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어릴 적 딸에게 가장 큰 존재는 아빠였다. 듬직한 어깨와 ‘엄마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중에 크면 결혼하고 싶은 남자’로 손꼽히며 늘 어린 딸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런 아빠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길 마련이다. 세상 풍파에 치여, 세월에 치여 어느 순간 점점 작아진 그를 발견하게 된다. 딸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 바로 이때가 아닐까.
21일 오후 방송된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이경규가 심장 질환 수술을 위해 딸 예림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 에피소드가 전파를 탔다.
이경규는 그동안 딸과 소통하지 않은 ‘나쁜 아빠’로 큰 웃음을 선사해왔다. 딸이 몇 살인지, 혈액형이 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큰소리치는 ‘나쁜 아빠’의 전형적 케이스였다.
↑ 사진=SBS 방송 캡처 |
이예림 역시 무관심하면서도 직설적 발언으로 아빠를 당황케 하는 딸이었다. 아빠의 무심한 면을 지적하면서도 자신 역시 아빠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이경규와 미묘한 평행선을 이뤘다.
그런 두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경규가 1년 전 죽음의 위기를 맞았던 심장 질환이 다시 재발했는지 부쩍 나빠진 건강 탓에 병원을 찾으면서부터였다. 권위적이고 무심했던 이경규는 보호자를 요구하는 간호사에게 딸의 이름을 댔고, 이예림은 안쓰러운 마음을 표현하며 그를 보살피기로 했다.
이경규는 딸이 자신을 걱정할까 봐 “나랑 지금까지 병원 온 게 세 번 정도 되지 않냐? 앞으론 더 많아질 것”이라며 “시집가지 말고 평생 내 병수발 하라. 전국에 효녀로 길이 남을 수 있도록 하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딸은 개인인터뷰에서 “그냥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고 아빠의 마음을 간파했다. 웃고 있었지만 씁쓸한 기분이 그대로 베어 나왔다.
이경규의 솔직한 심경도 시청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사실 환자복을 입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아프면서도 딸을 위해 농담을 던졌던 이유를 설명했다. 딸에게만큼은 끝까지 여유로운 아빠로 남고 싶은 마음도 묻어났다.
병원 철제 침대 위에 엎드려 누운 이경규의 어깨는 작아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표정은 더욱 슬퍼보였다. 고단한 하루를 견디면서도 듬직한 느낌을 지켜내려는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이었다. 부쩍 작아진 이들의 존재감에 눈물이 나는 건 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