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살아있음에 슬픔이 없다면 삶이 무미건조할 것 같다.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가. 그로 인해 영감도 얻을 수 있다. 화가 날 땐 화내고, 슬픈 땐 울고, 기쁠 땐 웃어야 한다. 이상에 기대고 올바른 판단만 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 없는가”
장문일 감독은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사소한 것 하나도 넘겨짚지 않는다. 마냥 아름다운 것만 좇고 그것을 표현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않는다. ‘행복한 장의사’ ‘바람 피기 좋은날’에서 엄청난 사건을 아무렇지 않은 일상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고민하게 만들더니, 8년 만에 ‘돼지 같은 여자’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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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나온 것 자체가 새롭지 않나. 핑크 돼지, 장어, 새, 갈치 등 각종 생물이 나온다. ‘돼지 같은 여자’는 한 남자와 세 여자의 로맨스로만 본다면 약간의 오해를 할 수 있다. 오히려 한 여자, 그 여자의 가족, 동생이 보는 누나에 대한 얘기, 그 삶에 대해 돌아간다. 돼지라는 것이 억척스럽게 살고 실패하고 또 그렇게 살지 않나. 삶 자체를 아름답게 보자는 생각이다”
특히 ‘돼지 같은 여자’는 억지스럽지 않다. 관객들의 희망 사항대로 흘러가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듯하다.
“멜로의 틀로만 본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 재화의 인생으로 봤을 때 ‘애환’으로 앞으로 살 거 같지만, 또 그가 불행한 것 같지는 않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행복했을 것 같다. 결국 준섭(이종혁 분)이 첫사랑을 지킬 것이라는, 재화를 행복하게 할 힘이 있는 것 아닌가. 생명력을 갖는 힘은 스스로 가지고 있고, 삶의 희망도 뜻대로 되지 않음이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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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스틸 |
극 중 재화의 동생이 누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재화가 동생에게 미술 도구를 사주는 장면 뿐 아니라, 인물들 하나하나가 마치 주변 사람들처럼 친근하고 얄미운 모습이 솔직하게 담겼다. 이는 모두 장 감독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다.
“모든 에피소드 캐릭터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사람들의 모습이다. 남동생이 누나에 대해 그리는 장면은 어느 정도 내 생각이 투영돼 있다. 누나가 정말 돼지 껍데기 집에서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 그림 도구를 잔뜩 사오는 누나의 모습도 그렇다”
장 감독은 아름다운 것을 담지만 해피엔딩을 그리지 않는다. 전작 ‘행복한 장의사’ ‘바람 피기 좋은 날’에 이어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그림을 그려서 그럴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이 예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곱고 예쁘게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새롭게 담아내고 싶은 것이다. 투박하지만 자유스럽고 자연스럽고 거칠어 보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되돌아 볼 수 있지 않나”
장 감독의 말대로, 사랑, 꽃, 화려한 의상,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등 보다 쉽게 다룰 수 없는 사람의 죽음, 장의사, 바람을 피우는 것, 돼지 등의 소재는 다소 투박하다. 신선할 수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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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감독의 말을 듣고 있자니 최근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행복이와 슬픔이가 생각이 났다. 장 감독 역시 슬픔이라는 감정이 행복이라는 감정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듯 말이다.
“살아있음에 슬픔이 없다면 무미건조할 것 같다.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가. 화날 때는 화내고, 슬프면 울고, 우울함을 느끼는 등의 감정은 소중하다. 이상에 기대고 올바른 판단만 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나. 그 삶에 대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사소한 일상도 얼마나 감사한 게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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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스틸 |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가 나오지 않고, 영화가 산물(産物)로 나오고 있으니,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즐기지 않게 된다. 상업영화와 다양성, 독립영화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지, 영화가 예술인가 아닌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한다. 상업영화 이야기들의 장르화 된 영화 틀에 맞추고. 그 캐스팅과 배급구조로 돌아간다. 순환적이 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장 감독은 8년의 시간 동안 절에서 지내기도 하고, 도서실에서 다양한 책을 보면서 세상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려 했다. 그는 “기도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다. 기대는 마음이 얼마나 고운가.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이 곱다”고 말했다.
“현재 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운 자연에 낯선 냉장고 같더라. 그 냉장고 장면을 제일 좋아하는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풍부한 그림이 있는 장면이다. 냉장고에서부터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모티브가 된다.”
장 감독의 영화는 몇 번을 봐도 새롭게 보이는 장면이 많기도 하다. 함축적이게 한 장면에 무언가를 가득 담기보다, 처한 상황이나 나이에 맞게 여러 가지 생각을 들 수 있게끔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장 감독의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힘들고 치열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또 어떻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떤 힘이 우리를 살고 있는가,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영화는 내게 삶이다. 좋든 싫든 힘들어도 삶 자체가 감사한 것처럼 말이다. 내 영화를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아도, 적은 사람들이 몰래 웃을 수 있다면, 영화 전체가 아니라 한 장면만 좋아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