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안녕하세요, 배우 이주석입니다. ‘블루칩인터뷰’ 코너에 나오기는 경력이 좀 됐죠? 하지만 저도 ‘블루칩’이 꼭 되고 싶었기에 문을 두드렸답니다. 제가 그동안 쭉 ‘엘리트’ 쪽으로 연기를 했거든요. 실장님이나 책략가 같은. 근데 저 ‘완전 반대’에요. 성격도, ‘머리’도요.(웃음) 제 새로운 모습을 ‘전격 공개’하기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10년 넘은 배우도 ‘블루칩’ 시켜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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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극이 힘든 이유가 뭘까~요?
지난 7월에 종영한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제 최근작이에요. ‘징비록’에서 이순신(김석훈 분)의 측근인 배흥립을 연기했죠. ‘징비록’은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다른 ‘정신적’이 아니라 ‘머리’가 나빠서요.(웃음) 먼 것은 문제가 안 됐는데 대본 읽다가 항상 충격이 오는 거예요. 와,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나.(웃음)
더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항상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가 걸림돌이 된다는 거예요. 하루에 딱 한 단어 씩. 차라리 그 걸림돌이 되는 단어가 앞에 나오는 신이면 괜찮은데 뒤에 나오는 신이면 하루종일 그 단어만 신경 쓰이는 거 있죠. 이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애걔, 이런 게 왜?’라고 생각하실 텐데 쭉 서너 줄로 붙여놓으면 여간 헷갈리는 대사들이 줄줄이었죠.
제일 어려웠던 장면이요? 아, 생각났다. 그게 ‘군량미 일 만 석, 화약 삼 천 포’ 이런 식으로 수량을 재는 단위들이 제각각인 대사가 한 줄 있었어요. 중요한 대사가 절대 아녔거든요. 근데 이것 때문에 진짜 너무 신경 쓰이는 거예요. NG나면 창피하고 다른 배우들한테 피해주는 거니까 보고 하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자꾸 안 된다고 해서.(웃음) 결국 보고 했지만.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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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징비록 방송 캡처 |
◇ 유독 ‘먼’ 촬영지와 인연이 깊은 배우랍니다
‘징비록’에서는 제가 중간에 들어간 경우에요. 이순신이 뒤늦게 출연하니 저도 자연스럽게 종영하기 한 달 전 쯤 합류하게 됐죠. 다른 배우들은 다 친해졌는데 중간에 투입되는 건 진짜 힘든 일이거든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데 바로 적응했다? 그 사람은 ‘뭘 해도 되는 사람’이죠. 전 다행히 아는 분들이 많았어요. 드라마 ‘전우’에 함께 했던 남성진 형, 정태우 등이 있었죠. 근데 그 분들이 저랑 겹치는 장면들이 단 한 개도 없어서 있는 둥 마는 둥 했지만.(웃음)
저도 뻘쭘했죠. ‘이순신 무리’들은 전부 처음 보는 분들이었거든요. 근데 진짜 웃긴 게 마지막 촬영 날부터 친해져서 지금은 1주일 마다 한 번 씩 보는 사이가 됐어요. 심지어 제가 투입되기 전에 극중 죽은 배역 맡은 친구가 대학로에서 공연하거든요. 그래서 김석훈 형이랑 해서 공연 응원도 갔다니까요. 우리 그런 사이 됐어요.(웃음)
유독 ‘먼’ 촬영지에서 촬영을 한다고요? 그게 드라마 ‘전우’부터 시작됐어요. 2010년 ‘전우’ 끝나고 무슨 KBS 공채 출신 마냥 KBS 드라마를 줄줄이 했죠.(웃음) ‘광개토대왕’ ‘산넘어남촌에는2’에 ‘징비록’까지. 하나 같이 산골짜기에서 촬영하는 드라마들이었죠. 그 때는 회사 없이 혼자 해서 더 힘들었어요. 몇 시간 동안 운전하고 도착하면 연기하고. 정말 고된 일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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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MBC ‘서울무림전’이라는 드라마를 했었는데요. 그건 멀리서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배경이 ‘서울’이었는데도 제 기억에는 제일 힘든 때였어요. 쉬는 날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 때 코디가 진짜 고생 많이 해줬는데. 그래서 그 코디랑 아직도 함께 해요. 무튼 그게 정말 ‘꽉 차게’ 힘든 일정이어서 바로 다음 작품이었던 ‘전우’가 오히려 ‘행복’할 정도였답니다.(웃음)
◇ 연기? ‘NG 안 나는 게 최고’라고 생각 했었죠
제가 연기를 처음 시작한 건 1998년 영화 ‘스트라이커’라는 거였어요. 지금 찾아보고 싶어도 결코 찾을 수 없는 비운의 작품이랍니다.(웃음) 단일관으로 개봉했던 그 영화가 전국 700명 관객을 달성했더라고요. 개봉하는 날 영화관에 딱 세 명 앉아있었던 게 아련히 기억나네요. 그 세 분 아직도 잘 계시죠?(웃음)
그 후에 제가 드라마에 특별출연으로 ‘카이스트’와 ‘학교2’를 했어요. 제 기억에는 그게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게 중간투입이면 그 때는 이제 ‘우리 식구’가 되는데 3일 촬영하는 특별출연은 그 쪽도, 저도 서로 다가가기 힘든 애매한 사이가 되거든요. 그런 분위기에다 두 작품 다 제가 TV에서 보던 사람들이 나오니까 얼마나 신기해요. 긴장해서 NG 엄청 냈죠.(웃음) 그 날 버스 타고 집에 오는데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그 때가 스무 살, 스물 한 살 때인데 어려서 그랬는지 ‘안 해야지’ 싶다가도 또 기회가 돼서 어딘가에 나오게 됐어요. 단편영화들과 인연이 닿아서 조금씩 연기를 이어가게 됐고요, 2003년 드라마 ‘보디가드’와 2004년 영화 ‘돌려차기’를 찍게 됐죠. 그 때만 해도 ‘NG만 안 나면 되지’라는 주의였어요. 캐릭터에 고민하고 공부하고, 그런 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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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20대의 저는 그냥 ‘그렇게 있다 보니 이 일이 내 일이 돼 버린’ 경우였던 것 같아요. 그냥 써있는 대로 외우고 연기하는, 그런 정도였죠. ‘서울무림전’의 주연을 맡았을 때에만 해도 늦깎이로 군대 가서 제대하고 29살이 됐는데 소속사는 없고 하다가 마침 아는 분이 ‘제대 했어요?’라면서 제안해주셔서 다행히 오디션을 볼 수 있었던 거였거든요. 그러니까, 그 때는 ‘연기’를 제대로 몰랐던 거죠.
◇ 연기 몰랐던 내게 연기 가르쳐준 최수종 형님
진짜 제 길이 연기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때 만난 작품이 드라마 ‘전우’에요. 그 때 주인공이 최수종 형님이었는데요. 제가 극중에서 육사생도인데, 육사 들어간지 2주 만에 전쟁이 나서 대장이 된 캐릭터였어요. 수종 형님보다 직급이 높은데 저 따라가면 사람들 다 죽고 맨날 지고 오는데, 수종 형님 따라가는 사람들은 다 살고 심지어 대승해서 돌아오는 상황인 거였어요. 자격지심이 있는 그런 캐릭터였죠.
그게 힘들었던 이유가 제가 직급이 높으니 말이나 행동보다 ‘기’로 수종 형님을 눌렀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 되나요. 최수종 형님인데. 정말 어려웠죠. 근데 이게 정말 재밌는 거예요. 정말 ‘내가 배우구나’ 싶고. 혼자 하는 연기가 아닌 ‘함께 하는 연기’를 그 때 배웠죠. 제가 ‘받는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을 깨달은 때이기도 했고요. 연기를 ‘받을 때’ 다른 배우 분들과 함께 하는 자체가 희열이 오고 그랬어요.
그 때 지금까지 함께 친한 정태우, 이승효 같은 배우들 모두 만나게 됐어요. 사람도, 연기도 다 준 작품이죠. 최수종 형님이랑 주거니 받거니 했던 그게 연기의 즐거움을 알려준 계기가 됐어요. 그 때 수종 형님이 무슨 조언을 해줬냐고요? 사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잘 안 됐어요.(웃음) 비유하면 대학생이 초등학생한테 수학 공식 설명해주는 꼴인데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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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수종 형님에게는 귀보다 눈으로 많이 배웠어요. 직접 연기하시는 걸 보고 많이 깨달았죠. 연기를 ‘받는’ 재미를 느꼈고, 그 넘치는 에너지로 맞춰서 연기하게 됐고.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면서 연기하는 법을 배웠어요. 정말 그 때 배운 게 지금의 ‘배우 이주석’을 만들어준 거나 다름없어요.
◇ ‘실장님’ 말고 ‘사이코’ 하고 싶은 배우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조연을 했는데요. 물론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감사하겠지만 원톱으로 주연을 하는 것보다는 ‘받는’ 연기를 하는 ‘명품 조연’이 되고 싶어요. 주인공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도 자신의 빛을 뿜어낼 수 있는 ‘명품 조연’ 분들이 요즘 정말 많잖아요. 저도 꼭 그렇게 되고 싶어요.
저랑 이렇게 대화 하시는 분들은 “예능 잘 하겠다”고 많이들 하세요. 실제로 그렇죠?(웃음) 얼굴이 신현준 씨 닮았다는 이야기 많이 듣는데 말투나 제스처도 좀 닮았어요.(웃음) 가끔 사인해달라고 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도 예능 나가면 잘 할 자신 있습니다.(웃음)
앞으로는 정말 다양한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실장님, 의사 이런 걸로 나왔거든요. 심지어 ‘징비록’에서는 ‘냉정하고 차분한 지략가’였답니다.(웃음) 저는 진짜 엄청난 ‘사이코’를 하고 싶어요. 엄청나게 잔인하고 ‘미친’ 캐릭터가 되고 싶달까요. 아침드라마의 ‘백수’ 캐릭터도 탐나요. 내추럴하고 깐족대고 망가지고. 이런 캐릭터 ‘딱’ 걸리면 안 놔줄 거예요. 좀만 기다려주세요, 저의 ‘망가지는’ 모습을요.(웃음)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