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공들여 쌓아놓았던 줄거리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월화드라마 1위로 나름 선전한 MBC 월화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였지만 정작 마지막은 지나치게 허술하고 기운 빠지도록 허무했다.
7일 방송된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고려의 저주받은 왕자 왕소(장혁 분)와 발해의 버림받은 공주 신율(오연서 분)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가 된 후, 서로의 장래를 위해 각자의 길에 나서는 모습을 그렸다.
왕소는 왕권을 위협하는 호족세력의 수장 왕식렴과의 최후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황제 정종(류승수 분)에게 선위를 받으며 고려의 황제가 된다. 신율은 서역으로 왕소는 왕위에 오르면서 이들은 만나지 못하다가 광종 16년 만나게 된다. 실제 역사적으로 광종이 즉위 16년에 사망한 만큼 이들은 죽어서 다시 만나 비로소 사랑을 이룬 셈이다.
마지막회가 방송된 직후 온라인 게시판은 뜨겁게 들끓었다. 이 같은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마지막은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했으니 해피엔딩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또 비극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밝았던 것이다. 여기에 열린 결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확하게 규정된 결말도 아닌데다, 공감도 없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빨리 감기를 한 듯 갑작스럽게 결말이 이뤄지다보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당황하고 어이없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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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청자는 “역대급 최악엔딩 의미도 멋도 없음.” “내가 이 엔딩을 보려고 이제껏 봐 온 건가. 12회까지는 로맨틱코미디 사극으로 재밌었는데 갈수록 재미도 없고 전개도 엉성하다. 중간에 작가가 바뀐 거냐.” “이쯤 되니 배우가 불쌍해진다.” 등으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하룻밤 보내고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고려시대에도 원나잇 스캔들이 있었던 거냐”라며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정통사극에서 빗겨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이 가미된 팩션사극이다. 동명의 소설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로맨스가 주가 되는 사극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연출을 맡은 손형석 PD는 “극 초반에 밝고 가벼운 로맨스로 웃음을 준 뒤, 시간이 지날수록 각 인물들의 성장과 함께 한층 묵직해지는 사랑이야기와 멜로가 돼 가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손 PD의 말처럼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가벼운 로맨스를 그리던 사극이었다. 하지만 중반부터 태조 왕건(남경읍 분)을 시해한 증거물인 청동 거울 찾기에 힘을 과하게 실으면서 극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맨틱코미디도 정통사극도, 그렇다고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던 음모나 비밀을 파헤치는 수사물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촘촘하지 못한 극의 줄거리와 헐거운 전개는 극의 몰입도와 긴장감을 흩트려 놓기까지 했다.
도대체 왜 청동거울 조각을 찾았을까 싶을 정도로, 왕식렴을 위협할 최후의 무기로 거론되는 듯 했던 청동거울의 위력은 미미했으며, 이는 힘들게 청동거울을 모으던 과정을 지켜봐왔던 이들을 허탈하게 했다.
뒷심을 잃어가던 전개는 마지막회에서 정점을 찍었다. 아무리 상대의 행복을 위한다고 하지만 단순히 하룻밤만 보내고 서로를 떠나보낸다는 것을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으며, 그동안 악의 축을 담당했던 왕식렴의 최후는 너무나 쉬웠다. 훈련된 정예부대를 이끌고 갔던 왕식렴이지만, 군사들은 무기도 없는 왕소의 말에 너무나도 금방 넘어왔고, 그마나 있던 이들은 왕소 쪽 사람들의 주먹에 맞아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왕식렴과의 마지막 전투는 동내 아이들이 싸우는 것처럼 조악하기까지 했다.
결말은 아쉬웠지만 못했지만,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는 빛이 났다. 작품 초반 주연배우 장혁과 오연서가 각각의 전작인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왔다 장보리’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운명처럼 널 장보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점차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갔다. 장혁이 표현하는 왕소는 매력적이었으며, 오연서는 통통 튀는 매력으로 지혜로운 신율을 그려나갔다.
이하늬는 ‘이하늬의 재발견’이라고 부를 정도로 ‘독을 품은 꽃’인 황보여원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왕소와 신율이 극의 분위기를 띄운다면 매사에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격의 황보여원은 극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처음 도전하는 사극드라마임에도 이하늬는 안정된 발음과 절제된 감정연기, 시선처리 등을 보여주며 배우로서 한층 성장했음을 증명했다.
전작 드라마 ‘못난이 주의보’에서 선한 매력을 보여주었던 임주환은 내면에 욕망이 넘치는 왕욱으로 분해 색다른 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을 백분 살리면서도 내면에 있는 남성미와 야망을 드러내며 뭇 여심을 흔들기도 했다.
주연배우 뿐 아니라 악역으로 극의 긴장감을 좌지우지한 이덕화에서부터 유약한 왕이었던 정종 역의 류승수 등 다양한 배우들이 출중한 연기력을 자랑하면서 자칫 지루할 뻔했던 극에 활기를 넣었다.
전개는 아쉽지만 배우들은 남은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절반의 성공만을 남긴 채 극을 마무리 했다.
한편 ‘빛나거나 미치거나’ 후속으로 고귀한 신분인 공주로 태어났으나 권력 투쟁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살아간 정명공주의 삶을 다룬 드라마 ‘화정’이 방송된다. 오는 13일 첫 방송.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