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영화 ‘암살’은 1930년대를 완벽하게 구현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 작품이다. 미츠코시 백화점부터 당시를 나타내는 분위기, 작은 소재까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느낌을 들게 할 정도였다. 흥행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광복 70주년을 맞아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작품을 선사한 데에는 감독과 배우들의 몫도 컸지만, 제작진들의 힘도 대단하다. 특히 시대상을 나타내는 작품이지만, 이질감이 들지 않는 데는 류성희 미술감독의 고심이 녹아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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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은 어렸을 때 알파치노를 좋아하셨던 어머님이 ‘대부’를 보여주러 영화관에 데려가신 일인 것 같다.
엄청나게 잘 만든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이미지들에 그야말로 온전히 무방비상태로 폭격 당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먹을 꽉 쥐고 덜덜 떨며 보았고 영화가 끝나고서는 반쯤 정신이 나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린 소녀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었는지 수도 없이 항의했지만 어머니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라고 하더라.
어머니는 특히 초반의 결혼식 장면을 좋아하셔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는 DVD를 사서 그 장면을 반복해 보곤 하셨다. 전체 이야기의 맥락은 도저히 파악 못한 상태에서 어둡기 짝이 없는 그 영화에 대한 경험은 성인이 되어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 강렬했던 것 같다.
특히나 시각적 부분이 그러했던 것 같은데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마다, 꿈에 ‘대부’의 결혼식 장면이 반복되다가 복수의 의미로 침대에 던져놓은 거대한 말 머리와 피와 고함소리로 마무리되곤 했다.
Q. ‘대부’의 인상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다. 당시를 아직도 떠올리는가
A.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질문으로 남았다. 도대체 저 영화의 무엇이 전혀 영화지식과는 무관한 평범한 주부를 매혹시켰을까 하는 질문이다. 물어보면 어머니도 자세한 줄거리나 복선이나 그런 것은 모르시는 듯 했고, 그냥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이 영화가 우아하다고 하셨고 시각적으로 너무 멋지다고 하셨다. 갱스터 영화를 원래 싫어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무언가를 만들어서 엄마와 같은 불특정다수의 관객들에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나와 엄마가 경험한 그런 영화적 판타지의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일 거라는 생각했다. 결국 나는 대학교 이후의 7년간을 공부했던 오랜 전공들을 뒤로하고 뒤늦게 영화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그 생각을 한다. 온 몸으로 영화를 경험했던 그 시간을 말이다.
Q.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엄청난 자료조사가 필요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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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 3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도 태어나시기 이전의 1930년대의 시대극 미술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도 관객으로 하여금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일정수준의 디테일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참 두렵고도 야심 찬 일이었다.
이 시대에 대한 경험치 없이, 우리의 현재 시스템 안에서 축적된 내용으로 거의 모든 소품들과 공간들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작업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Q. 어떻게 다가갔나
먼저 미술팀 자신들이 신뢰를 가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 몇 달 간에 걸쳐 수없이 많은 사진과 문헌들을 통해 고증자료를 수집했고 도서관과 서점도 가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래도 모자라면 교수님들이나 오랜 연구가들을 찾아뵙기도 했다. 사진들은 선명하지 않을 때가 많고 부분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는 건축으로부터, 작게는 소품에 쓰이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정확해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탐정’이 되기도, ‘유물 복원가’가 되기도, 의심하는 형사가 되기도 한다.
관객들에게는 하나의 전단지이고 하나의 서까래에 불과하지만, 이를 만들어야 하는 미술팀에겐 떨리는 일이기만 했다. 특히 이 ‘암살’은 한글, 한문,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가 뒤섞여있고 모든 양식들도 그러했다. 아마도 디자이너의 자질만을 가졌다면 이런 영화는 어려웠을 것 같다. 계속해서 호기심과 정확성을 유지하며 작업에 몰두했던 젊은 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작은 리서치들이 모여 주유기가 탄생하고, 한옥지붕을 얹힌 가솔린 가게가 탄생하고 그것이 거리를 이루고 마을이 탄생하여 도시의 모습이 윤곽을 갖게 된 것이다.
Q. ‘암살’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느 장면인가.
A. 먼저 백화점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안옥윤(전지현 분)은 만주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며 오로지 조국의 해방만을 꿈꾸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처음 경성의 땅을 밟고 당시 자본주의와 일제 식민지 문화정책의 심장이었던 화려한 미츠코시 백화점(현 명동의 신세계백화점)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옥윤과 당시 전국에서 구경하러 몰려든 조선인들에게는 초현실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저항할 수 없이 압도적으로 절대적인 공간 말이다. 일제가 우리에게 심어준 모던과 자본의 환상, 식민지의 실상을 망각하게 하는 화려한 공간, 강인국(이경영 분)과 같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걸고 얻고 싶은, 또는 자신의 악행을 부정하게 해주는 부와 권력의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거대한 2차 액션신이 이 모든 것 부수면서 여기서 벌어지게 된다. 도저히 깰 수 없는 강적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디자인 할 때 항상 그 곳에서 총을 쏘며 저항한 옥윤과 속사포(조진웅 분)를 상상했다.
일차적으로는 백화점이라는 압도적인 현존이 위용과 영화에 걸 맞는 스케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의 공간으로 보여지길 바랐지만, 또 이 공간에서 처절한 사투들이 진행되면서 옥윤과 속사포의 총구가 겨누는 이곳이 일제가 선사하는 악의 현신, 너무도 달콤한 악의 다른 모습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이곳은 매혹과 욕망의 공간이자 자본과 식민지의 다른 얼굴인 것이다. 이것들을 관객들이 읽어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가 이곳에 있었다면 옥윤처럼 이것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으로 긴긴 밤들에 박차를 가하면서 보낸 것 같다.
고증자료들을 있는 대로 몇 개월에 걸쳐 모았다. 우리가 지은 세트보다 실제 사진 속의 엘리베이터는 더 크고 화려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백화점의 거의 모든 것이 당시에 존재했고 세일도 하고 패션쇼도, 전시회도 열리곤 했다. 고증할수록 놀라왔고 우리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도록 디자인을 보완했다. 미술팀 모두들 바닥난 체력의 마지막 1%까지 쓰고 촬영 날부터 유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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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가게라는 설정도 당시에는 부의 상징이었다. 큰 예산이라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가솔린가게와 백화점이라는 부의 상징인 공간들을 1차 저격의 공간으로 탁월한 콘셉트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곳은 당시 서민들이 상권을 이루면서 북적북적 모여있던 정서적인 공간으로 비춰지길 바랐다. 시장이 있고 뒷골목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약국도, 세탁소도, 짚신과 고무신과 양 구두가 같이 존재하고, 멋쟁이 양식모자와 갓을 고쳐주는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한국, 일본, 중국, 서구양식들이 뒤섞여서 나름 조화롭게 어우러진 서민들의 공간 말이다.
아기자기한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간판, 전단, 광고들 하나하나 수 백가지 그래픽 디자인이 필요한 대규모의 공간이었다. 미술팀은 세트면 세트, 그래픽이면 그래픽 모두를 일정수준으로 다룰 줄 아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
세트장을 방문한 많은 객들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이런 골목골목, 거리들이 여지껏 남아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거라 얘기해줄 때 뿌듯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로케이션과 세트를 결합해 완성한 강인국의 집이나 상해의 로케이션세트와 임시정부도 많이 공들어 데코를 했고, 걸맞는 실내세트를 튀는 부분 없이 연결시킨 점, 미라보 여관과 경성 아네모네 카페도 공을 많이 들였으니 관객들이 즐겁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최동훈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A.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지만 소통방법을 파악하고 나서는 즐거웠다. 열정적이고 정말 영화를 너무도 사랑하는 소년 같은 분이셨다. 매일매일 새로운 스토리의 영화를 말해줄 수 있는 분이다. 아직도 아이디어와 하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더라. 관객들은 당분간 그의 영화에 대한 구상이 마르는걸 보긴 어려울 것이다. 아직도 진행형인 중견 감독이라니, 한 사람의 영화인으로서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Q. 미술감독을 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인가
A. 긴 시간 고민하고 공들여 만든 세트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첫 발을 디디는 순간이다.
촬영팀이 들어오고, 조명팀이 세트장 안에 들어와 빛을 만들고, 의상과 분장을 마치고, 극 중 인물이 된 배우가 첫발을 디디는 그 순간 말이다. 드디어 몇 개월의 준비기간 동안 그려왔던 그 그림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멋지게 완성해 냈을 때 배우들은 느낀다. 그리고 영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그 세계에 몰입하는 걸 돕는다. 근사한 씬이 완성되면 그 순간이 온다.
덕담을 나누고 우리들이 고생한 것이 헛되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이 공기들이 결국 관객들에게 전달된다고 믿는다. 영화는 팀 작업이기 때문에, 내 맘 같지않아 힘들고, 그것 때문에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두 번째로는 영화가 개봉한 뒤에 의도들을 알아주는 영화 관객들의 감상과 의견들을 엿보게 될 때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소통의 노력이 헛된 것 같지않아 그야말로 더없이 뿌듯하다.
Q. 감독님이 본 영화 중 미술적으로 사랑하는 영화가 있다면 어떤 작품인가
A. 학창시절 우상과 같은 영화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 그리고 ‘대부1.2’이다.
또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이나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같은 영화에 열광했다. 미술감독이 되고 나서는 데이비드 핀쳐의 ‘세븐’ ‘파이트 클럽’과 같은 영화. 가장 최근에 미술이 가장 좋았던 영화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와 ‘언더 더 스킨’이다.
Q. 앞으로 미술에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A. 기회를 준다면 앞으로 하고 싶은 영화는 아직도 참 많다. 관객들이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 ‘카사블랑카’와 같은 멜로 영화도 하고 싶고, 스타일리시한 스파이영화, 그리고 언젠가 맞닥뜨릴 SF영화나 판타지영화를 위해 열심히 숙련 중이다. 할리우드와는 다른 한국관객 들이 좋아할 수 있는 판타지와 SF영화라니 가슴 떨리는 일이다.
최준용 기자, 손진아 기자, 김진선 기자, 최윤나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