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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월드컵 기간. 그 ‘대~한민국’ 소리와 박수가 싫었다. 시위 현장에서 입은 기동복을 벗고 정복으로 갈아입고 경비 근무 지원을 나갔던 때다. 의경 졸병 나부랭이라 “고개라도 까딱하면 죽여버릴 테니 정면만 주시하라”는 으름장에 관중석만 바라봤다.
경기도 보지 못하는데 그 함성은 어찌나 컸던지 귓속을 계속 울려댔다. 부대 복귀 후, 각 잡고 또 앞만 보며 오늘은 어떤 꼬투리가 잡힐까 걱정하던 찰나 제2연평해전 발발 뉴스를 봤다. 아니, 고참이 걸그룹(혹은 아마도 채연의 ‘흔들려’ 뮤직비디오)을 보기 위해 채널을 바꾸다가 스쳐 지나간 뉴스를 얼핏 들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나라를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다니, 말이 되는 일인가. 사실 그때는 ‘나부터 살고 보자’라는 생각뿐이어서 더 찾아보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허락되지도 않았다. 나중에서야 사건에 대해 알고 분노가 치밀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연평해전’에 출연한 해군 국방부 헌병대 출신 배우 진구조차 “전역 1주일 뒤 발발한 사건”인데도 “월드컵 중계 화면 밑 속보조차 무시했을 정도였다”고 했으니 당사자와 가족이 아니고서야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2009년 1월. 신입 기자 시절,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현장에 투입됐다. 사망한 경찰의 아버지를 인터뷰해오라는 지시를 받았건만, 절망에 빠져있는 주름진 얼굴의 아저씨에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기를 내고 다가가 말을 걸었으나 돌아오는 건 뺨을 향해 날아올라 허공을 가르던 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정의 실현의 사명을 느낀다며 펜을 들었지만, 사실 판단은 서지 않았다. 누구는 경찰 편을 든다고 욕하고 쓴소리를 했다. 경찰 가족 기사를 쓴 것 자체가 잘못이란다. 일반인 5명이 사망했는데 공권력 하나 죽은 건 아무것도 아닌 듯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건 쉽게,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용산참사 현장과 병원을 매번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삶이 싫었지만, 숙명이었다.
두 조각의 개인적인 과거를 떠올리게 한 건 제2연평해전과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영화 ‘연평해전’과 ‘소수의견’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개봉했기 때문이다. 편향적이라거나 정치적이라는 등 안 좋은 시선이 꽤 많지만 나라를 지키다 희생당한 이들을 떠올리게 하고, 개발 지역의 문제가 어땠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 숫자는 생각만큼 많진 않겠지만 그래도 과거를 찾아보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그 자체만으로 성공적이다.
‘연평해전’과 ‘소수의견’ 모두 만듦새가 조악하다고 할 수 없다. ‘변호인’과 ‘명량’보다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뒤지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고 ‘볼 만하다’, ‘꼭 봐야 한다’고 판단하고 입소문을 내는 건 관객의 몫이다. 기자와 평론가는 하나의 생각의 길을 열어줄 뿐이다.
일반 상영관에서 뒤늦게 ‘연평해전’을 봤다. 눈물을 흘리는 관객을 꽤 많이 목격했다. 울컥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았다.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시간이 꽤 지났어도 사실 내 생각의 크기는 아직 그리 커지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부
정치판은 하루가 멀다하고 난리다. 사회면도 안타까운 뉴스들이 계속된다. 연예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기자들이 할 일이 있는 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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