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가 뭐라고.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고 이곳을 찾아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극성스럽다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저에 대한 사랑이 하늘을 찌른다고 생각하니…두렵습니다.(웃음) 그 마음 확 바뀔까봐." '솔로예찬'·'깊은 밤을 날아서'로 신 나게 숲속음악회 문을 연 이문세는 이처럼 말했다.
차분한 말투였지만 폭소가 터져나왔다. 허브나라농원 별빛무대를 가득 메운 600여 명의 관객은 이문세 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흙바닥에 주저앉은 이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오직 그가 보였다. 그의 목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쥐락펴락했을 뿐이다. 공연은 들뜬 분위기 속 시작됐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자연이 주는 평온한 정취에 사람들은 흠뻑 취해 갔다.
"저나 무대를 보지 마시고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세요. 그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들으세요. 힘들고 지쳤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있잖아요." 이즈음에서 고백한다. 이날 '함께가요'는 이문세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가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한 탓도 있으나 사실 별 필요가 없었다. 멀찌감치서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또한 이문세의 노래는 이미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계절은 잘도 흐른다/ 꽃들이 피고 지는 게/ 우리의 모습이었어/ 영원하길 바랐지만/ 그런 건 없었지/ (중략) / 지루하고 똑같은 하루가/ 가끔은 눈물 나게 고마워/ 나의 인생은 이런 건가/ 하늘은 높기만 하네/ 꽃들이 피고 지는 게/ 우리의 모습이었어/ 영원하길 바랐지만/ 그런 건 없었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이문세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모르겠다. (내 노래에) 빠진 건지, 주무시는 건지…"라고 너스레를 떨어 정적을 깼다. 그제서야 눈을 뜨니, 쏟아져내린 별빛 사이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어깨를 기댄 이들이 보였다.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시골에 내려오니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찌들었던 생활과 마음가짐 탓이었다. 도시에서는 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시골에 와서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임을. 내 존재는 우리의 관계가 있기에 더 가치 있는 것이다."(이호순 허브나라농원 원장)
이문세와 이 원장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노영심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허브나라농원은 이문세가 휴식차 자주 가는 곳이다. 지난해 재발한 갑상선암 수술 후 그가 약 한 달 간 머문 곳도 여기다. 허브나라농원 내 별빛무대라는 이름도 그가 직접 붙였다. 이 원장은 이문세를 두고 "소탈하고 한결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오면 산책하고 자전거 타고 등산하는 게 전부예요. 꼭 술잔을 기울일 필요도 없죠. 서로 사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하다 보니 가족이 됐습니다."
"암이 전이된 부위가 거의 성대하고 붙어있다더라. 아무리 훌륭한 의료진이어도 암 조직을 긁어내면서 성대를 건드리면 목에서 소리가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해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성대 쪽 암을 제외하고 다른 부위만 제거됐다. 엄격히 말하면 암 세포가 아직 남아 있다. 나는 음악하는 사람이다. 생명도 중요하지만 내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1분이라도 더 하고 싶다." (2015년 3월 30일 방송된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뒤풀이 자리에서 (알리·로이킴·이은결을 비롯해 대부분 재능 기부로 동참한) 스태프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고마움을 표한 이문세는 기자에게 공연 소감을 물었다. '경제지에서 왔으니 경제적 관점에서 표현해 달라'고 그는 농담처럼 바랐다. 질문을 하면 했지, 별로 받아본 적 없는 기자는 당황해 "대박"이라고 답했다. 뒤돌아 생각하니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이문세의 숲속음악회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공연이었음에 틀림 없다.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돈보다 더 귀한게 있는 걸 알게 될거야/ 사랑놀인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거야/ 그대가 마음먹은대로/ 이세상 살아가다 보면/ 슬픔보단 기쁨이 많은걸 알게 될거야/ 인생이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중요해/ (중략) / 자기가 맡은 일들을/ 우리가 맡은 책임을/ 그대가 해야할 일을/ 사랑해요/ 어둔 밤하늘 날으는 밤 구름 아침이 되면 /다시 하얗게 빛나지 / 새로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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