리오작가 조합, 두 번째가 감독표준계약서, 또 하나가 촬영감독조합 등 다양한 생산 분야에 있는 직능적 계약서를 시작했다”며 “수십년 동안 한국영화계에 많은 계약서들이 있었고 감독 계약서도 있었다. 과거의 관행에 머물러 있었고 많은 시장의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 발전에 비해 양식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파악해서 그런 과정의 결과로 표준 계약서를 발표하고 공청회를 발표하고 향후 미래의 감독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좋은 표준이 될 만한 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DGK에 따르면 한국영화감독 표준연출계약서는 2012년 이명세, 임순례, 박신우 감독 등 일련의 사태로 인해 출발하게 됐다. 지난 2013년 1차 완성본을 발표한 이후 수정, 보완을 거쳐 2차본이 완성됐고, 2014년 DGK는 영진위에서 수정안이 공고안으로 나오자 이를 수용해 올해 최종본을 완성하게 됐다.
DGK 부대표 한지승 감독은 “그때 나름 정리를 했던 결과는 당시 감독, 제작자 잘못으로 구분하기에는 모호한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 산업적으로 기준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모아졌다. 영진위와 접촉해서 연구팀을 지원받고 주기적으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합의하게 됐다. 10여 명의 감독들이 팀으로 모여서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외국의 사례 및 조언 등을 받아서 처음으로 계약서 1차 완성을 2013년에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원 노철환 박사는 “외국 계약서와 그동안 감독들이 사용했던 계약서를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사정과 저작권법을 연구해서 가능한 한 하자가 없는 계약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표준계약서는 제작 공정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준 제시하자는 의의를 두고 있다. 한 감독은 “권리의 주장만이 아니라 계약서를 통해 책임져야 할 의무에 대한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려고 했고, 제작사의 현실을 고려하기 위해서 산업적인 위치를 고민하려고 노력했다”며 “(계약서가) 기획/제작 단계로 구분해서 현실적이고 효율성 있게 담으려 했다. 개선과 발전의 여지를 확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영화감독 표준 연출계약서의 특징은 기획 단계와 제작 단계의 계약서가 분리된다는 점이다. DGK는 기획과 제작 단계의 계약서를 분리한 이유로 그간 한국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였던 기획 단계의 모호함을 정의하고 그 과정 안에서의 합리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며, 제작 단계에서는 감독의 편집권 및 수익의 안정적인 분배에 대한 내용들을 포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또한 제작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낭비를 제거해보자는 점과 기획단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부분의 실수, 책임전가 부분 등을 없애고 더욱 활발히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번 기획단계 표준연출계약서에는 ‘기획 원안자’의 개념을 도입했다. 기획 원안자는 주요 등장인물들과 시공간 배경 설정, 영화의 주제와 중심 사건, 줄거리 및 결말 등을 명시한 독창적인 창작물인 영화원안(시놉시스)을 본 계약 말미에 (사)한국영화감독조합이 정한 별지 기준양식에 따라 작성하고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자신의 명의로 사전등록을 한 자를 일컫는다. 이에 대해 한 감독은 “아이템을 개발하고 나서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서 계약해지가 된다거나 권리귀속 부분들을 명확히 구분해보자라는 개념으로 도입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기획 및 개발을 완료한 감독은 프로젝트의 영화 제작 착수시 ‘연출 우선권’을 갖는다는 점은 해당 계약이 장편영화로 제작 가능한 기획/개발을 지향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때문에 지위와 역할, 책임과 의무를 규정한 계약을 바탕으로 기획/개발을 진행한다면 제작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제작진행을 프로젝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감독이 연출을 맡는 것이다. 계약 당사자인 감독에게 제작단계 진입시 연출 우선권을 줌으로써 기획/개발에 대한 책임감과 업무의 연속성을 꾀하고자 했다.
또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독점계약으로 해석되지 않는 바, 감독은 프로젝트의 기획 및 개발 기간 동안 다른 영화의 기획 및 개발업무를 수행하거나 그 밖에 영화 관련 작업에 관여하더라도 해당 계약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 이는 감독이 프로젝트의 계약 기간 내에도 다른 작품의 기획/개발 또는 연출 가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획단계 연출계약을 ‘비독점 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조항을 통해 제작사가 감독과 독점 계약을 맺는다면, 감독은 프로젝트의 기획/개발 작업에만 전념해야 한다.
제작단계 표준연출계약서는 기존 감독계약을 기획단계와 제작단계로 나눈다. 이 제작단계 연출계약은 기획단계 계약에서 확정된 최종본 시나리오에서 시작해 영화 연출에 관한 권리, 의무 등을 규정한다. 해당 계약은 비독점계약인 기획단계 연출계약과 독립적인 까닭에 제작사는 기획단계 연출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최종 시나리오를 가지고 기존 계약 대상과 다른 제3의 감독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감독의 독점적인 연출계약은 미국, 유럽에서 통용되고 있는 ‘Pay or play’를 참조했다. 이의 주요 골자는 만약 해당 영화의 제작이 취소되거나, 영화의 연출권이 다른 감독에게 넘어가더라도 약속한 연출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단 감독이 스스로 연출권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제작사에게 연출료 지불의 의무는 없어진다.
계약서 발표 이후 이날 참석한 다수의 감독들의 문제제기와 함께 견해를 피력했다. 임필성 감독은 “계약서가 분쟁이 생길 우려가 많다”라며 “블라인드 시사에서 모니터 요원의 점수로 감독의 운명이 갈리고 있다”고 블라인드 시사에 관한 고충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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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은 “원안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 주관성 때문에 계속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 구체적인 첨부되어지지 않는 한 보다 물질적인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 롯데영상산업부 상무이사 최건용 교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연출자들을 위한 계약서가 돼야 한다”라고 꼬집으며 “새로 도전하고 새로운 창작활동을 해서 자기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많은 신인 감독들이나 흥행에 실패한 감독들에게 이런 조건들을 적용을 했을 때 과연 최종적으로 계약이 마무리되고 할 수 있는 계약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DGK는 공청회 진행 이후 ‘한국영화감독 표준 연출 계약서’를 현장에 시험 운용할 계획이다. 한지승 감독은 “계약서가 완벽하다고 말씀드리는 거 아니다. 이게 완벽하면 같이 협약식을 해야 하는 자리이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블라인드 시사 문제만 하더라도 가슴 아프다. 그만큼 가더라도 후반이지 않나. 기획 단계에서 무너지는 감독도 많다. 그래서 기획 단계를 만든 것”이라며 “1차 편집권 얻어 낸 것만 하더라도 팀들의 봉원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같이 해나간다는 생각으로 바람이었다. (계약서를) 수정, 보완해서 발전시킬 거다”라고 밝혔다.
이어 “계약서를 통해서 주장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만약 제작사가 망해서 사라진다면 이용의 권리자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저작권자로서 계약해놓은 게 있기 때문에 저작권자로서 이용하겠다고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잘 풀린다면 신인감독은 들어오기 쉬운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계급을 느끼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체제가 앞으로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