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정치드라마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역사는 재연’이라는 틀에 갇혀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픽션이 가미된 정치드라마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변모의 길로 들어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넘어야할 ‘산’은 많다.
정치드라마 장르가 우리나라에서 양상이 조금씩 달라진 시기는 2010년 후반부터다. 일전에는 정치드라마는 무조건 역사의 재연에 기반 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SBS ‘대물’(2010)과 KBS2 ‘프레지던트’(2010) 등 허구의 스토리로 정치를 풀어내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런 편견이 깨졌다.
비슷한 시기에 쏟아진 정치드라마들은 허구의 스토리지만 주제의식은 당시 발생한 사회 현상과 정치적 사건들에서 보여지는 담론들을 담아내 변화를 요구하는 대중의 심리를 잘 반영했다. 이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에 성원을 받기도 했고, 정치권에 따끔한 일침으로 드라마의 장면들이 사용되고는 했다.
![]() |
↑ 사진=시티홀 포스터 |
이런 패러다임은 그간 한국 정치드라마에서 보였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서양의 정치드라마 양상과 맞닿아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시청자에게 더욱 폭넓게 장르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정치라는 개념에 ‘야박’했던 이전의 편견을 깨니 더욱 다양한 주제들이 드라마에 스며들 수 있었고, 생활밀착형 드라마들로 메시지와 재미를 한꺼번에 주는 작품들이 서서히 늘어갔다.
그럼에도 아직 정치드라마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장르 중 하나다. 대북정치, 핵문제 등이 주축이 된 드라마 ‘아이리스’가 정치드라마로 분류되지 않는 것처럼 많은 정치적 드라마들이 액션 혹은 스릴러의 장르로 구분됐다. 물론 자의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제작사들에 ‘정치드라마’로 분류한다고 말했을 때 이를 선뜻 반길 곳은 없을 듯 하다.
그 이유로 전문가들은 ‘정치적’이라는 표현이 이미 대중 머릿속에 부정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정치라는 표현과 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크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시선에는 정치가 국민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유도한다고 비춰지고 이런 현상들이 반복되다보니 실망과 혐오가 커지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또한 정치라는 단어 자체가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 술수’를 의미하는 용어로 바뀌었다는 것에서 정치드라마의 어쩔 수 없는 ‘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봤다. 각종 드라마에서 정치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탁자에 앉아 암투와 중상모략에 온힘을 쏟는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대중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 |
↑ 사진=대물 포스터 |
이외에도 정치드라마가 가진 한계성은 있다. 단순하게 선악구도가 나뉘어지는 경향도 위험한 요소 중 하나다. 정치는 단순하게 산과 악을 나눌 수 있고 일차원적인 이해관계로 형성된 사건들은 없다. 하지만 청렴한 정치인과 부패한 정치인의 대결로 귀결되는 각종 정치드라마로 인해 시청자들에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모든 전문직 드라마가 그렇듯 정치 드라마도 ‘기승전 멜로’로 끝나는 전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정치를 하는 와중에 개인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캐릭터들이 ‘감성 정치’를 표방하는 긍정적인 면모도 있지만, 이 ‘감성’이 자칫 정치를 위한 게 아니라 멜로를 위한 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실존 인물을 다룰 때에는 허구와 역사의 줄다리기 때문에 간혹 명예훼손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도 있어 더욱 주의가 요구되기도 한다. 허구를 기반으로 하는 게 드라마라지만, 자칫 드라마 속 실존 인물이 행한 것들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다행히 대법원에서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도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계속 나오는 인물일 경우 악의를 지니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제작자 입장에서는 여간 조심스러운 사안임에는 분명하다.
이처럼 정치드라마 장르는 아직 극복하지 못한 한계들도 있지만 조금씩 변화를 거치면서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청자들에게는 분명 좋은 현상이며 정치라는 생활밀착형 소재를 색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반길 만하다. 과연 정치드라마는 지금의 과도기를 거쳐 미국의 경우처럼 인기 드라마의 종목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 문헌
* ‘한국 픽션 정치드라마의 정치 재현-시티홀, 대물, 프레지던트를 중심으로’(2012, 조수현)
* ‘2천년대 TV정치드라마의 대통령 이미지 분석’(2011, 윤대주)
* ‘텔레비전 역사드라마 이산의 정치적 성향 고찰’(윤석진)
* ‘역사드라마의 실존 정치인에 대한 허구적 묘사와 명예훼손 판례상의 법리’(2009, 양동복)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