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데는 배우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이 필수다. 거기다 실제보다 더 생생한 배경을 담아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연쇄살인마 강천(박성웅 분)을 다룬 영화 ‘살인의뢰’는 그런 면에서 특화됐다.
감정 없이 재미로 살인을 저지르는 조강천은 피로 물든 봉고차를 몰고 다니고, 아내가 살해당해 복수심에 사로잡힌 승현(김성균 분)은 먼지가 가득한 방에 갇혀 지내며,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죽음에 피폐한 삶을 보내는 태수(김상경 분)는 지독하리만치 조용한 방에서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룬다. 이처럼 공간이라는 것은 한 인물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 속 인물, 사건을 공간으로 드러내는 김희진 미술감독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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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확히 미술감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 부탁드린다.
A. “시나리오에서 표현된 장면을 시각화 하는 일을 해요. 영화감독과 회의를 거친 후 작품의 콘셉트에 맞는 배경을 만들죠. 시나리오를 봤을 때 디자인이 바로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배경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자료 조사를 정말 많이 해요. 인터넷 등을 통해서 미리 염두에 둔 콘셉트에 딱 맞는 이미지를 찾을 때까지 최대한 많은 이미지를 찾아요. 이후에 다시 한 번 논의를 거친 후 감독님과 의견을 조율해가죠”
Q. 이번 작품에 참여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A. “힘들었던 점은 딱 하나 있었어요. 극중 박성웅이 몸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혈투를 벌여요. 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목욕탕 세트에 특별히 신경 써야 했어요. 보통의 목욕탕 바닥은 물기 때문에 타일로 바닥을 만들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배우가 알몸으로 액션신을 촬영했기 때문에 안전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바닥에 긁히거나 부딪혔을 때 다치면 안 되니 말랑말랑한 재질로 만들어야 했어요. 처음엔 타일을 안전 소품으로 제작할까 했어요. 그런데 그건 비용 때문에 되지 않았고, 다른 재질을 찾아야 했어요. 이후에 발견한 소재가 놀이터 바닥에 까는 탄성매트 소재였어요. 목욕탕 바닥은 까다롭게 만들어졌어요. 합판을 깔고, 그 위에 새롭게 찾은 매트를 덮고, 시멘트로 마감하고, 컬러링 작업을 거친 후 방수작업까지 해야 했어요. 모두 작업하는 데까지는 일주일 정도가 소요됐어요”
Q. 승현의 집이 3년을 기준으로 많이 변화한다.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A. “‘살인의뢰’ 속 사건이 3년 전 후로 많은 변화를 거쳐요. 3년 전만해도 승현은 아내 수경(윤승아 분)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집을 개조해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즐겼어요. 그래서 리얼리티 있는 공간으로 제작하는 게 좋겠다 싶었죠. 오래된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격자로 된 파티션을 세우고, 베란다 구역을 따로 마련했어요. 베란다 부분에는 수경만의 아기자기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신혼을 표현하려 했죠. 수경이 살해당하고 난 이후부터는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해요. 승현의 감정처럼 어두운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했어요. 재봉틀, 실, 원단이 있던 수경의 공간이 사라지고, 그 위치에 승현의 긴 책상이 자리하게 되죠. 수경의 공간에서 승현이 복수를 준비한다는 게 콘셉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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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쇄살인마 강천하면 낡은 봉고차가 떠오르는데 어떤 작업을 거쳤나?
A. “‘살인의뢰’에선 강천만의 공간이라는 게 따로 없어요. 대신 그가 범행 대상을 물색할 때 타는 봉고차가 그의 성격을 반영하는 공간이죠. 봉고차 같은 경우는 제작부에서 구해준 낡은 차를 직접 작업한 거예요. 오래된 낡은 차, 폐차 직전의 차처럼 보일 수 있도록 부수고 물감칠을 하는 등 제작했어요”
Q. 촬영을 진행하며 아쉬웠던 점은 없나?
A. “외부 로케이션이 예상했던 콘셉트와 달라 아쉬웠어요. 외부 로케이션 같은 경우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때 수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서 초반에 잡았던 콘셉트와 다른 공간에서 촬영해야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거든요. 강천이 병원에서 탈출해 사람을 죽이는 신이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했던 콘셉트는 훨씬 어두운 톤의 병원이었는데, 로케이션 간 병원의 색감은 밝았어요. 그래서 결국 색감을 맞추기 위해 톤을 보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Q. 특별히 영화 미술감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웃음). 원래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에서 옛날 영화 해주는 걸 많이 봤어요. 특히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감명 깊게 봤어요. 그 작품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잖아요. 그걸 보고서 영화의상을 제작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의상학과에 진학했지만, 다니다보니 우리나라 의상학과는 영화 의상과는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영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학과에 입학했어요. 부모님께 욕도 먹었죠. 연예인이 될 것도 아닌데 영화과를 왜 가냐 물으시더라고요(웃음). 그 때부터 영화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에 도달하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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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술감독으로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과 보람 있었던 일을 말해달라.
A. “밤새 촬영 현장에 같이 있어야 된다는 게 힘들어요. 나이가 드니 힘들더라고요. (웃음) 농담이고, 힘든 것보다는 재밌는 일이 많아요. 우리 일은 가짜지만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실제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결과물을 보면 뿌듯하죠”
“그래도 걱정은 있어요. 세트 티가 날까봐 늘 노심초사해요. 그래서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쓰려 노력해요.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실은 그런 세세한 부분들에서 세트 티가 나거든요. 세트 마감, 소품의 디테일 등이 퀄리티를 결정짓는 요인이에요.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잘못 두면 이상해보일 수 있어 하나하나 신경 쓰고 있어요”
Q. 보통의 미술감독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고충은 없었나?
A. “초반에 시작할 때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경제적인 문제였어요. 막내 때는 페이를 많이 받는 편도, 일이 끊임없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재밌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기술적인 면도 힘들었어요. 디자인과에 다니면 기본적으로 미술 일을 할 때 필요한 포토샵 등을 학교에서 배워요. 저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됐기 때문에 한계를 느꼈어요. 일을 하면서 포토샵, 일러스트, 디자인 작업에 필요한 툴들을 독학으로 배웠어요”
Q. 영화를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A.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보면 ‘이건 어떻게 제작했지’하고 궁금해지는 면이 있어요. 우선 한국보다 규모가 크고, 영화 산업 구조도 다르다보니 신기한 게 많아요. 특히 ‘호빗: 다섯 군대의 전투’를 보고 신기했어요. 보면서 ‘저런 영화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메이킹 필름을 보니 규모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촬영 기간도 짧은 편이고 제작비의 한계가 있으니까요. 실은 처음에 학교 다닐 때만해도 확고하게 ‘이 영화가 좋아’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하면서 그런 것이 없어지더라고요. 지금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는 아니어도 우주가 등장하는 SF장르 영화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영화 ‘스타트렉’ 같은 것 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우주선이 나오는 영화가 제작될 지도 모르죠(웃음).”
Q. 마지막으로 미술감독을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학원 다니는 것보다는 혼자 스스로 연습 많이 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열심히 해야죠.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요(웃음).”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 사진제공=김희진 미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