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학과가 없어진다거나, 다른 학과와 통합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고 싶다. 해당 질문이 매우 쌩뚱 맞다거나 1%의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이겠지만, 현재 건국대학교(이하 ‘건국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특정 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재학생들만의 문제로 여겨지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통합을 알린 학과는 ‘영화학과’와 ‘영상학과’. 각기 다른 비전을 지닌 두 학과의 통합이 아닌, 넓게 보면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위협하고 정체성을 흔드는 문제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하루 빨리 최선의 해결책이 나와야만 한다.
문제의 시작은 3월22일 건국대가 학생들에게 통보한 학사개편 때문이다. 학사구조개편안에는 2016년부터 기존 15개 단과대학 73개 학과 체제에서 10개 학과를 통폐합하고, 63대 학과에서 신입생을 선발한다. 다소 일방적인 통보에 학생들은 학교 측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건 거듭되는 거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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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고경표 인스타그램 |
이 가운데 배우 고경표와 신주환, 걸그룹 나인뮤지스 전 멤버 은지 등은 ‘필름이 끊기지 않는 한, 우리는 무직이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영화학과와 영상학과의 통폐합을 반대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에 건국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영화학과는 ‘학과제 대형화’를 위해 2016학년도부터 영상학과와 통합해 영화·영상학과(가칭)로 학과명을 바꾸지만 기존과 동일하게 연기, 연출, 영상 등 트랙별로 커리큘럼을 운영하게 된다. 영화(연기, 연출) 분야 전임교수 추가 충원이 이뤄지며, 보다 확충된 커리큘럼과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예정”이라며 “이번 학사구조개편을 통해 다양한 학문을 중점 육성하고 전문성과 창의성을 겸비한 융합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고 영화학과와 영상학과가 통합 운영되는 것이지 폐지는 아니라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비대위는 건국대의 입장에 반박했다. 비대위는 “학과가 통합될 경우 정원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며 이는 단체 프로제트 실습이 많은 영화학과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학교 운영방침이다. 영화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들어 가야하는 종합예술의 영역인데, 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통합운영은 사실상 영화학과 폐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어 “학교의 이번 결정은 빈곤한 교육 철학과 원칙 없는 학교 운영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게다가 학과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도 15학번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를 통합하여 축소 운영하는 건 우리에게 영화에 대한 꿈을 꾸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번 사태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학교 행정과 운영 및 철학을 둘러싼 문제들에서 출발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이건 영화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국대 모든 전공과 학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비대위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반한 비민주적 학사행정에 대해 신속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 이번 통폐합을 불러온 학사 개편 과정에 대한 설명회와 이런 기준이 교육적이고 합리적인지 토론할 수 있는 학생 토론회 개최, 학교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여 학내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민주적 공론기구를 조속히 설치해 논의의 장을 개설 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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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고경표 인스타그램 |
6개 대학 64개 학과에서도 건국대 영화과 통합 반대를 지지하고 학교의 일방적인 학사개편을 규탄하는 공식 성명 보내오기도 했다. 김조광수 감독, 김태우, 서범석, 이주승, 동현배, 김학래, 박성광, 홍인규 등도 영화 예술을 지켜달라며 건국대 영화과 통합 반대 지지를 해줬다.
이외에도 비대위는 건국대 교무처에서 통보한 ‘2016학년도 학사개편 결과 및 학과 평가제 시행안 안내’ 내용 속 학사요람 및 교육부 자료 등을 언급하며 “건국대 영화과는 통합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시종일관 목소리를 높였다.
3월31일, 건국대 총학 및 통폐합대상 6개 학과에서 부총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 면담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지금도 학생들은 총장에게 면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여전히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점거는 오후 6시까지 진행됐고, 4월2일 대규모 집회도 계획했다.
4월1일,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MBN스타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의 보이콧은 3월31일까지 진행됐다. 학교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하자는 의견에 재학생의 10%가 의사를 보여야만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학생총회가 열리는 것이다. 우선 2일 열리는 총장과의 면담 속 내용에 따라 학생들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2일 10시, 학생대표4명과 총장의 면담이 열리는데, 오직 4명의 학생만 참여할 수 있다. 이는 학교에서 제한한 것이다. 즉, 이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해오고 이끌어온 영화과 비대위는 면담에 참여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학생총회는 휴학생을 포함한 재학생이 1600명 모여야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건국대 측 역시 MBN스타에 “소규모 세부전공을 통합해 모집단위를 대형화하고 학과별로 보다 확대된 학생 인원수를 보장함으로서 학과운영의 자생력을 높여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내고자 함이다. 학사구조개편은 과거 몇 년간 지속적으로 논의가 이어져 왔고, 2016학년도 개편안에 대해서 지난해 3월부터 대학본부가 사전 자료 조사를 거친 후, 단과대학장을 포함한 학문단위 교수들과 논의와 협의 과정을 진행하여 왔다”며 “대학본부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여러 요소를 고려했고 단과대학과 각 학문단위 교수들과의 협의 과정을 거쳐 이번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번 구조개편은 전임교수 부족 등으로 그동안 어려움을 겪은 영화과를 살리기 위한 구조개편”이라고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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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비상대책 홈페이지 캡처 |
2일 비대위에 따르면, 건국대 총학 및 통폐합대상 6개 학과 등을 포함한 건국대 학생들은 1일 오전 9시, 부총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학교 측으로부터 또 거부당하고, 대화의 시간을 이어갔지만 학교 측은 원안을 고수하려는 입장이다.
학생들 모두 “과연 누구를 위한 개편인가, 취업 잘되는 학과만 남으면 과연 그게 대학인가”라 주장하며, 건국대의 일방적 학사개편을 반대하고 학칙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날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건국대 노천극장에 재학생 1600명이 모여야만 진행할 수 있었던 학생총회가, 2300명을 넘어 진행됐다”며 “행정관으로 항의방문한다”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전해왔다.
비대위와 건국대 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도 건국대 영화과 학생들은 자신의 학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건 학교 측의 속 시원한 대답이며 이보다 더 중요하건 자신의 꿈을 이룰 공간을 지키는 것이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