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영화 ‘러브레터’로 잘 알려진 이와이 ??지(lwai Shunji) 감독의 내한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그의 필모그래피에 시선이 집중됐다. 순간적인 강렬한 자극보다 삶에 대한 끈질긴 통찰이 더욱 중요한 것임을 아는 그의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lwai Shunji 감독은 지난달 27일 제4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참석차 내한했다. 영화제에서는 lwai Shunji 특별전을 개최, 그의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하나와 앨리스’(2004), ‘뱀파이어’(2011)를 상영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갖고 팬들과 만났다.
이날 lwai Shunji 감독은 “극영화는 강한 메시지를 넣는 것이라기보다 무언가 숙성돼 깊은 맛을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이 아이든 어른이든 똑같은 안경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며 자신만의 연출관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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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릴리슈슈의 모든것 포스터/스틸컷 |
그의 작품을 두 편 이상 본 관객이라면, 이 말들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블록버스터의 볼거리, 액션 영화의 스피드, 멜로드라마의 로맨틱한 전개가 없다. 대신 성인이 되면서 잊어버린 어린 시설의 신선한 시선, 세상을 비틀어 보는 관점이 담겨있다. “내 영화에 소년, 소녀, 죽은 사람이 자주 나오는 것은 잊어버린 시선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다”라고 말한 lwai Shunji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순간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가수 릴리 슈슈의 노래를 사랑하는 14살 소년 유이치의 이야기를 다뤘다. 중학생 유이치의 삶은 녹록치 않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배신당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첫 사랑 소녀가 왕따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런 유이치의 삶의 낙은 오로지 릴리 슈슈의 음악이다.
유이치의 삶은 몇 가지 장면으로 간략히 연출된다. 푸른 벼가 허리까지 자란 들판에서 커다란 헤드셋을 쓴 소년, 유이치가 릴리 슈슈에 대해 채팅을 나누는 컴퓨터의 화면, 릴리 슈슈 콘서트장에서 마주친 단짝 친구와의 만남. 이 세 가지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 유이치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lwai Shunji 감독은 말로 성격을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하나의 장면을 통해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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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나와 앨리스 포스터/스틸컷 |
이런 lwai Shunji 감독의 특징은 ‘하나와 앨리스’에서도 드러난다. 17살 두 동갑내기 소녀가 한 남자를 두고 갈등하게 되는 이 작품은 풋풋한 청소년 영화라고 읽기 쉽지만, 그 속에는 소녀만이 볼 수 있는 세계의 감수성이 담겼다. 뭐든지 잘하고 주도적인 앨리스(아오이 유우 분)와 그의 곁을 지키는 아라이 하나(스즈키 안 분)의 사이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순간을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여기서 lwai Shunji 감독이 “어떤 작품이든 똑같은 안경을 쓰고 만든다”고 말했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소년과 성인, 그 중간 어디쯤에 머무르고 있는 감독의 시선은 인물들이 관계를 맺을 때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대화가 아니라 그저 마음으로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모습은 음악을 통해 표현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유이치가 친구들 사이에서 고립된 모습은 릴리 슈슈의 음악 ‘아라베스크’로, 유이치가 첫 사랑에 빠지던 순간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 마장조’로 대신 말한다. ‘하나와 앨리스’에서 아라이 하나와 멀어진 것을 아쉬워하며 다시 그와 함께하길 꿈꾸는 앨리스의 마음은 ‘워 아이니 아라베스크’에 맞춰 발레를 추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lwai Shunji 감독은 자신의 섬세함과 인내심을 강점으로 이용할 줄 안다. 그는 일본 3·11 대지진을 다룬 ‘3·11: lwai Shunji와 친구들’(2011), 자살하려는 사람을 노리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담은 ‘뱀파이어’(2011) 등에서 기존의 작품과 다른 행보를 보였지만, 거기서도 lwai Shunji 감독 특유의 긴 호흡과 끈질긴 관찰력의 흔적은 지울 수 없다.
현재 일본에서는 그의 첫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이 개봉했다. 이 작품은 ‘하나와 앨리스’의 프리퀄(오리지널 영화에 선행하는 사건을 담은 속편)로, ‘하나와 앨리스’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아오이 유우, 스즈키 안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개봉해 다시 한 번 lwai Shunji의 감성을 선보일 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