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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능력이 뛰어난 저명한 언어학 교수 앨리스(줄리안 무어). 어느 날 강의하다가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조깅을 하다가 어디를 뛰어가고 있는지 몰라 길을 잃는다.
똑똑했던 여자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잊어버리고, 잃어간다. 기억의 한 공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는 경험. 50세의 젊은 나이에 찾아온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앨리스는 “왜 나에게?”라며 두려움과 공포에 떤다. 뛰어난 지적 능력은 오히려 기억의 퇴행을 빠르게 만들어버린다.
지위나 학력이 어떻든 고통에 몸부림치는 게 일반적이다. 현실을 부정한다.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들은 앨리스와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스틸 앨리스’의 소재는 알츠하이머, 치매다.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뤄진 소재이기에 별다를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주변의 슬픔을 신파로 쏟아내는 것보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시킨다. 현실을 받아 들이고 이겨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영화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애써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 점이 좋다.
압도적인 줄리안 무어의 연기에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있을 게다.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프린트해 간 종이에 한 줄 한 줄 형광펜을 그어가며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특히 울컥하게 한다. “우스꽝스러운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병”이라는 연설은 자신뿐 아니라 청중과 관객까지도 다독인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앨리스가 “지금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거야”라고 하는 말 속에 나타난 결연한 의지도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줄리안 무어는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앨리스를 표현했다.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따낸 이유를 알 수 있다. 배우 지망생인 막내딸 리디아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달리 보이게 만든다.
막내딸과 엄마의 대화도 기억에 남을 만하다. 영화는 기억 상실이라는
고(故) 리처드 글랫저 감독이 앨리스와 맞닿아 있어 감동은 두 배다.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공동 연출한 글랫저 감독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나서도 현장을 찾아 자신의 나아갈 길이 무언인지 열정을 보였다. 101분. 12세 관람가. 29일 개봉.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