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1998년 방송됐던 MBC 드라마 ‘해바라기’에 출연했던 신인시절의 배우 김정은의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극의 배경이 되는 병원에서 정신병원 환자 역을 소화한 김정은은 코믹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했을 뿐 아니라,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삭발투혼까지 감행했던 것이다.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김정은은 ‘해바라기’를 통해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상대배역이었던 차태현과 함께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김정은을 향한 인기와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해바라기’의 주연이었던 안재욱과 김희선을 잡아먹을 정도였으며, 후에 김정은과 차태현을 앞세운 광고들이 줄지어 등장하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광고는 바로 “묻지마 다쳐”라는 유행어를 낳게 한 한 이동업체 통신광고였다.
“재능이나 끼도 중요하지만 노력이 반은 차지하는 것 같아요. 연극영화과 출신 동기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남모르게 열심히 했거든요”(1999년 9월 경향신문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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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스타 |
‘해바라기’로 배우로서의 이름을 알린 김정은은 이후 드라마 뿐 아니라, CF, 시트콤, 예능 토크쇼, 영화 등 영역을 넓히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다. 이후 김정은은 ‘재밌는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하게 된다. 몸을 사라지 않는 연기로 코믹을 넘어 ‘망가졌다’는 평을 얻었던 김정은은 곧이어 영화 ‘가문의 영광‘으로 또 한 번 코믹연기에 도전하게 된다.
‘해바라기’가 김정은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라면 영화 ‘가문의 영광’은 영화배우로서 김정은의 역량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려주게 한 작품이자, 그가 단순히 코믹연기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시켜 준 작품이기도 했다. 김정은이 ‘재밌는 영화’에서처럼 크게 망가지지 않으면서도 웃기고, 충분히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경력을 쌓아간 김정은은 2004년 대표작을 만나게 된다. 바로 SBS에서 2004년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게 해준 ‘파리의 여인’이 그 주인공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파리의 연인’의 연기 방향에 대해 “어떻게 하면 신데렐라 역을 구태의연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제가 다른 여배우들보다는 웃기니까 뛰어다니고 사고치고 다니면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었다. 김정은의 말처럼 ‘파리의 연인’ 속 강태영(김저은 분)은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평범하면서도 톡톡 튀는 발랄함으로 신선한 즐거움을 불어 넣어 주었다. 털털한 김정은의 연기에 뭇 여성시청자들은 본인이 마치 강태영이 된 것처럼 몰입했고, 그는 21세기 신(新)신데렐라로 떠오르게 된다.
“코믹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어차피 처음부터 주연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다양한 역할을 맡다보면 제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2002년 4월, 연합뉴스와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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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했던 김정은이 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어떤 역할을 하던 매 순간을 몰입해서 연기를 펼쳐왔던 김정은은 어느새 정상에 선 배우가 된 것이다. 1996년 MBC 2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안정된 연기력으로 사랑을 받으며 ‘톱스타’의 자리까지 오른 김정은이지만, 그 곳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은 많았다.
‘해바라기’로 신인상을 수상하고, 각종 CF를 휩쓸었던 2000년대 초반 마약 엑스터시를 복용했다는 혐의에 휘말리면서 고초를 치른 바 있다. 물론 마약 복용 논란에서는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타나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으나, 각종 CF 및 영화개봉을 앞둔 배우에게 있어 연예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파급력을 가진 스캔들이었다.
두 번째 위기는 드라마 ‘루루공주’를 찍을 때 벌어졌다. 당시 시청률 1위에 올랐던 ‘루루공주’였지만 지나친 PPL과 산으로 가는 스토리, 캐디 비하 논란 및 쪽대본 문제 등 한국드라마의 병폐로 꼽혔던 사례들이 총집합된 드라마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병폐에 김정은은 자신의 펜카페에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를 이해할 수 없어 더 이상 촬영을 진행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고, 이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정은의 글로 인해 방송사와 제작사는 발칵 뒤집어졌고, 끈질긴 설득 작업 결국 김정은은 “주연배우로서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며 밝힌 의사를 번복함으로써 겨우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이후 김정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른 살 여주인공의 일상을 연기하면서 영화 속에 내 실제의 모습이 두려울 만큼 많이 드러났다. 더 이상은 대충 하고 타협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었다.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논란은 출연을 확정했던 SBS 드라마 ‘내 마음 반짝반짝’의 출연을 번복했던 일이었다. 2012년 방영된 드라마 ‘울라라 부부’ 이후 3년 만의 드라마 복귀로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배역을 놓고 벌어진 입장 차이를 줄이지 못하고 상대배역이었던 김수로와 함게 출연을 취소한 것이다. 이에 ‘내 마음 반짝반짝’ 측은 김정은과 김수로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내 마음 반짝반짝’ 출연 번복 논란은 제작사 측에서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정말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여자를 울려’ 제작발표회에서 ‘내 마음 반짝반짝’ 출연 번복 질문을 받고 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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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반짝반짝’을 고사하고 출연을 확정한 작품은 바로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였다. 한 차례 굴곡을 겪고 선택한 ‘여자를 울려’의 출연을 확정한 김정은은 그동안의 공백기를 잊게 하는 연기와 기백으로 또 한번의 안방극장 점령을 예고하고 있다.
‘여자를 울려’에서 김정은이 맡은 역할은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후 학교 앞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아줌마 덕인이다. 극중 덕인(김정은 분)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학교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결하는 인물이다.
‘여자를 울려’에 앞서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액션스쿨과 요리 수업을 병행해왔으며, 직접 관할 파출소를 찾아가는 열의를 보였던 김정은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드라마 속 김정은의 화려한 액션연기는 드라마 속 볼거리 중 하나가 됐다. 홍길동처럼 나타나 학교 폭력 가해자들을 타이르며 따끔하게 혼내는 모습이나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때려눕히는 장면, 소매치기를 단숨에 잡아 팔을 비트는 모습 등 악을 저지하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것이다.
덕인이 단순한 홍길동이었다면 ‘여자를 울려’는 그저 그런 뻔한 드라마로 남았을 것이다. 김정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편의 불륜을 알고 난 후 덕인의 상실감을 더욱 깊어진 감정연기로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기에 고등학교 교사인 진우(송창의 분)와의 설레는 러브라인까지 예고하면서 극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
1996년 데뷔해 ‘20년차 배우’라는 타이틀을 앞두고 있는 김정은은 여전히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며 쉬지 않고 달려 나가고 있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위해서라면 어떤 망가짐도 두려워하지 않는 김정은, 앞으로 20년 이후 그녀가 보여줄 연기 인생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