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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진(사진=다이아몬드원 제공) |
소위 '노래 좀 한다'는 아이돌 스타부터 실력파 보컬리스트까지 대거 나열된 한류 콘서트 라인업이 아니다. 대중에게 익숙치 않은 이름이지만, 가요계에서는 유명한 보컬 트레이너 전봉진을 거쳐간 제자들이다. 이들 외 수십 명이 더 있다.
한 때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도 점찍었던 그는 우여곡절 끝 마흔을 훌쩍 넘긴 이제서야 곧 가수로 데뷔한다. 가수 더원이 제작하는 1호 가수가 그다.(10월 예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최근 만난 그는 "난 누군가의 '스승'이 아닌 조력자였을 뿐"이라며 "유명한 분들의 이름을 내세워 주목받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 스스로에 대해 "특별한 재능이 없다. 공부를 잘 하지도 않았고 돈을 많이 벌지도 않았다. 미남도 아니다. 그저 인연에 인연이 꼬리를 물다 보니 지금의 상황이 됐다"며 웃을 뿐이었다.
그는 "주변에서는 '왜 전문 학원을 차리지 않느냐'고도 묻는데, 인연을 맺었던 유명인의 얼굴을 팔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살고 싶은 마음가짐이자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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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진(사진=다이아몬드원 제공) |
- 17년 간 스타들의 무대 뒤에 있었다
▶ 예전에는 체계화된 시스템이 없었다. 재능에 대한 자기발견조차 주변 평가가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남의 눈에 번쩍 뜨일 만큼의 특출난 뛰어남은 없었던 것 같다.
- 보컬 트레이너는 어떻게 되었나
▶ 음악을 해야겠다는 꿈은 없었다. 제대 후 누구나 그렇듯 먹고 살 고민할 시기, 그나마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다 보니 뮤지컬이었다. 뮤지컬을 하던 한 선배가 가수들 가르치는 일을 병행했었고, 그의 소개를 받아 인연이 됐다.
- 첫 제자는 누구인가
▶ 고등학생이던 휘성이다. 휘성은 애초 원타임 같은 콘셉트의 'A4'라는 그룹 싱어였고 내가 노래를 조금 봐주었다. 당시 내가 인상적이었는지 훗날 '안되나요'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렇게 거미도 만났고, 다음 인연들이 이어졌다.
- 누군가의 '보컬 스승'이란 표현이 부담스러운가
▶ 동료라고 생각한다. 난 조력자 중 한 명일 뿐이다. 물론 그들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는 동기 부여는 있었다. 그러나 피해 의식이나 우월감은 전혀 없다. 솔직히 '선생님'보다 '형'이라 불리는 게 더 좋다. 가끔 대학에서 강의하면 '교수님'이라고도 하는데 미쳐 버리겠다.(웃음) 체질에 맞지 않는다. 어색하다.
- 후배·동료 가수 중 가창력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 사실 그러한 질문은 답이 다 각자 정해져 있지 않나. 다만 내 기준은 따로 있다. '가수로서 본인의 색깔이 얼마나 진한가'를 본다. 아이돌은 아이돌 대로, 다른 장르 가수는 그들 대로 색깔이 있다. 같은 풀을 주더라도 이왕이면 더 좋은 풀을 주었을 뿐이다. 그걸 먹는 토끼는 토끼로 자라고, 코끼리는 코끼리로 자란다. 태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히 성장하는 것이다.
- 가수 데뷔가 왜 이리 늦어졌나
▶ 20대 중반, 모 소속사와 처음 계약을 맺었다. 결국 앨범을 내지 못한 채 30세까지 계약만 묶여 있었다. 드렁큰타이거와 협업 작업도 있었는데 타이거JK가 척수염 진단을 받으면서 무산됐다. 이후 30대 중반에 YG 양현석 대표를 만나 그의 아낌 없는 지원 속 앨범을 준비했으나 나와 함께 했던 프로듀서가 중간에서 장난을 치는 바람에 모든 계약을 접었다. 사람을 잘못 들인 내 책임도 있었기에 잘못을 인정했고, 오해를 풀어준 양현석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어찌 됐든 그러면서 30대 후반이 됐고, 솔직히 가수로서 희망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 불운의 연속, 상심이 컸겠다
▶ 불운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가수는 자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내가 도움을 준 가수들이 나보다 훨씬 나은 점도 많다. 그들이 부족한 점을 내 장점에서 배워 뽑아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난 그들보다 자신감이 약했다. 그래도 내 실력을 알아봐 준 분들(더원과 양현석)이 있어서 포기는 하지 않았지만 몇 차례 기회가 좌절되면서 나이 탓을 한 측면이 없지 않다.
- 더원이 직접 제작하는 1호 가수가 된다
▶ 뒷걸음질 치다 문고리 잡았다.(웃음) 꿈을 포기하지 않은 데 따른 결과지만 두려움은 있다. 내가 도움을 준 가수들이나 더원에게 창피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다.
- 가수 전봉진은
▶ 미술이든 춤이든 음악이든 아티스트는 작품을 통해서 그 사람의 색깔로 조명받는다. 나는 바리톤의 중저음 매력을 지녔다. 소울을 기반으로 한다. 음악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사람의 영혼을 울리고 끄집어 내고 싶다. 곡을 이해하고 내가 느낀 바를 그대로 전달하는 보컬리스트다. 그러다 보니 어떤 누구의 노래를 불러도 다 내 곡이 된다는 장점은 있다.
- 대중은 고음에 대한 욕구가 상대적으로 크다
▶ 그렇다. 지배적이다. 얼마 만큼 고음을 낼 수 있느냐를 가창력으로 평가하는 일부 대중의 인식이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악기로 치면 첼로와 바이올린의 차이다. 울림통의 크고 작음 속 각자의 음역이 있을 뿐이다.
- 전봉진의 데뷔곡은
▶ 그룹 업타운의 리더였던 정연준이 작사·작곡·프로듀싱한 '마이 레이디'라는 곡이다. 과거 솔리드와 업타운의 합작 그룹인 소울타운이 불렀던 노래를 리메이크 했다. 현재 막바지 작업 중이다. 그 다음은 온전한 신곡이 대기 중이다.
- 성공에 대한 조바심은 없나
▶ 보통 연예인 지망생 중 일부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경우가 있다. 나는 순리대로 산다. 지금까지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앞으로도 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정도면 된다.
- '재야의 고수'가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 맹목적인 목표는 없다는 것이다. 매 순간 내 영혼을 담으면 그에 답이 있으리라 여긴다. 항상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기회가 왔다 가곤 했다. 마치 신이 날 방해하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마음이 평온하다.
- 향후 계획이나 바라는 점은
▶ 200~300석 소규모 콘서트를 꾸준히 하고 싶다. 음악인이 성역 없이 설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간 내게는 무대가 없었다. 지인들과 노래방에 가면 '열심히 해서 훌륭한 가수가 되겠습니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 한 게 전부였다. 단순하다. 내 무대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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