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남루한 여성 노숙자 보고 떠올렸죠”
“권소현, 내 시나리오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다니까요”
“신수원 감독, 처음에는 사기꾼인 줄 알았죠”
“사람의 욕심이 끝없으니 사실 칸영화제 수상 기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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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권소현(28)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영화 ‘마돈나’가 공식 초청된 올해 칸국제영화제 공식상영회 자리에서다. 그간의 고생과 감격의 눈물이었으리라. 권소현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신수원(48) 감독도 약간 놀랐단다. 권소현은 “영화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고 했다.
칸 주목해야 할 시선 부문에 올랐던 작품의 신예 여배우와 신 감독. 이미 지하철을 타고 온종일 돌아다니는 실직한 중년 남성을 소재로 한 ‘순환선’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까날플러스 상을 받았고, 입시 지옥에 갇힌 학생 이야기를 담은 ‘명왕성’으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스크린에 담아내 울림을 준 신 감독과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한 배우 권소현을 최근 만났다.
“꼭 사회성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흔히 말하는 루저들이 제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백수, 루저로서 오랫동안 살았던 트라우마의 기억도 있고요. 그러다 카페에서 우연히 한 노숙자를 만났죠”
신 감독은 20대 초반의 남루한 여성 노숙자를 보고 이번 영화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 여자의 사연이 궁금했고, 상상했다.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상상을 통해 시나리오를 쓰느라 힘들었으나 그 노숙자의 가상의 삶은 고스란히 영화에 녹았다.
VIP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해림(서영희)이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환자 미나(권소현)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겪는 일들을 담고 있는 영화는 실제 주위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 같다는 분위기를 전한다. 해림을 주인공으로 미나의 과거가 알려진다. 순수하고 순진했던 미나는 매번 이용당하고 버림받았다.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몇몇 회사에서, 또 사창가까지 흘러와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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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그 느낌이 퇴폐적이면서도 슬픔을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살집도 약간 있었고요. 일단 반은 마음에 들었죠. 민낯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만나자마자 딱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시나리오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다니까요.(웃음)”
하지만 권소현은 처음에 의심했다. “제가 영화 경험이 없어 잘 모르는데 PD님이라는 분에게 전화가 왔어요. 오늘 당장 만나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만나긴 했는데 사실 ‘이 사람들 사기꾼 아닌가?’라고 생각했죠.(웃음)”
‘마돈나’를 위해 권소현은 살을 찌워야 했고, 수위 높은 겁탈신도 있었다. 그는 “원래 날씬했던 것도 아니고 예뻐 보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서 살을 찌워야 하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격한 노출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던 건 맞다”고 했다.
권소현을 놓칠세라 신 감독은 “불필요한 신은 안 찍겠다”고 설득했고, 결과물은 적정선을 유지했다. 신 감독은 “‘이런 주연급의 신인배우는 거의 없다. 모두가 탐낼 만하다. 이다음에 배우로서 여러 가지 작품을 할 수 있다’는 말로 꼬셨다”고 회상했다. 결과적으로 권소현을 주목하게 했으니 정확한 설득이지 않을까.
20분 단편영화 외에 경험이 없는 신인에게 신 감독도 열정을 퍼부었다. 부러 주말에 불러 연습하고 연습했다. 두 사람의 호흡은 점점 좋아졌다. 또다른 주연인 배우 서영희가 부러워할 정도였다. 권소현은 “언니가 진짜 그랬대요?”라며 좋아했고, 신 감독은 “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리허설 했으면 힘들었을 텐데”라고 웃어넘겼다.
권소현은 칸은 처음이지만 신 감독에게는 벌써 2번째다. 신 감독은 전작으로 수상의 영예까지 안았지만, 권소현은 경험이 없다. 은근 기대했을 것도 같다.
“전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봤어요. 일반 관객들이 동양에서 온 저를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해서 신기했죠. 수상요? 관객들이 좋게 본다고 하고 평도 좋다는 소문이 나니까 사실 시상식 갈 준비를 했어요. 칸에 온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잖아요. 잘 안 되긴 했지만요. 하하하.”(권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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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미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미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사악한 거죠. 자기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이도 있지만 기대면 이용하려고 드는 사람도 있거든요. 어쩌면 그건 인간이 가진 탐욕성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해요. 또 우리나라는 여자들을 너무 소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위에 상처 주는 것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고, 원래 제목이 ‘VIP병동’이었는데 ‘마돈나’로 바꾸게 된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마지막 신을 통해서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어요.”(신수원)
교사 출신인 신 감독은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전업한 케이스다. 권소현도 어렸을 때부터 한국무용을 배웠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연기를 했다. 알고 보니 서영희 역시 미술을 공부하다 배우가 됐다. 연출과 연기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돌고 돌아 ‘마돈나’를 풍성하게 만든 셈이다.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고 하니 신 감독은 “아이템은 꽤 있지만, 시나리오로 구체화하는 데 적어도 1년은 걸린다”며 “굳이 사회문제만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옆에 앉은 권소현에게는 감독님을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