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올해로 20살이 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제대로 성인식을 치르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불거졌던 일이자, 현재까지 다소 극단적인(?) 해결책 외에는 다른 해답이 제시되지 않았기에 제자리걸음인 부분도 있다.
앞서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대한 감사결과를 집행위원장 이용관에게 전달, 우회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사실상 사퇴를 종용했다’는 논란을 받아왔다. 이에 일각에선 제19회 영화제 때 세월호 참사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이빙 벨’을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상영해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진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작품이라 상영을 반대했지만, 그럼에도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예정대로 영화를 상영하며 독립성을 지켜왔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입장이었다.
이에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MBN스타와의 통화에서 “자료 없이 구두 상으로 ‘사퇴해 달라’는 의견을 들었다. 그 후 관련된 자료를 받았고 현재 공식입장을 위해 자료를 검토하고 회의 중”이라며 “부산시의 입장은 ‘검사결과가 안 좋다’ ‘새로운 해를 위한 비전, 대안을 위해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였다. 최대한 빨리 공식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 |
부산시는 직접적 사퇴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운영 개선과 개혁 추진 필요성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이라는 보도 자료를 통해 이용관 현집행위원장의 거취문제를 비롯한 인적 쇄신 등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한국영화단체공동성명은 “사실상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 권고를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영화계가 더욱 떠들썩거렸다.
한국영화단체들은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이 위원장이 사퇴를 종용 당한 것은 부산시의 보복 조치인 것이 분명해보이며 이는 단순히 이용관 위원장 한 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영화제를 검열하려는 숨은 의도는 결국 영화제의 독립성을 해치고 19년을 이어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존립마저 흔들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초래한 부산시가 지금이라도 사퇴 종용을 철회하길 바란다. 만약 지금과 같은 사태가 계속된다면 부산시는 영화인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부산시민과 영화인과 국민이 함께 만들어온 부산국제영화제이다. 부산시장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부산시가 이용관 위원장에 대한 사퇴 종용을 즉각 철회하기를 거듭 촉구한다. 철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화인은 연대하여 싸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기구를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후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2월11일 오후 부산 우동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미처 전하지 못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냈고 질문에도 답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했다.
특히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부산시의 지도점검 결과와 우리가 내놓은 소명자료를 공정하게 검증을 받고 싶다.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민과 해당 업무 전문가, 시민단체 관계자, 필요하다면 언론까지 포함한 검증 단을 구성해 부산시의 지도점검 결과와 우리의 소명자료를 같이 검증해 보고 싶다”며 “영화제 내부 자료조사도 하고, 필요하다면 청문회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그 검증 결과가 집행위원장이 책임을 져야 할 정도라면, 기꺼이 내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의 여러 논란과 공방을 모두 깨끗하게 털고, 부국제가 일신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냈다.
![]() |
그러나 여전히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논란은 해결되지 않았고, 자나깨나 영화인들의 관심 0순위였다. 시간이 흘렀고 3월10일 서울 한국프레스선터 국제회의장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공청회’가 열렸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주)인디스토리 대표 곽용수, 동국대학교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 민병록, 영화감독 박찬욱, 영화감독 임권택, (주)명필름 대표 심재명이 참석했고, 자리는 올해로 20회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날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봐주고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지적해준다면 이를 발판삼아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인의 힘을 받을 수 있는 안을 마련하겠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어 “공동위원장 제안은 내게 사퇴를 권고했을 때 나온 이야기다. 물러나야 되는 이유를 묻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더라. 몇 개월 동안 생각해보니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내가 먼저 언론을 모아놓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토론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감이 잡히지 않아 부산시와 충돌이 많았다”며 “공동위원장은 내가 물러나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러나되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의원장을 모셔오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해 모두를 당황케 만들었다.
스스로 강력하게 자진 사퇴 의견을 전한 이용관 집행위원장 때문에 다른 패널들은 ‘멘붕’에 빠졌다. 특히 민병록 교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번 사태는 국제적인 망신이자 정치적인 세력이라 생각한다. 영화제의 생명은 독립성이자 자율성으로 볼 수 있다. 미래 비전으로 본다면 부산국제영화제가 21회를 맞이할 때 1회 때처럼 새로 출발하는 게 어떨까 싶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서는 시에 타협을 하면 안 된다. 예산을 받지 못하더라도, 영화제가 축소가 되어도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며 “이번 기회에 타협하면 20년 동안 영화제가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다. 생뚱맞아도 이런 제안을 해 본다”고 강하게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말렸다.
그러나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자진 사퇴 의사와 공동집행위원장제 의견은 너무도 확고했다. 별다른 해결책이 오갔다기보다는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고 공유하는 의미가 더 컸던 공청회.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행사가 끝났다.
![]() |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내가 주장한 공동집행위원장제의 1~2년이라는 기간은 실제로 새로운 집행위원장이 오면 난 이선으로 후퇴하고 그 분이 윗선에서 활동하도록, 적응하도록 도와준다는 임의의 기간이다. 새로 온 분이 혼자해도 된다고 느끼면 언제든 난 물러나겠다”며 “올해 영화제를 잘 준비하고 잘 끝내야 된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은 내 책임이다. 우선 나 아니면 영화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래갈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즉,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자진 사퇴 의사는 변함없고, 집행위원장 자리를 차지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를 보필하고 자신은 물러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때문에 모든 책임의 화살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몫이다. 자진 사퇴 의사와 공동집행위원장제가 적절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물론 제시된 다른 해결책 또한 없는 상황이지만 많은 영화인들이 극단적인 해결책에 씁쓸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부산시의 의견에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자진 사퇴 의사와 공동집행위원장제를 밝힌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물론, 사태의 시작이자 논란의 중심인 부산시의 다소 수수방관식의 태도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삼자대면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가릴 순 없다. 그러나 정말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사랑하고 오랫동안 전통을 유지하고 싶다면, 서로의 입장에만 목소리를 높일 게 아니라 소통과 영화제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애당초 대중에게 부산국제영화제가 갖는 의미 등을 생각해 ‘상처’ 남은 성인식이 아닌 한걸음 ‘성장’한 성인식을 맞이해야만 한다.
사실상 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지만, 대중과 많은 영화인들이 바라는 건 예상치 못한 논란에도 당황하지 않고 똑똑한 해결책으로 ‘끝’을 외치는 성숙한 부산국제영화제일 것이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 사진=MBN스타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